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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를 ‘부러워’하는 사회
부패를 ‘부러워’하는 사회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06.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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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많은 반성과 함께 부패척결 의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여전히 불법과 편법, 반칙과 변칙이 사회 곳곳에서 판치고 있다. 대형 조선사의 억대 비리는 끝을 알 수 없고, 재벌그룹의 불법·부당 행위와 특혜·비리 의혹은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다. 군인의 생명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방산비리는 잊을 만하면 터지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진실 왜곡에 이용 당한 과학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사회정의의 보루라는 명예와 자부심을 내팽개친 법조인들의 비리와 뇌물수수 의혹은 국민을 허탈하게 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돈과 권력의 유혹에 빠진 상식 밖의 부정과 부패가 이만큼 만연해 있는 것이다. 사회 구석구석마다 공생적 유착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관피아, 교피아, 군피아, 메피아 등 무슨 ‘피아’가 이리도 많은지 듣기에도 식상할 지경이다. 도대체 온전하고 투명한 구석이 남아있기나 하려나.

일부에선 우리 사회의 부패를 연고와 온정주의에 기반한 우리 특유의 ‘접대문화’ 탓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접대와 청탁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묵인됐고, 이것이 부정부패의 사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는 우리 사회의 부패와 비리가 예외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화되고 제도화됐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공익을 빙자한 부당한 사익의 추구가 내면화돼 있을 때 是非와 正邪의 분별은 불가능해지며, 국가 전반적인 불신의 상황, 즉 신뢰의 위기를 야기한다.

때맞춰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물론 대학과 민간 부문에서도 반부패 행동규범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부정부패 척결과 청렴실천을 다짐하는 결의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제도화된 부패가 조직에 만연해 있고 부패의 관행과 행동양식이 우리 사회에 내재화돼 있다면 이는 겉치레일 뿐 근본적인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반부패특별법인 이른바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이 법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관행을 척결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와 엄정한 처벌을 도입하는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법에 의지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법으로 오랜 문화를 바꿀 수 없을뿐더러 법과 제도가 부족해 부패가 만연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속으론 곪고 있는데 겉으로 아무리 강력한 처방을 한들 무슨 진정한 효과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지나친 규제와 집행은 오히려 탈법과 편법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뇌물과 부패의 관행을 통제하지 못한 나라와 집단은 반드시 망했다. 실력과 능력이 그대로 인정되고 반영되지 못하는 사회, 人情과 뇌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회, 편법이 효율로 둔갑되는 사회일수록 부패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우게 된다. 그리하여 부정부패한 자가 성공을 거두고 권력을 장악하며 존경을 받는 사회 속에서 국민은 정신적 박탈감과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상황은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말처럼 부패한 사회에서 ‘국민들은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되는’ 도덕성의 타락이 필연적인 현실로 다가올 때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비리의 이면에는 사익과 공익이 어긋나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상황 속에서의 갈등과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公의 영역은 私적 영역을 침범했고 공을 위해 사를 희생하는 정신은 찬양됐다. 그러나 뇌물과 청탁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우선시함으로써 사의 영역이 공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패방지를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교육 등 근본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자각이다. 모든 부패는 바로 타락한 윤리의식, 즉 우리 생각과 의식의 부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디지털 시대로, 비밀이 없어지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 개인이든 조직이든 투명성과 윤리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부정·부패이고 정의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인식능력과 공·사를 아우르는 公共정신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자기비판과 윤리성 회복이 필수적이다. 결국 우리 자신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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