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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사유의 힘’은 치밀한 고전 텍스트 독해에 있었다
그의‘사유의 힘’은 치밀한 고전 텍스트 독해에 있었다
  • 이정우 경희사이버대·철학
  • 승인 2016.07.06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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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 이정우 지음|도서출판 길|463쪽|30,000원

그에게 철학이란 과학 전반을 정초해
줄 수 있는 존재론적가설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과학적 연구성과
전반을 정초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 소은 박홍규

한국에서의 서양 철학 연구는 1926년 경성제대(현 서울대)에 철학과가 설치된 후 시작됐다. 그 이전에도 혜강 최한기를 비롯한 선구적인 인물들이 서양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이때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박치우, 신남철, 박종홍을 비롯한, 현대의 1세대 철학자들이 주로 서양 근대 철학, 특히 독일의 철학을 중심으로 서양 철학을 연구했다.
서양 철학 연구는 1953년 이래 그 넓이와 깊이가 비약적으로 커졌고, 소은 박홍규 등을 포함한 많은 철학자들이 서양 철학의 여러 부분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박홍규는 이 세대를 대표하는 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일반적으로 독일 철학을 많이 연구하던 당대의 흐름과는 달리 서양 고전 철학과 프랑스 철학을 중심으로 연구를 개진했다. 박홍규는 내면적 반성의 철학이나 주체적 실천의 철학보다는 객관적인 ‘데이터’(그리스어 ‘프라그마타’)를 중시하는 객관주의적이고 과학적인 철학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그리스 철학과 프랑스 철학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철학이란 과학 전반을 정초해 줄 수 있는 존재론적 가설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각 개별 과학이 존재·세계의 어떤 특정한 영역을 잡아 연구하는 반면, 철학(특히 존재론)은 과학적 연구 성과들 전반을 정초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박홍규는 이런 관점에서 서양 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플라톤과 베르그송이라는 두 축을 잡아내었다. 세계를 ‘영원의 상하’에서 파악한 플라톤과 ‘지속의 상하’에서 파악한 베르그송을 두 축으로 서양 철학 전체를 조망하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서양 철학 연구는 그 독자의 시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단지 어떤 특정 인물, 학파, 언어권, 시대에 초점을 맞춰 행한 것이 아니라 서양 형이상학·존재론 전체를 자신의 시각에서, 자신의 언어로, 그리고 거리를 두고서 행했다는 점에 유니크한 것이다. 이 책은 소은 박홍규의 이런 사유세계를, 『소은 박홍규 전집』(전5권, 민음사)에 입각해 철학사적 순서로 재구성한 것이다.

박홍규는 그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체계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그의 뛰어남은 이런 거시적 측면에서보다는 오히려 미시적 측면에서 빛난다. 박홍규 사유의 진면목은 플라톤, 베르그송을 비롯한 고전 텍스트들을 꼼꼼하게 읽을 때 특히 잘 드러난다. 그리스어, 프랑스어 텍스트들의 어떤 구절들을, 서양의 주석가들에게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사유의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치하고 독창적으로 분석할 때가 그런 때다. 그리고 그 때에 그 자신의 사유도 거기에서 동시에 묻어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구절을 읽든 그 독해에는 서양 존재론사 전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녹아들어 있다. 미시 속에 거시가 들어 있는 프락탈적인 구조라 하겠다. 이 때문에 다른 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박홍규 사유의 이해는 어떤 일반화된 整理라든가 추상적 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특정 텍스트의 특정 구절에 대한 그의 독해로부터 논의를 풀어나갈 때 가능하다.
이 책에서 박홍규 사유의 이런 맛을 일차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은 3장(‘자기운동자’에서 ‘자기차생자’로)이다. 이 장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의 한 문단(245b-246a)에 대한 박홍규의 독해를 다루고 있다. 더구나 박홍규의 독해는 그 후반부로 가면 베르그송의 기억론으로 넘어간다. 이 점에서 텍스트를 읽어 가는 박홍규 고유의 면모와 또한 동시에 플라톤과 베르그송을 잇는 그의 거시적인 안목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사물을 규정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형상(eidos)을 통한 규정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 방식을 통한 규정이야. 플라톤은 이 양 방식을 왔다 갔다 하지. 사람, 개, 기타 동물이나 사물들의 형상이 있다. 또 그 형상을 보고 만들었다 해. 또 생명을 무생물처럼 나눠. 그런가 하면 또 생명의 중심인 영혼은 운동을 가지고 규정하거든.”(122쪽)
교과서적인 플라톤은 생성과 변화를 폄하하고 영원하고 자기동일적인 이데아들을 역설한 철학자다. 그러나 박홍규는 플라톤 철학에 내재하는 양면성을 지적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톤만이 아니라 영혼에 운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자기동일자’가 아닌 ‘자기운동자(self-mover)’를 사유한 플라톤이 있다. 이는 곧 생명을 사유한 플라톤이다. 박홍규가 서양 철학사 전체를 꿰는 핵심 개념들 중 하나가 ‘생명’이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현대 생명철학의 중요한 한 기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논의는 대표적인 생명철학자들 중 한 사람인 베르그송으로 넘어간다. 플라톤의 ‘자기운동자’에서 베르그송의 ‘자기차생자(self-differentiator)’로 어떻게 넘어가는가가 중요하다.
생명이란 모순율을 극복한 존재다. 생명체들은 운동한다. 끝없이 스스로의 동일성(identity)을 벗어나 생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유지해간다. 그래서 ‘자기운동자’다. 그러나 플라톤에게서 무게중심은 이 ‘자기’에 걸린다. 때문에 생명이란 ‘영원한 운동’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19세기 진화론의 발달은 이 ‘운동’의 양상이 극히 복잡다단함을 드러내었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한 마디로 19세기 과학 전체에 대한 메타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존재론은 ‘자기운동자’가 아닌 ‘자기차생자’를 제시한다. 무게중심은 자기의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생성(differentiation)에 두어진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은 바로 이 차이생성 속에서 와해돼버리기보다는 그 차이생성을 다시 보듬어 자신의 동일성을 바꾸어 간다는 점에 있다. 즉, 자기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히려 그 동일성을 바꿔 가야 하는 역설적인 존재가 바로 생명(체)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운동을 하면 반드시 타자화한다는 점이야. (…) 원 상태를 버려야 무엇이 변화한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원 상태를 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 버린다는 것이 가능하냐 그 말이야. (…) 불가능하지. 그런데 불가능한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뭐라고 하지? (…) 가능이니 우연(우발성)이니 그래. (…) 물질적인 운동에서는 분명히 ‘떠난다’는 것이 성립하지. 그런데 운동하면서 ‘떠나지’ 않는 상태가 현실적으로 있느냐, 이것이 문제야.”(130쪽)

그런 존재가 현실적으로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기억’이다. 플라톤과 베르그송을 잇는 박홍규의 존재론이 도달한 핵심적인 한 화두가 바로 기억이다. 아쉽게도 박홍규는 『창조적 진화』에 대한 강의는 남겼지만, 『물질과 기억』에 대한 강의는 남기지 못했다. 오늘날에 사유하는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소은 박홍규의 사유를 이어받아서, 그리고 뇌과학을 비롯해 최근에 발달한 생명과학을 매개해, 그리고 또한 동북아의 전통 자연철학이지만 혜강 최한기에게서 멈추어버린 ‘氣學’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개진해 나가야 할 21세기 존재론의 한 핵심은 바로 이 기억의 문제에 있다고 하겠다.

 

 

이정우 경희사이버대·철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교수를 거쳐 지금은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있으며, 소운서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철학사1』, 『접힘과 펼쳐짐』, 『천하나의 고원』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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