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1:50 (목)
신진연구자로서의 첫 걸음 떼기
신진연구자로서의 첫 걸음 떼기
  • 남지수 경기대 박사후연구원·연극학
  • 승인 2016.07.04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남지수 경기대 박사후연구원·연극학

나는 ‘동시대 다큐멘터리 연극’에 관한 논문으로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수료 후 논문을 준비하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벨기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다시 밟긴 했지만, 사실 국내 석박사 과정을 거친 순수 국내파에 가깝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 해외 석사과정으로 역행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국내파 연구자로서 지녔던 개인적인 불안감이 상당히 컸음을 고백한다.

빈번히 찬밥신세 취급당하는 국내 박사학위 소지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함께 산업계로의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인문학 분야 연구자로서의 불안한 위치는 대학졸업을 유예하는 취업준비생의 절박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위를 마치는 것보다 학위를 마친 이후 과연 연구자로서의 정당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일종의 도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미뤄왔던 박사논문의 끝마침은 후련함과 동시에 커다란 부담감이었다. 특히 최근 많은 대학들이 인문학 분야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고, 내가 속한 연극예술학의 경우 연출이나 연기 같은 실기과목의 비중은 늘리는 반면 이론 강좌는 축소시키고 있는 실정인데다, 국내파 연구자들은 유학파에 비해 강의를 구하는 것도 비교적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강의를 막 시작하는 입장에서 강의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신진 연구자로서 온전히 강의에만 소비되지 않고 연구를 지속해 나간다는 것 또한 애로사항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위를 마치고 선정된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 연수과정은 내가 ‘강의기계’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나아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적 윤리의식을 각인하고 학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준 계기였다.

박사후 연수과정을 통해 박사논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범주의 다큐멘터리 연극현상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박사후 연수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의 박사논문이 제 모습을 온전히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연수과정 덕분에 논문을 기반으로 향후 다큐멘터리 연극관련 단행본을 출판하고자 했던 필자의 다소 막연했던 계획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사례를 보건대, 박사후 연수과정은 신진 연구자들이 전공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삶과 학문적 정체성을 반성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박사후 연수과정은 연구인력의 양성과 질적 제고, 궁극적으로는 중견 연구자 층을 두텁게 할 수 있는 기초사업이라는 점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한국연구재단 박사후 연수과정 지원사업에 제안하고 싶은 점이 있다. 적어도 박사후 연수과정 지원자들에게는 중복지원을 허용해야 할 것이다. 막 학위를 마치고 나온 신진연구자들이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은 박사후 연수과정이나 시간강사 지원사업 정도밖에 없다. 다른 사업들은 지원자격에서 충족되기가 어려울 뿐더러, 아무래도 중견 연구자 그룹에 밀려 선정되기도 어렵다.

지원사업에 대한 경험이나 경력이 부족한 신진연구자들에게는 적어도 이 두 사업에 대해서만이라도 중복지원을 할 수 있는 배려가 요구되지 않나 싶다. 이제 막 연구자로서의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한 신진 연구자들에 대한 제도적 배려로 그들이 연구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으면 한다.

 

남지수 경기대 박사후연구원·연극학
동국대에서 연극이론(뉴다큐멘터리 연극)으로 박사를 했다. 동시대 연극의 다양한 현상에 관한 논문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