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8:30 (토)
4만년 인류의 지혜 ‘미술’, 미술학자는 어떻게 바라볼까?
4만년 인류의 지혜 ‘미술’, 미술학자는 어떻게 바라볼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05.31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1·2』 양정무 지음|사회평론사|각권 544쪽|각권 22,000원

여행, 답사를 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미술을 감상해야 할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 때론 친절한 과외 선생님, 때론 여행 가이드처럼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류의 역사를 말하고자 할 때 미술사는 매력적인 학문이 된다. 미술은 역사의 기록이자 생각과 행위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의 주장을 한번 환기해볼만 한다. 그는 “모든 위대한 국가는 자서전을 세 권으로 나눠 쓴다. 한 권은 행동, 한 권은 글, 나머지 한 권은 미술이다. 어느 한 권도 나머지 두 권을 먼저 읽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중 미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러스킨은 한 국가를 이해하려면 이들의 역사나 기록보다 이들이 남긴 미술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미술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우리가 과거의 어느 국가를 알아나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과장된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번 지나간 사건은 재현될 수 없고 그것을 기록한 글도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미술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며, 역사적 사건과 기록을 상호 검증하는 기준틀이 된다.

미술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그것의 역사가 장구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문자를 쓴 것은 5천년 남짓한 시간이지만 미술의 역사는 이보다 최소 4~5만년 이전까지 올라간다. 그렇다면 인간은 문자를 쓰기 훨씬 이전부터 그림을 그렸고, 바로 그것으로 자신들의 삶과 세계를 해석하려 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술은 인간에게 보다 익숙한 세계이며 보다 근원적인 세계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미술이 이렇게 중요하고 근본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막상 우리는 미술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미술은 여유 있는 상류층의 고급문화로 치부되거나,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찾는 취미와 여가활동의 대상일 뿐이다. 박물관, 미술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여기서도 감동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해외여행 길 때마다 들린 유명 박물관에서도 지루함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미술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낯설다.

이 문제는 모든 미술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상당부분은 미술사학의 학문적 몫이라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미술사는 미술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진행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검증된 학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미술에 대한 이해가 정체돼 있다는 것은 미술사학이 제대로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미술사학에 그러한 역할을 할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미술사에 대한 인식은 낮고 학문적 환경은 열악하다.

필자의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이하 『난처한 미술 이야기』) 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집필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기가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이것으로 미술사학자가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미술을 어떻게 설명하는 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사실 이 책은 내용적으로 미술사학자들이면 기본적으로 아는 내용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미술사의 범주에 들어가 서양사의 영역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인류에게 있어 미술의 의미를 찾는 방식으로 끌고 갔고, 가능하면 한국 전통 및 현대미술과 교차비교를 시도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맥락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와는 확연히 차이점을 지닌다.
이젠 너무나도 유명해진 이야기지만,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인문학과 캘리그라피에 심취해 대학을 돌아다니며 컴퓨터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각종 교양강의를 들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낸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디자인 스쿨에서 성장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희대의 명작 ‘아이폰’은 그들이 자란 토양의 깊이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산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오래된 미술을 관람하며 안목을 높이고, 미술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한다. 그들에게 미술 작품이란 4만년 인류의 지혜를 얻는 기회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미술의 진면목을 접하기는 어렵다. 시중에 범람하는 겉핥기 지식으로는 ‘아는 척’까지는 할 수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그를 ‘활용’해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미지의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우리나라 일반 사람들과 미술사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절실하지만 부재한 것이 사실이었다. 『난처한 미술 이야기』 1, 2권은 미술사의 기본과 정석을 충실히 다루면서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여행, 답사를 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미술을 감상해야 할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수준 높은 미술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 때론 친절한 과외 선생님, 때론 여행 가이드처럼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며 독자에게 말을 거는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다. 『난처한 미술 이야기』가 꽂아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 고상한 책이 아니라,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히는 책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는 모두 9권으로 기획했다. 인류가 미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최초로 내놓는 순간부터 바로 현재의 한국 미술까지 다루고자 한다. 현재는 1권과 2권이 나와 있고, 앞으로 3권 『기독교 미술과 서양문명』, 4권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이 내년 상반기에 출판될 예정이다. 3, 4권은 원고가 완료된 상태이나, 균형감 있는 개설서를 내놓기 위해 보다 가다듬는 작업을 거쳐 최종 탈고할 예정이다. 이후에 시리즈는 서양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에 대한 주제로 나갈 예정이며, 마지막으로 20세기 한국 미술 편으로 종결할 계획이다.

이 책은 개설서가 지니는 균형감각을 적절히 유지하려 하지만 결론부에 다다르면 미술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의 최대치를 용감하게 던지기도 한다. 나아가 논의된 시기와 지역이 방대해지면서 일정한 오류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통사를 집필하기에 망설였다고 보는데, 나의 경우는 이런 문제들을 앞으로 성실히 수정보완 하겠다는 약속으로 집필해 나가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은 많은 국내의 선행 연구자들의 노고에 빚지고 있지만 개설서의 체계를 따라 각주를 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나의 책에 빛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미술사학계의 업적에 기댄 결과라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필자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이자 한국예술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그림값의 비밀』, 『상인과 미술』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