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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폭력
제도와 폭력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6.07.04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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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사람은 세상에 날 때 날것의 존재 그대로 난다. 아무 것도 걸친 것 없이 남자 아이로든, 여자 아이로든, 제3의 성으로든 주어진 삶의 몫으로 이 세상에 온다. 세상을 떠날 때는 다르게 떠난다. 저마다 가진 의식과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옷을 입고, 각기 다른 장례의식에 따라 일생의 과정을 끝마치게 된다.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사람은 자신의 자연적 생을 끝없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위적 과정에 부딪치게 하며, 견디며,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이 인위적 과정을 통틀어 사회라 하고 또 제도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내지 제도는 한 사람의 개체로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 조건이자 삶의 울타리로 기능한다. 개체는 세상에 날 때부터 사회 또는 제도에 편입됨으로써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으며 이것 없이는 어떤 생존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체 각각은 그 자체로서 완전하지 않으며 전체에 그 일부로서 유기적으로 연계됐을 때만 개체로서의 존재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개체는 자신을 포괄하는 전체의 힘에 언제나 다각도에 걸쳐 노출돼 있으며, 그 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전체는 어떤 단위의 전체이든 개체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힘, 나아가 생사여탈권을 가진 힘으로 작용하며, 이 전체의 힘을 대표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사람 또는 사람들에 집중된 힘은 각각의 개체의 운명쯤은 손쉽게 좌우할 수 있게 된다.

이 힘의 작용과 폐해가 필자에게 분명한 형태로 인식된 것은 바로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때는 1990년 전후, 사회가 무섭고 싫어 대학원행을 선택한 필자에게 대학원은 그 또한 사회임을, 다른 모든 사회적 단위들,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원 또한 정글이며, 그물망이며, 증오, 혐오와 따돌림 같은 덫으로 가득찬 곳일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문제는 그 힘의 실체를 명확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거부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마술적 힘으로 의식되며, 때문에 그들은 거절, 비판, 공격 대신에 먼저 자학과 자기 혐오, 좌절, 공포 같은 것을 먼저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몹시 길고 지난하고 음습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기간이어서 견뎌 살아남는 것 자체가 크나큰 과업이 되게 마련이다.

이때 이런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은 심각한 도피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그들은 도피의 공간, 광장을 대체할 밀실을 갈구하며, 비좁고 어두운 밀실의 퇴폐적 쾌락에 침닉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도피와 망각은 연약한 개체가 위압적 전체의 힘에 대응하는 최초의 반작용이다.

그리고 자살은 이 도피, 망각의 가장 극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가하는 전체의 부조리에 삶을 방기함으로써 복수하고자 하는 이 문제적 형식은 오늘날 이 사회의 심각한 병증이며, 이 사회가 병들어 있음을 역으로 입증한다.

다음은 반항이다. 도피와 망각이 불가능할 때, 또는 그런 방식으로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믿게될 때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의 실체를 바로 보려 애쓰게 되며 그것을 향하는 적극적 반작용을 꾀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은 전체의 폭력에 노출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다. 전체는, 전체를 대표하는 힘은, 그 인격적 담지체들은 대부분의 경우 관대하지 않다. 가혹한 의지와 거대한 처분력을 가진 그들은 각각의 연약한 개체쯤은 어떻게라도 짓밟을 수 있다. 자기를 짓밟고 있는 굳센 장홧발을 들어올리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선언하는 것, 이 과정은 니체로 말하면 초인적 의지를 발휘하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제도적 폭력이 이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없다. 큰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스스로 고통에 짓눌려 죽음을 선택하는가 하면, 학교 바깥도, 안도 만연하는 제도적 폭력에 노출돼 있다. 개체들의 생존과 안녕이 심히 위태롭다. ‘내’가 이 전체의 어떤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성찰해야 할 때다. 혹여 ‘내’가 이 폭력의 행사자인지도 알 수 없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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