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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39> 김두종의 『韓國醫學史』
[우리시대의 고전]<39> 김두종의 『韓國醫學史』
  • 이종찬/아주대 의학사상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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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1:47:45
이종찬/아주대 의학사상

나는 생전에 김두종 선생님을 직접 한번도 뵌 적이 없다. 그가 남긴 학문적 자취를 통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를 醫史學의 길로 이끌어주신 기창덕 선생님께서 췌장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면서도 ‘一山 김두종 박사 의사학 논문집’(2000년 5월)을 준비하셨는데, 결국 그의 사후에 이 논문집이 출간됐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선에서 두 분은 무슨 말씀을 나누었을까. 두 선생님의 가상 대화를 통해, ‘韓國醫學史’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기창덕 :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교수신문에서 ‘한국의학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선생님께서 의사학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두종 : 기박사, 오랜만입니다. 쿄토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하얼빈에서 제세의원을 경영하다가, 42세가 되던 1938년부터 奉天에 있는 만주의과대학 동아의학연구소에서 1946년까지 중국 의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이 때에 비로소 의사학과 書誌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지요. 8년간 중국의학의 고서적들을 모으면서, 의학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깨닫게 됐어요.
기창덕 : 그러면, 이 때에 ‘한국의학사’를 쓰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김두종 :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중국의학을 공부하면서 우리 의학의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칠 수 없었지요. 해방이 돼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朝鮮醫報’의 창간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에 대해 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이 때, 李能和가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에 ‘朝鮮醫藥發達史’(1931)를 8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요.
기창덕 : 1954년 정음사에서 출간된 ‘한국의학사’는 上世와 中世편만 포함하고 있으며, 1966년에 탐구당에서 전편을 상재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의사학자인 미키 사카에는 1955년에 ‘조선의학사 및 질병사’를 발행했으며, 1963년에 출판됐습니다. ‘한국의학사’를 보면, 미키의 책이 곳곳에서 인용되던데요.

김두종 : 책을 완성하는 데 무려 12년이나 걸리게 된 것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우선, 내가 중국 봉천에서 공부한 것이 주로 고대와 중세였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다음으로, 미키 사카에의 연구가 나에게 자극이 됐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가 다루지 않았던 분야인, 하지만 한국의학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인, 한국이 서양의학과 만나게 되는 최근세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어요. 이를 위해, 1957년에 미국 의사학의 발생지인 존스홉킨스 의사학연구소에서 1년간 서양의학사를 공부했어요. 또한, 한국과학사학회에 참여하면서, 의학사와 과학사의 관계에 대해서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기창덕 : 저는 ‘한국의학사’를 읽으면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건강과 질병 문제, 그리고 의료 정책과 제도에 대해 다양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께서는 백제가 중국과는 다른 醫博士와 採藥師라는 독창적인 의료제도를 시행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흔히 서구의 제도로만 알려져 있는 의약분업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두종 : 이 책과 관련해 제일 안타깝게 여기는 점은 첫째, 서양의학을 배우는 의사들이 우리의 전통 의약을 문화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과 둘째, 한의사들조차도 한의학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창덕 :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점은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의사학이나 과학사를 역사학의 한 분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두종 : 그렇군. 제자인 이영택 선생 이후 끊어질 뻔했던 의사학의 명맥을 기박사가 다시 이어주어 고맙구려. 특히 서울대 의사학교실을 황상익 선생이 잇고 있어서 든든하다오.

기창덕 : 끝맺음을 대신해, ‘한국의학사’는 한자가 많을뿐더러 책의 디자인이 현대의 문화적 감성에 맞지 않아 읽기에 다소 불편합니다. 저의 제자가 문화 디자이너로 있는데, 이 친구에게 작업을 맡기면 더 많은 독자들이 ‘한국의학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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