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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기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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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 승인 2016.06.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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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노벨상에 관한 한 분석자료는 우리에게 놀라움과 함께 진지한 교훈을 안긴다. 1990년부터 2015년 사이 물리·화학·생리의학 등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182명의 평균 연령이 64세이며, 시상 근거인 연구결과의 최초 발표시기가 평균 39세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연구 이후 20년 이상의 끈질긴 보완과 검증 연구 끝에 수상에 이르게 됐음을 뜻한다. 수상자 중에는 연구결과를 이해받지 못해 학술지 게재를 한동안 거절당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 개시로부터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연구자가 겪었을 처절한 조바심과 회의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제는 그동안 국가나 연구기관이 그 ‘믿을 수 없는(?)’ 연구자에게 연구 여건과 생계비를 보장해 주었다는 점이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답과 이유를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그 魔의 단기성과주의와 정량평가제도로 말미암아 많은 미래의 최고 학자가 아예 자리도 못 잡았거나 중도에 해고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다행히 최근에 모든 연구영역에서 단기성과주의와 정량평가제의 폐해성과 개선 필요성에 대해 상당한 국가적 공감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차제에 우리는 창의적·선진적 연구를 진정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근원적인 제도 혁신을 추동하고 싶다.
대학 및 연구소에서 교수나 연구원의 채용과 승진 임용, 그리고 연구비지원대상자 선정 때 연구업적 분량이 아니라 연구 역량과 자세를 핵심적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을 강조한다. 이때 논문피인용지수 등의 수치보다는 대내외 전문 학자에 의한 심층평가에 중점을 둘 것을 제안한다.
연구 자질 평가에서는 학위논문 혹은 연구자 자신이 선택해 제시하는 대표 업적을 가장 중요한 자료로 하되 기초실력과 창의성 위주로 판단할 것을 요망한다. 아울러 박사학위 제도의 취지를 재정립함을 토대로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대학 간 학위공동규제위원회 같은  국가차원의 품질관리 장치를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이른바 연구재단 등재지 제도는 이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구업적의 양적 평가를 포기하는 이상 ‘일정수준의 인증된 논문집’의 존재의의는 더 이상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게재 여부 심사를 둘러싼 ‘논문집 권력’이라든가 ‘적당한 선에서 서로 봐주기’와 같은 황당한 공멸의 풍토를 조속히 불식하기 위해서다.


고등교육의 수행자이며 학자의 길을 선택한 바에 그 직분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나아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고난을 무릅쓴 신개척의 정진이 요구된다고 믿는다. 그 요소를 갖추지 못한 이른바 ‘연구결과’의 배출은 사실 하나의 작폐에 다름 아니다. 선행 연구를 침해하는 것이거나 후행 연구에 혼란과 시간 낭비를 야기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에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연구에 착수해 수없는 실패 끝에 성공을 거두고 지난해 85세 나이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중국 학자 투유유 교수의 創新의 초지일관은 훌륭한 본보기라고 본다.


율곡 선생은 일찍이 『격몽요결』의 첫머리에서 학자의 기본자세를 참으로 분명하게 교시했다. 제1장(立志章) 첫줄에 “초학자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하는 바, 반드시 성인이 됨을 스스로 기약해야 한다(初學 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고 한 것이다. 장차 수양과 학문이 남들만큼의 적당한 수준에 이름이 아니라 최선·최고의 경지에 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처음부터 세우고 정진해 나아가야 됨을 밝힌 것이다.
오늘의 우리 學人도 이 위대한 가르침을 명심하며, 하나의 높고 참신한 성취를 위해 일생을 걸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석희태 편집인/연세대 초빙교수·의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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