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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해석인 ‘비극적 황홀’ 아니다” … ‘끔찍한 아름다움’에 비견되는 白虹으로 봐야
“주류 해석인 ‘비극적 황홀’ 아니다” … ‘끔찍한 아름다움’에 비견되는 白虹으로 봐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6.28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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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읽어낸 이육사의 ‘강철로 된 무지개’ 그 의미는?
▲ 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왼쪽)가 이육사의 시를 잇따라 재해석하고 나서서 화제다. 특히 그는 육사의 대표시 「절정」의 마지막연 ‘강철로 된 무지개’를 둘러싼 국문학계의 오래된 논쟁에 뛰어들어, 국문학계의 주류해석과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의열투쟁에 나섰던 이육사(오른쪽)의 ‘강철로 된 무지개’는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매운 季節의 채쭉에 갈겨/마츰내 北方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高原/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시 「絶頂」(<문장>, 1940년 1월)의 전문이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연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는 육사의 시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구절이다. 이 결구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육사의 시 「절정」은 국문학사적 위치가 다르게 놓일 수 있다.

여기 한 역사학자가 기발한 논거를 제시하면서 육사의 시 「절정」을 다시 읽어내면서, 그 의미지평을 심화하고 있다. 올봄 <역사비평> 114호(2016년 봄호)에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청포도’와 ‘청포(靑袍)’, 그리고 윤세주」를 발표했던 도진순 창원대 교수(사학과)다. 그는 최근 발간된 <민족문학사연구> 통권 60호에 논문 「육사의 ‘절정’」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발표했다. 27쪽 분량의 이 논문에서 도 교수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에 대한 그간의 다양한 견해를 살펴보고, 어느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논증했다.

첫째, ‘강철로 된 무지개’가 일반적인 채색 무지개가 아니라 荊軻가 진시황을 암살하려 할 당시 나타났다는 ‘白虹貫日’의 ‘흰 무지개’에서 비롯됐다. 둘째, 이러한 ‘흰 무지개’는 전통 사회에서 반역과 불길의 징조였지만, 일제 식민지하 독립운동에서는 윤봉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義烈 투쟁의 상징이 됐다. 셋째, 1918년 일본에서 유명한 ‘白虹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육사는 ‘흰 무지개’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강철로 된 무지개’로 표현했다.
그간 ‘강철로 된 무지개’에 대한 국문학계의 주류적 해석은 예이츠(W.B.Yeats)의 비극적 환희(tragic joy)에서 차용한 ‘비극적 황홀(tragic ecstasy)’이었다. 도 교수는 이에 대해 “그러나 이것은 죽음과 수난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의열투쟁을 적극 지지하던 육사와 「절정」의 시세계와는 맞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것은 예이츠가 「1916년 부활절」에서 제국의 끔찍한 탄압에 의해 오히려 독립의지가 강화되는 ‘끔찍한 아름다움(terrible beauty)’과 비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 교수의 논문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B.C227년, 드디어 형가는 진나라로 가게 되는데, 국경 가까이 있는 易水에서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사기』의 「자객열전」과 『전국책』이 전하는 이수의 이별 장면은 눈에 잡힐 듯 생생하며 장엄하기 그지없다. 이수 강변에서 이별의 의식이 행해지는데, 형가가 노래를 두 번 부른다. 이수의 이별 현장에서 형가가 두 번 부른 노래를 후에 「易水歌」라 하는데, 15자의 짧은 2구이지만 꾸밈이 없고 비장하기 그지없다. “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이수 강물은 차구나/壯士一去不復還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그런데 『사기』 「추양열전」에는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러 갈 당시 하늘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白虹貫日)’는 묘사가 있다. 이로부터 형가의 외침(노래)이 하늘로 기운이 뻗어 흰 무지개가 돼 해를 찔렀다는 故事가 됐다. 여기서 해는 진시황 같은 군주를, ‘흰 무지개’는 그를 찌르는 劍을 의미한다. 형가로 해서 ‘易水送別’, ‘白虹貫日’ 등 많은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흰 무지개(白虹)’는 ‘荊攝’에서 비롯돼 국가적 변란의 상징으로 시와 문학은 물론 천문현상에 대한 기록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물론 대부분 불온한 흉조의 상징이다. 태평한 시기에는 白虹이 불길한 징조지만, 폭군 치하의 난세에는 희망과 변화의 상징이다. 결국 백홍을 어떻게 보는가가 그 시대를 보는 척도가 된다. 독립운동의 최대 목표는 식민 권력을 무너뜨리고 조국의 독립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지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흰 무지개’나 그 원조인 형가는 의열 투쟁의 대표적 상징이 됐다. 그 단적인 예가 윤봉길 의사다.

윤 의사는 1930년 3월 6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둘째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독립 투쟁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망명길에 오르면서 그가 남긴 유묵은 ‘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丈夫出家生不還)’였다. 이 구절이 다름 아닌 형가의 「이수가」 중에서 비롯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화답하듯, 미주 지역 독립운동 신문인 <신한민보>의 주필 洪焉은 윤봉길의 의거를 ‘이수의 비가는 지기의 노래(易水悲歌知己音)’라는 구절로 찬양했다.
이처럼 ‘형가’, ‘이수가’, ‘흰 무지개’ 등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항일 의열투쟁의 상징이었다. 일제의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서 육사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바로 이러한 무지개, 즉 검의 기세로 해를 찌르는 ‘흰 무지개’였다. 물론 여기서 해(日)는 日帝다.

육사는 일제 치하에서 불온과 불길을 상징하는 劍의 흰 무지개를 환호하면서 은밀하게 표현했다. 「절정」과 같은 해에 발표한 「西風」(<삼천리>, 1940.10)을 보자. 형가의 「이수가」가 스산한 강바람에서 시작하듯, 이 시도 ‘서리 빛을 함복 띠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스산한 서풍으로 시작한다. 시의 중심은 ‘서리 빛’, ‘갈대꽃 하얀 위’로 상징되는 ‘흰 무지개’다. 그 흰 무지개를 품은 서풍이 하늘에서 내려와 형가와 같은 壯士의 칼집에 스며들어 검과 결합해 고향으로 돌아오자, 뭔가 큰 사건이 터질 듯 젊은 과부의 뺨은 하얗게 질리고, 대밭의 벌레들이 소란스럽게 울어댄다. 그러나 시적화자는 이처럼 ‘회한’의 정한을 ‘사시나무 잎처럼 흔드는’ 그 서풍이 불어오면 ‘불길할 것 같아’ 좋다는 것이다. 이 ‘서풍’은 다름 아닌 육사가 사모한 ‘백홍관일’ 즉 ‘강철로 된 무지개’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지금까지도 ‘강철로 된 무지개’에 대한 주류적 해석은 김종길이 예이츠의 ‘비극적 환희’를 차용한 ‘비극적 황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적 환희’가 예이츠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김종길은 그것을 죽음의 비극 앞에서도 초연한 경우로 해석해, 1910년 한일병합에 자결하는 매천 황현, 1944년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하는 육사, 1945년 후쿠오카 감옥에서 순국하는 윤동주 등의 시 세계를 ‘비극적 황홀’로 설명하면서, 「절정」의 ‘강철로 된 무지개’를 그러한 ‘비극적 황홀’로 해석했다.

그러나 ‘강철로 된 무지개’는 비극이나 죽음을 초연한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비극적 환희’나 ‘비극적 황홀’과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제의 ‘겨울’과 ‘매운 계절의 채찍’에 맞서는 장렬한 투쟁 선언이다. 형가가 「이수가」를 부를 때 듣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이 솟구치’는 강개한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나, 아우 이원조가 「절정」을 육사의 ‘楚剛’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절정」의 최후, 최고의 문제는 마지막 구절에서 ‘겨울’과 ‘강철로 된 무지개’ 사이의 관계지음이다. 여기서 ‘겨울’은 이제의 엄혹한 탄압을 상징하며, ‘강철로 된 무지개’는 이에 대한 강개한 의열 투쟁으로 서로 적대적 대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는 둘 사이를 ‘~는’을 사용해 등치 관계로 표현했다. 즉 ‘겨울에도 강철로 된 무지개가 뜬다’는 식이 아니라, ‘겨울’이 곧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역설적 모순어법(oxymoron)이다. 바로 이 결구의 모순어법이 예이츠의 시 「1916년 부활절」에 나오는 유명한 모순어법인 ‘terrible beauty’에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이츠는 「그레고리 여사에게 보낸 서신」에서 1916년 부활절에 대한 시를 쓸 것이라면서, 이미 ‘무서운 아름다움이 태어났다(A terrible beauty is born)’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먼저 이 구절을 시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시를 집필했다. 그리하여 이 구절은 「1916년 부활절」에서 가장 중요한 후렴구가 됐다. 이 시는 그의 시 가운데 드물게 현실에 밀착한 시이며, 특히 ‘terrible beauty’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이츠와 육사는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도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역시 식민 현실에 대한 대응이다. 예이츠의 시 세계가 대개 아일랜드 독립 투쟁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초연한 입장에 있었다면, 육사는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가하고자 했다. 따라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를 예이츠 시에 많이 나타나는 ‘비극적 환희(tragic joy)’와 구별해, 보다 특별하게 사용된 ‘terrible beauty’와 비교하는 것이 더 타당하고 생각한다.

예이츠의 「1916년 부활절」이 식민적 일상에서 시작해 ‘terrible beauty’로 귀결됐다면, 「절정」은 식민 권력의 ‘채찍’에 쫓기는 被動에서 시작해 이에 맞서는 能動의 선언인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로 끝난다. ‘매서운(terrible)’ 추위의 겨울은 그 맞대응인 아름다운(beauty) ‘강철로 된 무지개’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는 ‘terrible beauty’, 그것으로 「절정」은  마무리된다.
‘陸史’는 ‘戮史’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냥 ‘대륙의 역사’가 아니라, 그것을 ‘베어버린다’ 또는 ‘새로 쓴다’고 해야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육사가 당시 지배적인 담론과 개념을 베어내고 顚覆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점에 각별하게 유의하지 않으면 육사를 다시 물구나무 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흰 무지개’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절망의 노래’라고 한 것이나, 청포의 ‘靑袍’를 ‘귀의한 자들이 입는 복장’으로 본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靑袍’에서 보듯이 육사는 자신이 존경하는 두보의 시어마저 혁명적인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장구한 역사에서 ‘흰 무지개’는 대개 ‘불온의 상징’이었다. 그는 해박한 안목으로 ‘흰 무지개’의 원천으로 올라가 그 건강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권력에 의해 전복된 이미지를 다시 전복시키고자 한 것이다. 변혁을 마다하는 권력 주도의 넓고도 긴 역사를 베어내는 절창이 바로 ‘강철로 된 무지개’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강철로 된 무지개’야말로 ‘戮史’ 또는 ‘陸史’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절정」의 ‘절정’은 역시 ‘강철로 된 무지개’가 ‘겨울’과 결합한다는 데 있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망 또는 투쟁과 짝하는 ‘terrible beauty’가 돼, ‘매운 계절’인 겨울마저도 다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강철로 된 무지개’야말로 오색영롱한 그 어떤 채색 무지개보다 아름다운 무지개가 아닌가? 우리 국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무지개가 아닐까?

-역사학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왼쪽)가 이육사의 시를 잇따라 재해석하고 나서서 화제다. 특히 그는 육사의 대표시 「절정」의 마지막연 ‘강철로 된 무지개’를 둘러싼 국문학계의 오래된 논쟁에 뛰어들어, 국문학계의 주류해석과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의열투쟁에 나섰던 이육사(오른쪽)의 ‘강철로 된 무지개’는 과연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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