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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이냐시오 라모네 지음/주형일 옮김, 상형문자 刊), 『대중의 영웅
[책들의 풍경]『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이냐시오 라모네 지음/주형일 옮김, 상형문자 刊), 『대중의 영웅
  • 마정미/경희대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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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1:45:40
마정미/경희대 강사, 광고평론가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가 정치적, 경제적 세계화와 맞물려 돌아갈 때 그 결과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출간된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우리 정신의 미국화’는 미국이 생산해 온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 영상 이미지 속에 녹아 있는 ‘미국 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고 문화 잠식을 통한 미국의 세계화를 비판하는 책이다. 저자인 이냐시오 라모네는 현재 파리 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자,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으로 세계의 미국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의 선봉장으로 작업해왔다. 신자유주의의 멈출줄 모르는 시장 지배와 문화적 획일화, 그리고 문화제국주의 현상을 적발하고 고발해온 것이다.

문화잠식을 통한 미국의 세계화 비판

군사력에 있어서나 경제력에 있어서나 무소불위의 패권을 가진 미국이 무엇보다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정보기술과 문화다. 지구촌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은 미국이 핵심적으로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모네는 먼저 타임워너사와 AOL의 합병을 계기로 거대미디어 기업의 수직적, 수평적 통합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어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가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무의식과 욕망을 자극해 새로운 결핍을 생성케 하고 광고를 통해 상품과 소비를 치료제로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프로그램 중간에 들어가는 중간광고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의 영상문법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오늘날의 미국 영화는 텔레비전 광고와 에피소드식 시리즈물의 사생아인 셈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영웅은 미국산이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산업은 미국의 언어로 된, 미국의 문화와 가치가 담긴, 미국의 이익과 현실논리를 반영하는 영화들이 전세계에 퍼져나가게 한 동인이다. 라모네는 공포영화는 ‘조작된 공포’를 통해 현실의 공포를 약화시키고, 자연 재해와 외계인 침공 등의 ‘재난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 같고 친절하며 위대한 힘을 가진’ 공권력·권력자에게 의지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지옥의 묵시록’ 같은 전쟁영화가 공격자의 관점에서 촬영됐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에서 지적했던 ‘지옥의 묵시록’에 대한 관점과 근본적으로 같다.
기 드보르가 말했듯이 현대사회는 스펙터클의 사회다. 그리고 이 스펙터클한 사회에서 현대적 프로파간다를 구성하는 가장 효과적인 기제는 광고와 영화다. 때문에 광고와 영화에 대한 분석은 이 책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적인 논지는 일찍이 아도르노를 위시한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서도 다뤄진 주제며, 당시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팽창한 현대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은 이에 대한 비판과 분석을 다룬 무수한 문화담론 관련서를 낳았다. 슈퍼맨을 분석대상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의 ‘대중의 영웅’도 그중 하나다.
알다시피 현대사회의 모든 영웅은 미국산이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과 광고, 영화를 분석한 문화비평가들의 많은 책들은 결국 미국문화 비평서라고 할 수도 있다. 현대 소비사회의 일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단연 미국 문화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논객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글을 비롯해,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시뮬라시옹’, ‘아메리카’ 역시 미국론 혹은 미국문화론에 다름 아니다.

보드리야르는 미국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오히려 현실을 초월해, 이제는 가상의 것들마저도 모방하는, 시뮬레이션으로 가득한 대륙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제국이 모든 것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상상계’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깊이 인식한 미국은 1945년 이후 사람들의 무의식을 ‘문화적으로’ 겨냥해 왔고 오늘날의 미국 이데올로기는 그 결과다.

라모네의 주장처럼 영상을 통한 미국화는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의 무서운 효율성으로 무장한 채 우리 안으로 침투한다. 때문에 영화, TV 등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상들에 대해 경계하는 법을 시급히 배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 문화비평가들의 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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