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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깡촌 영국을 계몽강국으로 만든 그곳엔 어떤 일이?
유럽의 깡촌 영국을 계몽강국으로 만든 그곳엔 어떤 일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6.22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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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 매튜 그린 지음|김민지·박지현·윤지영 옮김|경북대출판부|93쪽|9,000원

고작 ‘커피하우스’를 책의 소재로 삼다니! 못마땅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학자 케인스, 소설가 E.M. 포스터,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독일서 건너온 프로이트 등이 회원이었던 ‘블룸즈버리 클럽’을 기억한다면, 영국이란 나라의 문화적 전통이 된 카페, 클럽의 맥락에서 이 책의 소재가 된 ‘런던 커피하우스’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런던 커피하우스는 17세기 중반 태동됐다. 한국어판 편집자도 썼지만, 이 시기는 ‘근대’가 분주히 자신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사회 전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됐고, 시민들은 어딘가에 서로 모여 상황을 주시하고, 의견을 내세우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곳이 바로 ‘커피하우스’였다. 이 책의 이중적 콘텍스트를 엿볼 수 있는 곳도 이쯤이다. 아니, 뒤늦게 17세기 중반 커피하우스, 그것도 런던커피하우스를 엿봐서 뭘 하겠다는 거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편집자 후기」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다. “당시의 런던 시민들이 근대를 경험한 첫 세대라면, 우리는 디지털 시대로 진입한 인류 첫 세대가 아닌가?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옛 런던 커피하우스의 정신이 디지털 시대의 혼란을 완화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렇다. 이 책의 번역을 결정한 이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눈치 챌 수 있다.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매튜 그린 역시 한국의 독자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쓰고 걸쭉한 이슬람 음료’가 17~18세기 런던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세상을 뒤집을 만한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나오도록 영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유럽의 벽촌에 불과했던 나라를 계몽 강국으로 바꿔 놓은 것은, 저자에 의하면, 카페인이 주는 흥취를 적극 즐기려는 전통이었다. 역겨울 정도로 쓰고 검은 터키 음료와 이를 마실 수 있었던 커피하우스, 그리고 그곳에서 형성된 사교문화였다.
바로 이곳에서 런던 시민은 낯선 누군가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눠도 전혀 거슬리거나 무례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권장될 정도였다. 그래서 저자는 이 커피하우스에 가는 것을 가리켜 ‘일종의 여행’,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호명한다. 대니얼 디포(저널리스트, 작가), 새뮤얼 존슨(시인, 평론가), 아이작 뉴턴(과학자), 알렉산더 포프(시인), 에드워드 로이드(사업가), 윌리엄 호가스(화가), 존 드라이든(극작가), 존 바이럼(시인) …… 근대 영국의 내면을 만든 숱한 이들이 이 여행에 동참했다.

▲ 18세기 초반의 커피하우스 내부를 보여주는 커피 파우더 광고.

역사학자답게 저자는 런던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 사람이 누군지를 기록한다. ‘파스쿠아 로제’라는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가 무역상 다니엘 에드워즈의 하인이자 통역관, 회계 담당자였다는 걸 밝힌다. 물론 이교도의 음료가 청교도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는 짐작 가능하다. 음악과 춤이 금지됐고, 극장이 폐쇄된 영국의 내부에 파스쿠아의 커피하우스는 “우울하고 음침한 도시에 떠오른 희망의 무지개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불과 몇 주 만에 각계각층의 런던 시민들이 파스쿠아의 판잣집으로 몰려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시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우고, 수다를 떨고, 논쟁을 벌이고, 춤을 추고, 농담을 즐겼다. 이 모든 것에 불을 지핀 것은, 엄청나게 쓰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도취시키고야 마는 커피였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런던 시민들이 무리 지어 몰려들도록 부추긴 것은 커피의 맛이 아니라, 커피가 주는 사교적 효과였다. 사람들은 곧 대화와 토론 그리고 사색을 촉진하는 커피를 좋아하게 됐고, 파스쿠아의 가게는 금세 뉴스와 가십이 넘쳐 나는 사교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잘나가던 시절 파스쿠아는 하루 600잔 이상의 커피를 팔았다. 그러나 1658년 파스쿠아는 동업자의 술수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파스쿠아 로제는 사라졌지만, 이미 런던은 커피의 매혹에 사로잡혀버렸다. 18세기가 시작될 무렵 런던에는 1천~3천개 정도의 커피하우스가 성업 중이었다. “16세기경 커피가 콘스탄티노플에 처음 소개된 이래 이만한 커피하우스 붐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예컨대, 첼시의 부유한 과학자 한스 슬론 경이나 아이작 뉴턴이 커피를 마시며 과학계의 난제들을 즐겨 토론하던 돈 살테로 커피하우스, 쾌락주의자들이 몰리던 몰 앤드 톰 킹 커피하우스, 세인트 폴 대성당 지근에 위치한 챕터 커피하우스, 세인트 마틴즈 레인에 위치한 슬로터 커피하우스, 자연과학자들이 과학실험을 하고, 그리스·로마 전공자들이 호머와 베르길리우스를 논하던 그레시안 커피하우스……. 각양각색의 커피하우스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쯤이면 충분히 강조됐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본론으로 가자.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당대의 커피하우스들은 오늘날까지도 잔존하는 계급편견을 당시 영국 사회 중산층의 뼛속 깊숙이 각인시킨 우월의식의 용광로”였지만, 동시에 홉스봄이 지적했던 ‘부르주아 문화’의 일부가 자라난 곳이기도 했다. 커피하우스에서 자본주의를 만든 아이디어가 싹트기도 했지만 이제 그곳은, 사람들이 점차 프라이버시를 추구하게 되면서 보다 조용하고 배타적인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논쟁과 토론, 시비가 난무하던, 그러나 ‘공손함’을 유지하던 장소가 ‘어떤 소음도 듣지 못할’ 곳으로 변모했다. 18세기 후반에 훨씬 더 저렴해진 茶도 커피하우스의 몰락을 부채질했고, 커피하우스에 들어앉아 정보를 교환하던 방식은 19세기초 전신 기술 발명에 의해 급격히 변모했다. “1866년 대서양 전신 케이블이 개통된 날로부터 딱 2주 뒤, 런던에 남아 있던 마지막 커피하우스 발틱(Baltic)이 문을 닫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장황하게 런던 커피하우스를 불러내고 그 안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18세기 런던 시민들을 커피하우스로 불러들여 서로 대화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21세기에는 왜 이런 풍경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자본주의의 수도 영국 런던의 문화적 내면, 부르주아의 사교문화가 피어났던 커피하우스에서 역사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런던과 17~21세기 한국의 서울을 비교 사유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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