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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단테’와 근대성에 가려진 또 다른 단테를 찾아서
‘근대적 단테’와 근대성에 가려진 또 다른 단테를 찾아서
  • 교수신문
  • 승인 2016.07.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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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사랑의 지성: 단체의 세계, 언어, 얼굴』 박상진 지음|민음사|595쪽|30,000원

돌이켜보면,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나는 단테가 걸었던, 그리고 함께 걷자고 말하던, 그 구원의 길이 어디로 뻗어있을까 하는 물음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단테가 걸었고 말하던 구원의 길에 이미 들어서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단테는 인간의 구원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떤 확고한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구원이 길이 어디로 뻗어갈지 바라보라고 제안할 뿐이었다. 단테의 답을 기다리기보다 나의 답을 찾아나서는 그 길이 바로 단테가 제안한 구원의 길이었다. 그러니 구원의 길에 대한 물음을 떨치지 못한 그 자체가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선 반증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구원이란 죽음 이후의 행복을 가리키기도 하고 죽음 이전의 행복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가 신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한편 후자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성취될 것으로 놓여있다. 중세를 종합하고 근대를 출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과연 단테는 인간의 구원을 앞의 둘 가운데 어느 하나로 한정짓기보다는 둘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생각했던 시인이었다. 기독교적 세계관 위에 서있었지만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매달리기보다는 종교성이라는 더욱 보편적인 경외의 자세를 권고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으로서의 덕과 지를 따르라고 일깨우는 학자였다.

나는 단테를 읽으면서 근대의 끝자락에 선 우리에게 단테의 오래된 목소리가 더욱더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느낀다. 실제로 그는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데, 그 얘기는 그의 시대보다도 오히려 우리 시대에 더 맞는 것이 돼가고 있다. 그렇게 그가 우리 시대의 시인이 돼가는 이유는 답을 선사하기보다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이며, 그에 더해 그 질문들이 더욱 날 선 모습으로 우리를 엄습하기 때문이다. 이미 신으로부터 멀어지며 살아온 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단테의 목소리는 우리가 스스로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가는 유일한 주체이면서 또한 그렇게 주체로 서기 위해서라도 신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고대와 중세의 현자들이 가르쳐준 대로 단테는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인간의 삶의 목표라면, 그것은 신을 찾는 과정 그 자체로 추구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신을 찾아낸 지점에 도달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며, 그때 확보된 행복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신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은 신을 찾아나서는 그 여정을 지속하는 한에서 확보되고 이어진다.

인간의 구원에 대한 사색과 실천
인간의 지성은 인간이 신을 찾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단테는 천국의 꼭대기에서 하느님을 찾아낸 순간, 그 순간과 그 존재를 설명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호소한다. 그 무력함은 지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지경이며, 자신을 그곳까지 밀어올린 지성의 힘이 이제는 소진돼버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성의 마지막까지 남은 힘을 쥐어짜내려 한다. 원을 측량하려 하지만 도저히 이뤄내지 못하는 수학자의 실패한 지성의 비유를 통해 그는 자기가 만난 신의 모습을 그려내지 못하는 형국을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실패는 그가 그때까지 이룬 구원의 순례를 전면적으로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의 실패는 신에게로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깊이 새기도록 만들면서, 그의 순례의 목표였던 인간의 구원에 대한 사색과 실천에 대한 권고를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이것이 바로 단테가 말하는 지성이다. 지성은 늘 길을 떠남으로써 유지되기에 단테는 지성의 힘으로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으로 오르며, 이는 지옥의 꽁꽁 얼어붙은 바닥에서 마주친 절대 침묵, 그 반지성의 부동의 어둠과 대비된다. 지성은 곧 인간의 정체성을 이룬다. 원래부터 인간은 지옥으로 가야할 존재가 아니라 천국으로 오를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사랑은, 그것이 신의 사랑이든 인간의 사랑이든, 천국으로 오르는 인간을 감싸 안으면서 그 지성의 힘을 처음부터 발생시키고 또 견지시켜주는 근원적인 무엇이다.

단테는 천국의 꼭대기에서 사랑의 지성이 뜻하는 바를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중세와 근대의 결합. 신을 경외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추구하려는 조절의 의지가 바로 지성을 이루며, 이 지성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기에 차갑지 않다. 오히려 도덕과 영혼의 부족을 메우는 새로운 진화의 전망을 보여주기에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을 다시 태우는 것이다.
사랑이 널리 펼쳐내고 지성이 멀리 좇아가는, 그런 구원의 길을 표현하고 소통시키는 것이 곧 철학자 시인 단테가 『신곡』을 쓰는 방식이었다. 그의 알레고리적 언어는 무한으로 파생될 심층의 의미들이 그 뒤편에서 서성거리고 있음을 일깨우고, 그가 추구한 성과 속의 교차는 어느 한쪽으로 확고하게 나아가기보다는 둘 사이로 물러나며 깃드는 것이며, 그가 겪은 변신은 변신의 이전과 이후가 서로를 조응하는 성찰적 나르시즘이었다.

단테는 자기가 써내려간 언어가 자신의 목소리를 한 발 물러나게 하면서 언어 자체의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고, 물감이 캔버스 안으로 물러나면서 색채를 발산하듯 천국의 빛이 색으로 물드는 풍경을 묘사했으며, 그렇게 늘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삶과 세계, 그 풍경 속에 들어앉은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러한 물러나기가 단테가 사랑을 추구한 방식이었다. 신으로 나아가는 단테의 구원의 궁극은 사실은 신으로부터 물러나는 ‘후퇴의 진행’이었다. 후퇴의 방향은 인간의 세계인데 그곳이 곧 단테가 구원을 수행하는 현장인 탓이며, 또 후퇴의 방식은 둘러보는 거리를 확보하는 것인데 그를 통해 구원의 최종 심급은 인간임을 확신하는 탓이다. 그래서 사랑의 지성은 그러한 ‘후퇴의 진행’을 담는 섬세한 구도로 이뤄진다. 이런 내용이 이 책에서 단테의 세계와 언어, 그리고 얼굴이라는 세 범주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단테의 세계를 자전적 알레고리와 성과 속의 교차, 그리고 변신의 세 방면들로 둘러보았고, 단테의 언어를 단테가 ‘뛰어난 속어(vulgare illustre)’라 부른 새로운 소통의 도구가 어떤 목표와 원리 위에 세워져 있는지 분석하는 한편 그 변용의 예를 신채호의 『꿈하늘』(1916)의 해석을 통해 제시했으며, 마지막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는 단테의 여러 얼굴들이 색채와 빛, 풍경과 내면, 그리고 문자와 이미지가 서로 침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타자에 대한 감수성과 단테 문학의 보편성
이 책은 5년 전에 대우학술총서로 낸 『단테 신곡 연구: 문학의 보편성과 타자의 감수성』을 잇는 두 번째 단테 연구서다. 단테는 이른바 세계문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식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로 남아있다. 그러나 단테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문제적 작가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일찍이 脫亞入歐를 외친 일제의 단테 연구가 서구근대성의 표상이었다면, 우리는 그러한 ‘근대적 단테’를 더욱 천착하는 동시에, 그 근대성에 가린 또 다른 단테를 발굴하고 해석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이중과제의 대상으로서 단테 연구는 그 자체로 비교문학의 자세와 방법을 요구한다. 나의 책이 거둘 수 있는 성과라면 단테에 대한 독특한 관찰과 평가에 있을 텐데, 그 독특성은 서구의 기존 성과들을 섭렵하는 나의 자리를 비서구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비교문학적인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단테를 그 중심으로 파고들어가는 한편 그것이 밖으로 발산되는 여러 방향들을 추적하고자 했다. 그래서 단테의 글들을 집중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또한 다른 작가들이나 예술가들과 비교하면서 새로운 면모들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단테는 깊어지고 또한 넓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테 문학의 보편성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에서 나온다. 그것이 첫 번째 연구서에서 강조했던 것인데, 이제 이 두 번째 책에서는 그 감수성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탐사하고자 했다. 여전히 단테의 문학은 진정한 보편성의 차원에서 발산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타자를 배제하는 대신 포용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했다. 단테의 문학이 고전이라 불린다면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들을 역사와 사회의 특수한 맥락들에 부응하도록 던지기 때문이며, 그 웅숭깊은 목소리가 우리 시대에서 더 둔중하면서도 더 다채롭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박상진 부산외국어대·이탈리아문학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단테와 비교문학을 연구했다. 『단테 신곡 연구』, 『에코 기호학 비판』 등을 썼고, 『신곡』과 『데카메론』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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