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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생태계 복원 나서야
인문학 생태계 복원 나서야
  • 반성택 서경대·철학과
  • 승인 2016.07.0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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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_ 인문학진흥법’에 바란다 ②

 인문학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의 질은 특히나 인문학 교수진의 지위, 규모 및
역량에 주로 달려 있다. 시설로는 연구실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인문학 진흥의 지름길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대학이 인문학 전임교수를
확보하도록 대교협 평가, 재정지원사업 평가 등에서 주요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하겠다고 밝힌 이상, 제대로 된 전문가가 심의회에서 제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연속기고 ‘인문학진흥’에 바란다」라는 지면을 열어, 인문학계 중진·원로들의 제언을 공유하고자 한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는 짐작 이상으로 인문학 진흥을 위해 애써 왔다. 1980년대에도 인문학 위기가 거론되자 국가는 예산을 투입해 인문사회 관련 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또한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며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조류에 직면해 1990년대 말 곳곳에서 인문학 위기론이 분출하자, 이에 국가는 또 반응했다. 논문을 쓰면 연구비를 지급하고, 학술지 발간비도 일부 지원한다. 학술지 발간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물론 이 특이한 지원에 따른 부담은 학술지를 국가 주도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또한 국가는 지난 10여년 인문한국 사업 등도 진행해 왔으며, 최근에는 코어사업도 시작했다.
국가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위기의 목소리는 그런데 여전하다. 현재도 그렇지만 인문학 위기라는 말이 많이 들리면 국가는 돈을 투입해 살리려 한다. 그런데 매년 수백억원을 들여 HK사업을 시행해도 인문학 현장이 나아졌다는 보고는 거의 없다. 이는 재정 투입을 하더라도 풀리지 않는 어떤 결함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대표적인 예로 국가는 인문학 분야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 해외 연수, 세미나를 지원하며 인문학을 진흥하려 하지만 인문학 분야는 전임교수로의 진입 부근에서 급격히 위기에 빠져 있다. 각종 지원으로 학위를 받는 학문후속세대가 대개 시간강사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렇듯 돈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인문학 위기 담론에는 함께 한다.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는 현장, 인문학 현장을 둘러싼 제도적 여건은 그냥 둔 채로 지원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이 투입된다. 재정 부족이 아니라 제도의 결함으로 인해 인문학 진흥방안은 오랜 세월 그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던 것이다. 수년 전 어디서 본 문장이다. “인문학 관련 국가위원회 하나 없이 교육부의 한 부서가 인문정책을 담당하는 상황이다.”
이 말이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1990년대 말 이후 사회 곳곳에 밀어닥친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위기에 빠진 인문학 영역에 대해 공공적 접근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마침내 인문학진흥법의 제정으로 이어지고 이 법안은 곧 시행된다.
법안에 따라 인문학 진흥 중장기 발전계획도 심의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진흥방안이 연차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인문학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곱씹어보고 싶은 것은 ‘인문학’이라는 말이다. 인문학진흥법 제3조 제3항에 따르면, “인문학이란 인문에 관하여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언어학·문학·역사학·철학·종교학 등의 학문과 직관·체험·표현·이해·해석 등 인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는 (…) 학문분야를 말한다.”
이러한 정의를 대하며 이와는 다른 학문 전통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바로 과학이다. 오늘날 학문은 과학과 인문학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인문학 이외의 거의 모든 학문 분야는 과학이기를 명칭에서부터 밝히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과학 분야의 진흥방안과는 필요하면 다를 수 있는 진흥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부디 인문학 특성을 살리는 발전계획이 심의회에서 인문학 전문학자들의 활발한 참여 속에 수립되길 바란다.
인문학진흥법은 인문학 분야에 대한 최초의 법적, 제도적인 장치다. 그만큼 기대도 크고, 또한 지난 30여년 인문학의 앞날을 위해 선언도 하고 토론도 하고 또한 걱정도 토로해온 선배 인문학자들을 보면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인문학 위기에 각종 지원책으로 대처해온 지난날의 행적 때문이다.
인문학 현장을 들여다보면 대개 이런 모습이다. 대학 외부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을 정도다. 외부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져 있다. 그런데 내부는 무척 어렵다. 지원이 적어서가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의 각종 지원사업을 보면 무척 다양하고, 지원도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원사업은 논문, 저술, 번역, 공동연구, 국제협력연구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전방위적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으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끔 언급되는 인문학 생태계의 복원이다. 생태계 복원의 핵심은 지원으로 연명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자생력 있는 인문학을 세우는 것이다. 나아가 이 생태계의 복원은, 특혜가 아니라 인문학 분야가 교양교육을 포함한 대학교육에서 담당하는 비율만큼의 인문학 전임교수의 확보에 달려있다.
이를 가로막는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또다시 각종 재정지원사업이다. 등록금 동결로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대학들은 국가 발주의 지원사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지원사업에서 평가지표는 사실상 대동소이하다. 취업률과 더불어 전임교원 확보율은 늘 핵심지표다. 그리고 전임교원 확보율은 대학 전체로만 산정하지 단과대학별로 측정되지는 않는다.

이 제도적 빈틈은 그대로 인문학의 위기를 더욱 제도화시켜 왔다. 대학들, 특히 대한민국 대학의 84%에 달하는 사립대학들은 이 빈틈을 세밀히 활용하며 재정지원사업 평가를 준비한다. 제도적으로는 단과대학별로 균형 있게 교수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는 점, 인문계 교수보다는 이공계 교수가 논문 생산성, 특히 해외저널 게재율이 매우 높다는 점, 인문계에는 대규모 시간강사진이 형성돼 시간강의라도 언제든 달려오는데 그 외의 분야는 강사 대우로는 강의하려 하지 않고 전임교수 지위를 부여해야 강의한다는 점 등이 맞물리면서 인문학 분야 교수충원은 대학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문학계가 인문학 분야에 대한 공공적 접근을 요구해 인문학진흥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 법안은 당연히 인문학 특성을 반영하는 발전계획을 수립해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원론적 주문 이외에 이 법안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각종 평가에서 인문학 분야가 대학교육 전체에 기여하는 정도의 전임교원 확보를 주요 평가지표로 도입하는 것도 이뤄내야 그 소임을 다할 것이란 발언도 덧붙이고 싶다. 인문학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의 질은 특히나 인문학 교수진의 지위, 규모 및 역량에 주로 달려 있다. 시설로는 연구실이면 족하다. 그렇다면 인문학 진흥의 지름길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각종 지원이라기보다는 인문학 전임교수를 이들이 기여하는 그만큼이라도 확보하도록 대교협 평가, 재정지원사업 평가 등에서 주요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이를 게을리 하면 하는 만큼 대학과 인문학 분야는 평가산업의 시장논리에 휘둘릴 것이다. 법은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 대학평가 시장과 산업이 성장하며 빠트린 점에 대한 보완과 생태계 재구축에 인문학진흥법이 나서야 한다.

 

 

반성택 서경대·철학과
독일 부퍼탈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인문학총연합회 사무총장과 한국현상학회 회장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아고라에서 광화문까지』, 『현대철학의 모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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