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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교육부!
아, 교육부!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07.1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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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 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교육부 고위공직자의 ‘개·돼지 발언’으로 온 국민이 흥분해 있다. 어쩌면 온 국민이 아니라, 1%를 제외한 99% 국민만이 격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런 말에는 어떤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의식은 단지 1%가 되고픈 사람들만 갖고 있을까? 아니면 국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더 넓게는 한국사회 전체의 권력층이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헌법적 질서인 자유민주주의는 계급사회와 반대된다. 따라서 지배계급이 있을 수 없고, 권력 역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1% 대 99%’라 할 만큼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고, 이 불평등은 다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인간관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 결과 돈만 있으면 사랑도 명예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학벌도 구원도 얻을 수 있다. 아니 돈만 있으며 물질적으로만 풍족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막강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쩌는 일찍부터 ‘지배적 재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회적 지배가 확대된 사회에는 이것 하나만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재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바로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배적 재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는 지배와 피지배 사회이고, 이 돈이 상속되면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신분적으로 나누어진다. 이른바 금수저와 흙수저로 양극화된 신분사회가 그것이다.

지배자는 분명 피지배자와 다른 의식을 갖고 있다. 지배자에게 피지배자는 지배의 대상, 따라서 통제와 조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억압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물론 그 방법은 채찍과 당근이다. 한편으로 피지배자를 억압해서 이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하지만, 이들을 적당히 먹여 살려 지배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한다는 것은 분명 국민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지배자의 의식이다.

그런데 왜 교육부 관료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교육부 고위관료들에게 얼마나 이런 지배자 의식이 만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명의 돌출행위를 통해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주도하는 정책을 통해 이 기저에 어떤 의식이 깔려 있는지를 추측해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늘날 교육부는 각종 국책 사업을 통해 대학을 지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평가를 통해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휘두르고 있다. 국책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제시하는 지표에 맞게 대학을 탈바꿈시켜야 한다. 그러나 모든 대학이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학 지원은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지만 국책 사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교육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를 통해 대학평가도 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은 죽기 않기 위해 교육부 정책을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부 지원을 한 푼이라도 더 확보해야 생존의 길이 열린다.

교육부가 추진하는 각종 사업과 정책을 일일이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며, 교육부가 채찍과 당근으로 대학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한편에선 교육부의 권한이 막강해지지만, 다른 한편 대학은 자율성을 잃고 교육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돈을 미끼로 한 지배-피지배 관계와 다른 것일까.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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