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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회 구성과 예산확보, 실행의지 ‘관건’
심의회 구성과 예산확보, 실행의지 ‘관건’
  • 박만규 아주대·불어불문학과
  • 승인 2016.07.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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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진흥법에 바란다③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3일 공표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무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제13940호)의 시행령 제정(안)은 5월 19일에야 입법예고 됐다. 동법 시행령 제정(안)은 6월 28일까지 입법예고 등을 거친 후, 8월 4일 시행일에 맞춰 제정·공표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서 중요한 것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주요 사항 심의를 위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심의회’를 구성·운영한다”라고 명시한 대목이다.

이 ‘심의회’는 “교육부와 문체부 차관 및 관계 부처(기재부, 행자부, 여가부, 문화재청) 차관급 공무원, 전담기관장,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 총 20인 이내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관련 정책에 대한 심의를 추진한다. 그러나 심의회 구성은 빨라도 올해 말쯤으로 예상된다. 시기도 문제지만, 심의회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하겠다고 밝힌 이상, 제대로 된 전문가가 심의회에서 제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연속기고 ‘인문학진흥’에 바란다」라는 지면을 열어, 5회에 걸쳐 인문학계 중진·원로들의 제언을 공유하고자 한다.

처음 ‘인문학진흥법’이 나왔다고 했을 때 든 생각은 ‘인문학 진흥을 법규로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옳은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러나 인문학 생태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문학과 인문정신의 진흥’이라는 데에 방점이 찍혀 내심 어떤 종류의 기대감에 이끌리게 됐다. 하지만 그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내용의 지나친 포괄성이다. 주지하듯이, 과학·기술 분야는 수많은 구체적 하위 분야들을 대상으로 각각에 대한 법률들을 구성해 실질적인 효과를 도출한다. 그러나 인문법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 전반을 진흥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과연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법안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재량적이며,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특정되지 않고, 예산지원이 필요한 사업에 대한 재정지원 여부가 불분명하게 기술돼 있다. 마치 선언문이나 시행계획을 보는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법안 내용이 ‘할 수 있다’나 ‘노력해야 한다’는 식의 임의규정들로 채워져 있어 더욱 그러하다.

학생들을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대를 걸었던 인문학 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도 아쉬움을 보탠다. 예컨대 모법 제13조와 14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문교육이 체계적이고 연속적으로 실시되고 문화시설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전문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기대를 갖게 하나, 정작 전문인력에 관한 조항(제 15조)에는 ‘인문적 소양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연구와 교육, 사회적 확산 등에 필요한 전문인력으로 양성하고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라고 하고 있어 구체성이 없는 선언에 그치고 있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본 법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심의회’(이하 심의회)의 성격이다. 심의회의 기능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중장기 정책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모법 제 9조 제 2항에 따른)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를 전담기관들을 지정해 시행하게 하는 일이다. 즉 심의회는 필요할 때 소집해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상설기구가 아니라서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진흥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 인문학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진흥원 같은 상설 전담기구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인문교육의 대상에도 아쉬움이 있다. 모법 제 13조와 시행령 제 9조를 보면, 우선 초, 중, 고교와 대학, 평생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너무나 당연한 대상이므로 교육 방법과 내용 등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언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언급이 없어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대학은 인문학 진흥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학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획득해야 하는데 여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있어서 인문학은 첨단 분야가 아니라서 일반의 주목을 끌기 어렵고, 논문 게재율이 이공계에 비해서 낮아 국제적 명성을 얻기 어려우며, 연구비 확보에 있어서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공계 중심의 대학평가 기준에 국가 사회와 대학이 경도돼 있는 상황에서, 법률에서조차 구체적인 방안에 관한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어떻게 인문학을 진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문교육의 또 다른 대상은 재외 교육기관, 청소년시설, 소년원, 도서관, 미술관, 지방문화원, 군, 교정시설, 민영교도소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소외계층을 위한 기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인문학 교육을 이처럼 소외계층에 국한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에게 치유와 용기와 재활의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다.

기관을 위한 지원사업으로 변질될 수도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과 정부기관들에 오히려 인문정신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이 같은 시각은,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과 건전한 비판정신을 통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창의적 사고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인문학을 그저 정신적 위안거리나 제공해주는 개인의 교양으로 인식하는 몰이해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상기 기관들을 위한 평생교육지원 사업이나 문화체육단체 지원 사업 등으로 자칫 변질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한편 심의회의 인적 구성을 보면, 교육부와 문체부 등의 차관급 6인과 전담기관의 장 및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관련 기관의 장 등 관료들로 구성되는 등 관료가 대부분을 차지며 나머지가 인문학계 인사들이다. 인문학 진흥을 인문학자들이 주도할 수 없는 구조라 과연 인문학계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매우 아쉽다.

모법과 시행령이 모두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구성돼 있어서 실제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따라서 관건은 심의회의 실제 구성과 예산 확보 여부 및 규모, 실행의 의지가 될 것이다. 예산을 보면 모법 제18조 ②항에 ‘교육부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전담기관의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라고 임의규정으로 돼 있어 전담기관 자체조달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과연 얼마나 확보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예컨대 GDP 대비 비율을 적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예산 확보 근거를 명기하는 것이 실질적인 인문학 진흥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리라.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 진흥을 위한 기구를 출범시킨다는 점 자체로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 점에서 법안 준비과정에 참여한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다만 그 방향성에 우려가 제기되고 내용의 모호성으로 인한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데, 이것이 기우였다고 훗날 밝혀지기를 바란다. 인문학자의 한 사람으로 이 법이 초석이 돼 우리 사회의 인문학과 인문정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마련되면 더없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후속 법안들이 나와서 인문학이 뿌리내려 행복한 사회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만규 아주대·불어불문학과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며, 2015년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Ordres des Palmes Acad´emiques) 기사(Chevalier)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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