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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우리 모두 ‘문제아’가 되자
[나의 강의시간]우리 모두 ‘문제아’가 되자
  • 최재희 조선대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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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1:57:15
최재희/조선대·국어학

나는 여러 사람들이 어렵고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국어문법론 과목을 여러 해 동안 강의해오고 있다. 내가 하는 국어문법론 강의는 두 가지 기본 방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이론 체계의 이해와 설명 방법에 대한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주체적 인식의 확립이다.

강의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이 교과목의 개요를 설명하고 어떻게 공부해 나갈 것인가를 안내하면서 ‘문제아가 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대개 문제아가 되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짓기 마련이다. 그것은 곧 강의 내용에 대해서나 텍스트의 이론에 대해서나 항상 ‘왜’를 준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자세로 강의에 임하라는 의미라는 말을 듣고 비로소 안도한다.

항상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가 됐을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탐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명제에 대해 항상 ‘안티-테제’를 제기할 때야말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세를 가다듬자는 것이다.

문법 이론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은 언어적 현상을 원리적으로 설명해 나가는 가운데 확립된다. 따라서 인간이 올바른 문장을 생성해 낼 수 있는 내재적 언어 능력을 문법이라고 할 때, 어떤 특정의 언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설명해야 하는가 등을 우리는 탐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주문하게 된다.
맞춤법에서 왜 ‘없슴’은 잘못된 것이고 ‘없음’이 맞는 것인가.

이제 우리는 그것을 그냥 그렇게 알고 있다는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왜 그런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왜 그런가를 안다는 것은(know-why) 비단 특정의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에 해당되는 자세일 것이다.
나의 강의에서는 어려운 언어학적 이론들이 논의되고 강의 분량이 매우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러한 점을 감안해 이론의 개요를 가능한 한 명료하고 분석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언어 자료를 바탕으로 이론을 검증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이론적 문제점이나 다른 설명 방법에 대해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답하도록 한다.

서툰 설명을 할 때에도 진지하게 듣고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간혹 머뭇거리는 경우도 있지만 쉽게 책임을 면해 주지 않는다. 어떤 의견이든지 제시하게 해서 의견 제시의 부담감이나 공포감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의 의견은 무엇이든지 의미 있게 논평하면서 강의 주제에 접근해 나간다. 학생들이 인터넷으로 하는 강의 평가에 나의 강의 시간은 어려운 내용이지만 긴장감과 유머가 흐르는 재미있는 강의라는 언급이 자주 오르는 것에서 위안을 받는다.

우리말 우리 글에 대한 가치를 되새겨 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 자기 나라 글자를 창제한 날을 기념일로 정해놓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우리는 우리 글의 소중함을 너무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화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자를 주체적으로 가꾸어 나가야 하는 정신은 결코 배타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주체성과 세계 문화와의 행복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교과목이지만 적극적으로 나의 강의에 호응해 주고 흥미를 가져 준 학생들에게서 나는 다시금 용기를 얻는다. 다른 교수들도 그렇겠지만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나와 새롭게 만날 학생들이 자못 궁금해지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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