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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성·주체성 따른 탈식민주의 구분 유효하지 않다
자생성·주체성 따른 탈식민주의 구분 유효하지 않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6.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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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저항과 포섭 사이: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논쟁적인 이해』 이석구 지음|소명출판|763쪽|49,000원

관건은 빌려온 담론들과 훔쳐온 지식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반박하는가의 문제이지,
순수하게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담론도, 운동도 없다는 사실이다. 독립과 자율은
이질성에 대한 치열한 개입에서만 ‘적과의 동침’을 통해 하나의 전망으로 주어진다.

 

탈식민주의 연구에서 그간 있었던 정평 있는 해외 연구서로는, 북미의 흑인해방운동에 관해서는 모지즈(W. J. Moses)의 저술이, 프랑스어권에서 있었던 반식민 운동이었던 네그리튀드에 관해서는 케스틀룻(L. Kesteloot)의 저술이, 최근의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해서는 무어-길버트(Bart Moore-Gilbert)의 저술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항과 포섭 사이』는 이들의 연구와는 차별되는 시각에서 이들과 논쟁적인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 연구서에서는 원전 연구에 천착함으로써 비평가 모지즈나 케스틀룻이 일차 문헌과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거나 오독했는지를 지적하는데 주력했다. 우선 모지즈에 의하면, 북미의 흑인해방운동은 흑백통합론과 흑인분리주의(이주론)로 나뉘며, 이 두 진영은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평행선을 달린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한 세기 동안 이 양대 세력에 속했던 지도자들 중 반대편 진영으로 입장을 바꿀 것을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흑인운동의 두 진영 사이에는 대립에 못지않게 대화와 인적교류가 있었고,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다른 목표 아래에서 전략적으로 제휴를 했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개인은 한 진영에서 다른 진영으로 자리바꿈을 하기도 했으며 또다시 원래의 진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양 진영 간의 제휴나 개인의 입장 번복은, 이주론과 통합론을 대별하는 이분법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당대의 역사적 상황, 특히 도주 노예에 대해 북부 州들이 보여줬던 일관되지 못한 정책과의 관계에서 고려될 때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네그리튀드의 선구적인 학자 케스틀룻이 주장한 이래로 대부분의 후대 연구자들이 수용한 견해들에 대해서도 이 연구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 견해 중 하나는 네그리튀드 운동의 출발을 1935년에 <흑인학생>을 첫 출간함으로써 시작된 생고르, 세제르, 다마스 3인의 활동에 귀속시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3인방이 초기부터 반-서구적인 문화적 저항운동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견해는, <흑인학생>보다 먼저 파리에서 간행되고 있었던 많은 흑인 잡지들뿐만 아니라 할렘 르네상스를 3인방에게 소개해준 나르달 자매의 존재를, <흑인학생>보다 먼저 서인도제도의 문화적 독립을 전투적인 언어로 외친 <정당방어>의 공동 창간인들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둘째 견해, 즉 네그리튀드를 반서구적인 문화 순수주의로 인식하는 경향은, 이 운동이 실제로 유럽의 지식과 담론에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를, 이 운동이 아프리카 문화를 계승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유럽 문화를 수용할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서구의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로 흑인운동의 진정성을 평가한다면 세제르와 생고르 같은 핵심 인물들도 네그리튀드의 범주에서 제외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의 연구에서는 네그리튀드를 흑인 문화 순수주의가 아니라 대서양 양안의 지식담론과 아프리카 문화의 합작품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식민주의 이론과의 논쟁적인 대화는 사이드, 바바, 스피박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하면서 탈식민주의 이론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서구의 후기구조주의 이론에 경도돼 저항의 가능성을 닫아버렸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의 후기 저서 『문화의 제국주의』는 이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서 저술된 일종의 자기 교정의 의미를 띤다. 사이드의 이론이 후기구조주의를 빌려 옴으로써 안게 되는 정치적 손실을 논의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교정했다고 하는 그의 후기 저서도 실은 초기 저서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바바와 스피박은 ‘식민 재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동시대의 이론가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들이 화두로 삼는 ‘재현의 공정성’ 문제가 바바와 스피박 자신의 작업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논의한다. 이를테면 바바는 소수 민족의 전복적 목소리를 청취하는 방안으로써 혼종성의 개념을 주창하지만, 이 개념을 보편적인 모델로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소수 민족의 목소리를 왜곡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재현의 불공정성은 스피박의 ‘하위주체론’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한국의 비평계에 탈식민주의가 소개된 지 25년 정도 됐다. 이 분야에서 그간 있었던 굵직한 국내 연구로는, 『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고부응, 2002), 『탈식민주의―이론과 쟁점』(고부응 외 11인, 2003), 그리고 『검은 역사 하얀 이론』(이경원, 2011)을 꼽을 수 있다. 그간 적지 않은 국내 학자들이 탈식민주의가 서구의 제국주의에 봉사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탈식민주의가 제1세계의 지식인들에 의해 이론화 작업을 거치게 될 때 저항성을 잃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서구의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평가의 잣대로 작용한다. 이러한 잣대에 의해 일찍이 무어-길버트가 탈식민주의를 탈식민주의 비평과 이론으로 나눈 바 있다.

나는 탈식민주의 운동을 ‘자생성’이나 ‘주체성’ 혹은 ‘출신지’의 관점에서 구분짓기가 매우 힘들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무어-길버트의 연구 및 이를 따르는 후속 연구들과 시각을 달리한다. 흑인 제국론을 주창한 마틴 들레이니, 흑인 감성론을 주창한 네그리튀드 운동, 심지어는 백인과의 동일시에서 깨어날 것을 동료들에게 촉구한 파농 같은 이른바 급진적인 운동가들의 주장도 엄밀한 시각에서 보면, ‘자생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엄밀한 관점에서 봤을 때, 북미의 흑인 해방론자들이 흑인주권국을 꿈꿨을 때조차 그 꿈은 기독교인으로서, 앵글로색슨 문명의 충실한 사도로서 꾼 것이었음을, 흑인의 가치를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던 것으로 기억되는 네그리튀드 운동도 실은 혼종적인 정체성을 목표로 했다고 하는 것이 정직한 평가다. 심지어는 오늘날 반식민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파농의 흑인론도 자생적인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한 부분이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담론이나 헤겔의 『정신의 현상학』이 없는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느 主義도, 어느 운동도 홀로 탄생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이 연구의 대전제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주인의 언어를 배워 주인에게 되사용하는 현대의 ‘캘리번’에 흔히 비유하지만, 사실 캘리번이 주인으로부터 욕만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캘리번이 배운 말은 주인을 고발하는 무기로도 사용되지만, 캘리번의 의식의 풍경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양식도 된다. 관건은 빌려온 담론들과 훔쳐온 지식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반박하며 변형시키는가의 문제, 즉 다양하고 이질적인 언어들과의 ‘협상’의 문제이지, 애초부터 순수하게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담론도, 운동도 없다는 사실이다. 독립과 자율은 운동의 자생성이나 순수성이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과 다양성에 대한 치열한 개입에서만, ‘적과의 동침’을 통해서 하나의 전망으로 주어진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사유다.

 

이석구 연세대·영어영문학과  
필자는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와 비교문학문화학과 교수로 있다. 『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2011)로 영어영문학 학술상과 연세학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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