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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이민 1백년, 신천지 혹은 사막에서의 목소리
미주 이민 1백년, 신천지 혹은 사막에서의 목소리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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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고난으로 얼룩진 이민풍경…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내년 1월 13일은 한인들의 미국 이민이 1백주년을 맞는 날이다. 기념사업회는 해외 한민족 족보사업, 한인이민 100년 사진화보집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브라질 한인들도 2월 11일 이민 40주년을 기념해 상파울로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은 일당 70센트에서 20센트씩을 갹출해 상해 임시정부의 채권을 매입하던 이민 1세대들의 열정과 한숨이 또다른 뿌리로, 토양으로 화했음을 알려준다. 이들의 아픔, 희망, 바람, 고민들 속에서, 지금 우리의 재외동포정책은 어떤 것인지, 또 그들은 무엇을 모국으로부터 필요로 하는지 짚어본다. 겔릭호의 항해는 오늘도 계속된다.

“1903년 1월 13일 이른 새벽, 102명의 한인들이 ‘신천지’에 대한 꿈을 안고 미국상선 겔릭호에 오르면서 미국이민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호놀룰루 제 2부두에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꿈의 실현과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 이민사의 첫 장을 열었던 것이다.”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 한국위원회 홈페이지에 오른 ‘공식적’인 이민역사 서술의 일부다.

72년 전 작가 주요섭은 그의 소설 ‘구름을 잡으려고’(1930년 동아일보 연재소설)에서 이보다 조금 앞선 광경을 묘사해 흥미롭다. 십구세기의 맨 마지막 해 봄, 제물포항에서 미국가는 배에 올라타는 준식을 내세워 그의 미국에서의 고단하고 궁핍한 삶을 그린 이 소설의 한 대목을 보자.

“뾰루대는 삼십명의 노동자를 싣고 제물포를 떠났다. 모두가 노자 한푼없이, 그러나 큰 돈을 모아 가지고 떵떵거리며 돌아올 날을 꿈꾸면서 떠나가는 젊은 일꾼들이었다. 두세 사람을 제하고는 부두까지 전송도 못 받으면서 만리타국의 길에 오르는 불쌍한 신세들이었다.” 이들은 긴 항해 끝에, 자신들이 속아서 플랜테이션농장의 노예로 팔려온 사실을 깨닫지만, 지친 삶의 여로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전영태 중앙대 교수(문예창작학과)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두고 “이제까지 단 한번도 역사의 주목을 받은 적 없이 소외되고 외면됐던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들이 머나먼 미국땅에서 겪는 고통은 당대 조선의 반영이자 오늘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나가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1930년의 작가가 묘사를 통해 복각한 20세기초의 장면이나, 기념사업회의 공식 이민사 서술 모두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신천지’, ‘큰 돈을 모아 가지고 떵떵거리며 돌아올’ 수 있는 새로운 대지 ‘미국’에 대한 동경이었다. 이 동경은 지금도 캘리포니아 드림, 끝없는 유학과 이민의 모습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동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궁핍한 풍경’을 안고 있기도 하다. 신천지와 사막의 이미지가 근대 1백년에 묘하게 뒤섞여 있다.

1980년대 작가 최인호씨는 이 동경의 피폐함을 이렇게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만남의 단절, 풍경과 세상으로부터의 부재의 모습이었다. “그가 지나온 5번 도로도, 101번 도로도, 죽음의 계곡도, 사막도, 베이커스필드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웃음소리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이제 이 한번만의 해후로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꿈을 찾아 떠난 아메리카, 바로 그 신천지에서는 “모든 것이 맹렬한 속도로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60년대가 되고, 80년대가 되고, 90년대가 되기도 하며, 마침내는 2000년대의 ‘사막’처럼 비쳐진다.

“고속도로에서는 모든 것이 맹렬한 속도로 굴러가고 있었다. 차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로 자체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이 속도감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도로 표지판’과 같은 방향등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일단 방향을 잃어버리면 자동기계 속에서 스스로 조립되고, 절단되고, 포장되는 상품처럼 조잡한 불합격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공 준호가 내뱉는 탄식은 80년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월남파병으로 뒤끓던 60년대와 70년대의 탄식인 동시에, 반미구호에 시달리는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표정없는 이 시대의 낮은 한숨과도 같다.

“미국의 풍요가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자유가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병정인형과 아름다운 정원이, 웅장한 저택과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이, 사막과 설원이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가슴 속에는 터질 듯한 분노 이상의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비평가인 김치수 이화여대 교수(불문학)는 “이 소설의 중요성은 이들 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패배감과 절망감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밝혀 주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절망과 패배의 감정과 싸우고 있는 개인의 처절한 의식을 단순히 70년대라는 과거의 사실로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으로 인식시켜 주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부여했는데, 음미할 만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와 같은 질문들, 신천지와 사막 사이에서 2003년이 바로 한국인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지 1백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것은 단절과 소통부재, 주변을 배회하는 경계인의 처지에 대한 자각이며, 동시에 강렬한 심정적 귀향형이다. 이주민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상해임시정부를 돕는가하면, 한국의 얼과 문화, 전통을 심으면서 낯선 신천지에서 새로운 역사를 서술했다.

1백주년 기념사업회가 꾸려진 의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모국’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를 묻는 질문을 축적할 때 더욱 빛날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와 이스트 록 인스티튜트가 함께 주최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한민족네트워크 국제학술대회’는 그 좋은 시발점이 됐다. 이제 수백만 재외동포문제, 그들의 족적을 재구성하고, 오늘날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의 놓인 현실을 진단하며, 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셈이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는 내년 1월 5일부터 사흘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의 제퍼슨 홀에서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이스트 웨스트 센터와 공동으로 ‘한미관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내걸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미주이민 한인 사회에 대한 조명에 이어, 세계 각지의 한인 디아스포라, 재외동포 문제에 대한 천착이 학계에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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