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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국인 정신 담은 ‘우리철학’ 시작할 때”
“이제는 한국인 정신 담은 ‘우리철학’ 시작할 때”
  • 교수신문
  • 승인 2016.07.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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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철학’ 모색한 조선대 우리철학연구소 2016년 학술대회

 한국의 철학 1세대나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수업을 들은 많은 학문 후속세대들이 여전히
일제강점기 때의 교육 내용과 시스템에 대해
크게 성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답습하고 있다.

후쿠자와 유기치(福澤諭吉), 니시 아마네(西周) 등 근대 동아시아의 학문체계 형성에 깊이 관여했던 일본의 근대 사상가들은 유·불·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유방식을 지양하고, 서구의 과학적 문명을 적극적으로 선양했다. 한국 학계가 현재 사용하는 ‘철학’이란 용어 역시 ‘Philosophy’에 대한 서구 중심적 사고를 반영하는 니시 아마네의 번역어다.

특히 한국에서는 20세기에, 전반기의 일제강점기와 후반기의 서구적 산업화 과정에서 이른바 ‘서양철학’이 큰 저항 없이 수용됐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철학’은 보편적인 ‘철학’으로, 전통철학은 그와 대비되는 특수한 ‘동양철학’으로 여겨졌다. 대학의 철학 교과목도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서양철학’ 중심의 교과목으로 구성되었으며, ‘한국철학’에 대한 교과목의 비중은 더욱 작다.
그러나 ‘서양철학’이 보편이고, ‘동양철학’이 특수라는 관점이 진리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각각의 내용 속에는 특수와 보편이 공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철학자들이 일찍부터 학문의 균형 발전과 둘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한 우리철학의 정립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가운데 2014년 5월 24일 이철승 조선대 교수가 앞장서 ‘우리철학연구소’ 창립기념학술대회를 열어 ‘우리철학’ 모색을 표방했다. 당시 그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무비판적인 ‘수입철학’과 맹목적인 ‘전통철학’에 대한 지나친 의존현상을 반성하고, ‘우리철학’의 정립 문제를 오랫동안 고심해온 끝에 비주체적인 철학 풍토를 지적하면서 우리철학연구소의 창립을 계기로 새로운 세계관에 바탕한 ‘21세기형 우리철학’의 정립에 나서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철승 교수를 소장으로 한 조선대 우리철학연구소는 이후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근대 전환기 한국철학의 도전과 응전’이라는 주제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주관하는 ‘2015년 한국학총서사업’(3년)에 선정됐다. 우리철학연구소가 지난 1일(금),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근대전환기 전통철학의 계승과 변용’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는 우리철학총서사업단에서 진행하는 1차년도 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근대전환기 전통철학의 계승과 변용’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에는 기조발제 「우리철학의 현황과 과제」(이철승)를 비롯해 「정인보와 장병린의 주체론 비교」(김윤경 조선대 연구원), 「황성신문의 실학인식」(김현우 조선대 연구원), 「근대전환기 도교 전통의 모색」(김형석 경상대 교수), 「기독교철학에 대한 최한기의 비판적 수용」(이종란 조선대 연구원), 「인물성동이론의 계승과 변용」(홍정근 조선대 연구원) 등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날 발표된 논문 가운데 이철승 소장의 기조발제문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번째로 그의 문제의식을 담은 서론 부분을 소개한다.

 

21세기가 진행 중인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온갖 문제가 중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이념적 갈등이 끊임없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이념의 일반화에 의한 소외 현상이 각 계층과 세대와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시대 문제가 산적한 한국의 현실에서 철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의 철학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철학은 이러한 문제를 외면해도 되는가? 철학은 현실의 문제보다 현실과 무관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해도 되는가? 이 시대에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철학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동안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도출한 이론이 아니라, 외국의 특수한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립된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한국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경험이 있다. 이것은 그 외국의 이론을 소개하는 면에 강점이 있지만, 그 이론의 현실적인 의미를 강구하는 면과 주체적인 자세로 철학을 공부하는 면에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철학의 영역 가운데 하나인 관념론 자체의 성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대전환기에 탄생한 ‘철학’ 용어에서 비롯된다. 곧 유학의 폐기와 서양 근대 문명의 선양을 강하게 주장했던 일본사람인 니시 아마데(西周, 1829~1897)는 ‘Philosophia, Philosophy’를 ‘哲學’이라고 번역했다. 이때 그는 유학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유를 철학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철저히 근대 과학 문명을 탄생시켰던 서구적 사유를 ‘철학’으로 여겼다. 이 시기에 ‘철학’이라는 어휘는 ‘지혜를 사랑함’이라는 본뜻을 편향적으로 적용시켰을지라도, 다른 용어들(理學, 性學, 格致學, 窮理學 등)과의 경쟁을 뚫고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에 정착하게 된다. 특히 이 개념은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의 철학 1세대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서양식 근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서양과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부는 경성제대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경성제대의 공부 시스템은 동경제국대학을 모델로 삼고, 동경제국대학은 서양의 선진적인 국가의 교육 시스템을 모방했다. 또한 경성제대는 조선의 식민 정책을 공고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경성제대 철학과의 주요 교과목 역시 현실 문제와 비교적 관련이 적은 관념론 중심의 ‘서양철학’ 과목이 주류를 이뤘다. 따라서 그들의 사유와 연구 또한 대부분 ‘서양철학’ 중심이다. 이 무렵 전통철학은 제도권 안에서 독자적으로 설 기회를 갖지 못하고, 제도권 밖에서 연구됐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서양철학’은 보편적인 철학이고, 전통철학은 특수한 ‘동양철학’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편견이지, 사실이 아니다. ‘서양철학’은 보편이고 ‘동양철학’이 특수라는 관점이 진리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속에는 각각 특수와 보편이 공존하고 있다. 비록 일부학자들이 <신흥>과 <철학>을 통해 당면한 현실 문제에 대한 글과 전통철학에 대한 글을 게재했지만, 전반적인 연구 풍토는 관념론 계열의 ‘서양철학’이 대세였다.

이처럼 근대 전환기 한국의 철학 연구 풍토는 그 용어가 탄생하던 때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우등의식이 반영된 근대 일본 지식인들의 사대주의적 태도의 영향에 의해 전통철학의 홀대와 ‘서양철학’의 확산이 이뤄졌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순수한 이론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특정한 시기의  특수한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 문제에 대한 연구의 저조와 전통철학에 대한 교육 기회의 적음은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20세기 후반을 거쳐 시대 상황이 그때와 매우 다른 현재까지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현대 한국의 철학 1세대나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수업을 들은 많은 학문 후속세대들이 여러 대학의 교수가 된 후에도, 여전히 일제강점기 때의 교육 내용과 시스템에 대해 크게 성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우리의 철학을 연구해 의미 있는 이론을 생산해야 한다. 외국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전파하거나, 이전에 형성된 철학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복원하는 것으로 우리의 철학적 임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탐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우리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그 철학은 협애한 민족주의나 편협한 국수주의적인 성향을 띠지 않아야 한다. 그 철학은 비록 특수한 상황을 토대로 하여 성립하지만, 여러 특수한 상황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공통의 공속의식을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곧 이러한 철학은 한국의 특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을 깊게 반영해 성립시킨 보편성을 지향하는 합리적인 이론 및 외국으로부터 전래됐지만 맹목적으로 그것을 추종하지 않고 한국의 실정에 부합할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이론 등을 아우른다. 이러한 철학이 바로 ‘우리철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이철승 조선대·철학과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자의 서재』, 『동양사상의 이해』, 『동양처학의 자연과 인간』 등 다수의 책을 펴냈으며, 『현대신유학』 등을 번역했다. ‘우리철학’의 기원과 형성, 사상적 특성 등을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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