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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정치, 協治의 길
함께하는 정치, 協治의 길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05.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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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총선을 통해 어느 당도 독주할 수 없는 與小野大 3당 체제로 권력지형이 바뀌면서 協治가 우리 정치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정이 서로 네 탓만 하며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초래해 왔으니 이제 타협과 합의의 협력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당연할 터이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이 너나 할 것 없이 연일 강조하고 있으니 각 진영이 품고 있는 의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지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는 형국이다.

그 동안 우리 정치가 오죽했으면 이 평범한 말이 매력적인 용어로 부상하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쳐댈까. 원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평범한 용어일수록 정의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더구나 지금 정치권을 떠도는 협치는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그 의미와 내용이 불분명하여 이 말의 진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협치가 국민의 명령이라거나 정국운영의 일치된 방향 혹은 원칙으로 간주되는듯하니 이 추상적 용어에 그냥 취해만 있을 계제가 아니다.

본래 협치는 행정부 주도의 일방적 통치(government)에 대한 비판적 대응 개념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흔히 사용된다. 거버넌스는 정치권과 함께 민간부문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와 연대, 소통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면서 함께 공공문제를 해결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협력적 통치양식 혹은 대안적인 정책결정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협치정국의 주체는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과 여야가 되고 있으니 정치권이 말하는 협치가 거버넌스의 의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를 말하는가. 합의제 민주주의는 사회갈등이 상존하는 국가에서 소수파의 이익보장과 사회통합을 이뤄내고자 하는 복수정당 간 국가권력의 공유·분산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은 당명만 다를 뿐 추구하는 가치와 노선, 정체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또한 지지층의 정치이념적 스펙트럼도 상당부분 겹치며, 유력인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런 정당구조에선 합의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없으니 이 의미 또한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일부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협치를 그 구체적 방안으로 연립정부나 거국내각을 포함한 여야 공동정권과 연계시키는 것도 마뜩잖다.

우리의 후진적인 정치구도와 정당구조 하에서는 정파적 이익이 앞서 협치가 야합으로 변질될 수 있으며, DJP연합 사례가 보여주듯이 단순한 권력 나눠먹기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도대체 협치의 길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의 일상에는 傷心과 증오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 듣기 거북한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으로 표징되는 경제적 위화감과 불만이 극에 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 속에 불신과 적의를 키우며 분노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는 극한적 권력투쟁으로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국가와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치란 주고받기식 거래로 적당히 타협하면서 싸우지 않고 권력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고 미래의 희망을 심어주는 정치, 찢어진 민심을 보듬어 하나로 묶고 갈등을 치유하는 정치,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에게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 정치, 이를 위해 솔선수범하고 소통·설득하여 화합과 상생의 씨앗을 뿌리는 정치가 바로 협치다.

이는 ‘함께하는’ 정치로 和而不同의 정치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대결정치를 화합의 정치로 바꾸어내는 데 있다. 그리하여 국정운영에 있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효율성을 중시하면서도 참여의 확대와 정보공유, 의견수렴을 통한 합의도출, 그리고 반응성과 같은 민주적 가치를 지향한다면 그것이 곧 진정한 협치며 좋은 거버넌스가 아니겠는가.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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