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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꽂힌 스승님의 말씀
가슴에 꽂힌 스승님의 말씀
  • 박창일 연세대 명예교수, 재활의학
  • 승인 2016.06.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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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박창일 연세대 명예교수, 재활의학
▲ 박창일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면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후회되지는 않는다. 의과대 교수의 사명은 교육, 연구, 진료, 봉사라 할 수가 있다. 특히 진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는 소홀해 질 수 있다. 나도 연구 분야에서 마음껏 활동 못한 것에는 큰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교육 분야에서 많은 제자들이 학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제자들은 개업을 통해 앞서나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교육 분야에서 남는 아쉬움이라면, 훌륭한 제자를 만들어야한다는 일념에 제자 교육을 너무 엄하게 했다는 것이다. 교수로서 우수한 제자를 교육시키고자 함에 그랬겠지만, 조금 부드럽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들을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1983년 3월 1일 연세대 의과대 재활의학교실에서 전임강사로 시작했다. 이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전주예수병원에서 제법 수술을 잘하는 의사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을 때, 스승이신 故 신정순 박사님께서 연세대로 와서 재활의학을 키워 보라는 권유를 하셨다. 당시엔 고난도 수술을 요하는 환자를 치료하고, 그들이 완치되는 것을 보는 기쁨과 보람으로 재미있게 의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불모지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과 같은 재활의학 분야를 위해 일하라니, 내키지 않아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한 달 후 다시 권유하셨지만, 스승님께는 죄송하고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못하겠다는 말을 다시 드려야했다. 스승님께서는 실망하고 포기하시는 듯했다.

그러나 몇 주 후 전주까지 찾아오신 스승님은 호통을 치시는 것이었다. “학교는 누가 일으켜 세우고 지키라는 말입니까?” 이 한 말씀이 가슴에 꽂히면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스승님의 방문을 계기로 나의 고난 생활은 시작됐다.

내 나이 또래에서 흔히 있었던 일중독에 빠지게 됐다. 가정은 아내에게 맡기고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어떤 때는 새벽 2시까지 일하는 생활을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이런 고생 덕분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재활의학의 명의로 뽑혔고, 연세재활병원을 세계적인 의료기관으로 세울 수 있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재활의학회 회장이 됐고 2007년 서울에서 치룬 국제재활의학회 세계학술대회는 아직도 그 기록을 깨지 못하는 최고의 학술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말레지아 쿠알라룸프에서 개최된 세계재활의학학술대회에서 생애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인 ‘헬만 프락스상(Hellman Flax Award)’을 받았다. 물론 교수생활 틈틈이 장애인 체육발전을 위해 일한 업적도 참고가 됐다고 한다. 1988년 88장애인 올림픽게임에 참여한 이후 20여년 동안 아시아 장애인올림픽 부위원장과 의무분과위원장, 국제 패럴림픽 의무분과위원 등 장애인체육 활성화를 위해 일했다. 이러한 활동이 영예의 상을 받는 데 도움이 된 듯하다.

교내에서는 보직자로서 봉사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연세 재활병원장,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세브란스병원장,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으면서 새 세브란스병원 개원 준비 위원장으로 새 병원 개원에 역할을 했고 새 연세 암병원 건축, 에비슨 의생명연구센터 설립을 주도해 향후 50년 발전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정년을 1년 남기고 2011년 2월말로 연세대학교를 명예퇴직하고 건양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부름을 받아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운이 좋았는지 이번에도 성공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다. 건양대 병원이 국제의료기관 평가원(JCI) 인증을 받으면서 의료의 질을 높일 기회를 얻었고, 메르스 전파 때는 모범적인 대처로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월간조선에서 선정하는 2015년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병원협회에서 선정하는 존경받는 병원인상 CEO부문에도 선정됐다.

33년간의 교직생활을 지난 2월 말로 마무리한 지금에서야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33년간을 쉼 없이 달려왔기에 가질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다. 이렇게 돌아보니 험난하기도 했지만,  축복받은 삶이었음에 감사를 드린다.

박창일 연세대 명예교수, 재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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