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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심리검사의 가치’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심리검사의 가치’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승인 2016.07.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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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10.연구의 낙수-검사연구

 1960년대 중반 경제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때 미국대외원조기구인 USOM과 한국 정부가 능력개발계획(TIP: Talent Identification Project)을 수립하기로 협약하고 정범모 교수를 그 책임자로 선임했다. TIP는 개인의 적성을 발견하고 개발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했다.
인재를 선발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방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적성검사였다. 적성검사 개발이 TIP의 핵심 연구 사업이었고 그 뒤에 이어져 설립된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의 각종 심리 검사 제작의 단초가 됐다.
TIP와 KIRBS는 서로 연계된 조직이어서 연구과제인 심리검사 개발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TIP 설립이 무르익어가던 1967년부터 적성검사에 관한 연구가 싹트기 시작했는데, 이후 1969년까지 적성검사가 대거 개발·발표됐다.

최초의 적성검사는 대학 과학교육의 효율화를 위한 과학적성검사 제작이었다. 1967년의 일이다. 그 뒤 일반기술 적성 분류검사가 같은 해 6월에 나왔고, 종합적성검사(1968)의 제작과 미국에서 사용하던 ID검사의 타당화 연구가 진행됐다. 종합적성검사는 1968년에 표준화와 타당화 연구가 이뤄졌다.
1970년에 대학입학예비고사제 실시 때 서울대 신입생의 적성구조에 관한 연구(서울대 지원)는  지능수준, 적성검사 점수, 입시성적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학생 선발 도구의 타당성을 평가하기도 했다. 초기에 TIP는 이처럼 적성검사 개발과 관련된 연구를 광범위하게 수행했다.

KIRBS의 검사연구
KIRBS 출범부터 심리검사 연구는 가장 활발한 R&D분야였다. 각종 지능검사, 적성검사, 인성검사는 물론 예·체능 적성검사, 운전 적성검사, 독서력 검사, 사회성숙도 검사 등 특수한 검사들도 제작했다. 2000년까지 우리가 개발해 발표한 검사와 각종 척도는 연구용을 포함해 모두 90여종이었다. 그밖에 각 연구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소규모로 제작해 사용한 검사와 척도들은 ‘무수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다.

심리검사와 그에 준하는 질문지와 체크리스트 등은 행동과학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유용한 도구다. 심리검사는 연구에 있어서 객관적 타당성을 결여한 주관의 제약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주관적 판단의 간섭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도구들은 물론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100년 이상 심리학과 교육학 연구에서 유익하게 사용돼왔다.
KIRBS의 연구프로젝트는 대부분 엄밀한 객관적 측정을 요구하는 것들이었다. 연구원들은 검사연구부 소속이 아니라도 자신들의 연구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방향의 오리엔테이션과 방법론에 익숙해졌다. KIRBS의 연구에서 객관적 척도가 사용된 연구 분야와 거기서 개발돼 사용된 척도의 예를 간단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족계획 연구에서 출산과 산아제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상정한 ‘심리학적’ 변인들을 측정하기 위해 가치관 척도, 태도 척도, 환경압력지각 척도 등을 제작해 사용했다. 남아존중연구에서는 남아존중 태도, 권위주의, 자녀양육부담 등을 측정하기 위한 척도를 개발해 사용했다.
한국인의 성장·발달에 관한 30년 종단적 추적 연구에서도 아동의 출생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지적·성격적·도덕적 발달에 관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각 연령 단계별로 다양한 검사와 체크리스트를 사용했다.

교육계통의 프로젝트인 완전학습 R&D에서는 각 교과의 학습 과정에서 사용한 형성평가 검사지와 총괄평가 검사지 수십 종을 개발해 사용했다. 1973년과 1980년 두 번에 걸쳐 수행한 초등학교 교육의 전국적 평가에서는 수십 종의 절대기준평가 검사지를 개발해 사용했다.
연구에서 가능한 한 주관성을 배제하고 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사고’는 KIRBS 연구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의 반영이었다.

검사연구부는 각종 심리검사를 제작하는 일에 전념하면서도 그 활동을 검사 개발 자체에만 한정하지 않았다. 개발한 검사의 사후관리를 위한 연구와 개발할 검사의 근거가 되는 이론 연구를 끊임없이 수행했다. 검사 개발과 관련된 필수 작업에는 다음과 같은 영역을 포함했다.
첫째, 개발한 검사의 타당화 연구다. 검사의 타당화 연구는 검사 개발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KIRBS의 검사연구부에서 발표한 논문 중에 ‘~타당화 연구’라는 제목이 많이 붙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검사의 타당화 연구는 A/S와 같은 허드렛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타당화 작업은 제작한 검사가 과연 측정하고자 하는 특성을 측정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검사 연구에서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작업이다. 검사의 타당화 연구가 이렇게 중요함에도 검사를 제작·보급하면서 이 일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검사 윤리’상 지양해야 할 일이다.

둘째, 심리검사 자체에 관한 이론적 연구다. 어떤 특정 연구가 금방 실용적인 검사 도구로 영글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측정하고자 하는 특질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알고 싶고 파들어 가고 싶은 것이 연구자의 호기심이다. 우리는 체력장 연구, 운동능력 연구, 운전 적성 연구, 체력의 구조에 관한 연구 등 기초적 연구를 수행했다. 검사 제작에 투입한 노력에 못지않게 이론적 연구에도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셋째, 검사의 개발과 보급에 이어 간단없이 주목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리가 보급한 검사가 정당하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관심 있게 확인해보는 활동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연구소 뉴스레터를 통해 심리검사 사용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했다. 또한 기업체를 대상으로 적성검사 세미나를 개최했고, ‘심리검사 활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하기도 했다. 

넷째, 기업체용 검사의 개발은 특별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기능직이나 판매직의 경우에는 그들의 일이 비교적 ‘구체적’이기 때문에 선발이나 배치에 사용할 검사를 결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일반직이나 관리직의 적성·인성, 또는 여타의 자질을 파악하는 일은 막연하고 어렵다. 일반직 사원의 선발과 적재적소 배치에 사용할 객관적 척도(검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들의 직무를 분석해 이에 적합한 적성요인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기업체의 협조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기업체가 ‘대외비’를 내세워 회사 내부 노출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기업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때처럼 사원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검사연구의 뒤안길
심리검사에 관한 연구는 1955년 서울사대 교육심리연구실에서 정범모 교수가 한국 최초로 알려진 ‘간편지능검사’를 제작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여러 연구소와 대학에서 지능검사, 인성검사, 적성검사, 흥미검사 등을 개발했다.
심리검사가 가장 널리 그리고 유익하게 사용된 곳은 학교였다. 학생들의 성적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방법이 막연했던 시절에 지능검사가 발표되고 객관식 시험문제가 주관식 지필검사를 대체하게 되자 일선 학교는 대환영이었다. 학생들의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능검사를, 생활지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인성검사와 적응검사를, 학생들의 진로지도에 도움이 된다고 적성검사를 즐겨 사용하게 됐다. KIRBS가 제작한 각종 검사는 학교에서 유익하게 사용됐다.

검사의 보급 대상이 학교에서 점점 기업체로 확대돼 종업원 선발에 적성검사와 인성검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근년에 기업체 입사시험에서 인성 및 적성검사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그 원조가 아마도 KIRBS가 아닌가 생각한다.
심리검사의 편의성과 유용성이 인정되면서 곳곳에서 많은 환영을 받게 되자 이런 분위기를 타고 심리검사의 상업화가 기승을 부려 ‘검사 시장’이 붐비게 됐다. 검사 제작은 그 계통의 전문적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일임에도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심리검사 하나쯤 만들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들을 하고 우후죽순처럼 검사를 제작해 시장에 내놓은 우려스런 사태가 벌어졌다.

KIRBS가 학교에 심리검사를 제작·보급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의 ‘시험의 객관화’ 시대부터 그 노하우를 축적한 뒤의 일이다. KIRBS는 상업적 활동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검사 보급을 대행기관에 의뢰하곤 했으나 1990년대 전후해서 대행기관의 활동마저 잦아들었다. 심리검사와 객관식 시험에 대한 부정적 견제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심리검사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심리검사 특히 지능검사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서서히 설득력을 얻으면서 나타났다. 다음과 같은 이유다.

첫째, 대부분의 심리검사가 채택하는 객관식 문제 제시 방식에서 비롯되는 ‘사지선다식’이라는 묘한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통속적 악평을 불러왔다. 둘째는, 종전의 심리측정적 전통의 지능과 지능검사의 개념에 대한 거센 도전이 절박하게 닥쳐왔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와서 지능 자체의 개념 재정립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언제 누가 인간의 지적 능력이 간단하다고 말했나? 셋째, 개인에 관한 정보 노출은 사생활 침해라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개인에 관한 정보수집이나 활용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이 검사 사용을 꺼리게 하고 귀찮게 하는 한 요인이 됐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의 검사연구는 1950년대 중반의 시대적 요청에서 출발했다. 객관식 심리검사는 학교 성적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달성하려는 노력에 멀리서나마 공헌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다사다난 우여곡절을 거듭하면서도 오늘까지 살아 왔다. 많은 비난과 오해를 받았지만 심리검사의 가치는 가볍게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이 변화에 항복하라고 강요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심리검사를 버리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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