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8:55 (금)
복스럽게 볼록 튀어나온 배 안쪽엔 … 조선전기 특별주문생산 사례로 희귀
복스럽게 볼록 튀어나온 배 안쪽엔 … 조선전기 특별주문생산 사례로 희귀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6.05.24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환의 文響_ 31 백자투각 모란무늬 필통 (白磁透刻牧丹文筆筒)
▲ 사진① 초기백자투각모란문필통

오늘 소개할 ‘문향’의 주인공은 조선초기에 제작된 透刻筆筒이다(사진①). 조선후기의 왕실용  分院窯에서 다양하게 제작된 백자투각필통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유일한 유물이다.
붓을 보관하던 필통은 文房四友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사랑방 선비의 필수 文房道具로 붓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서 재질도 다양해 도자기, 나무, 돌, 금속 등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필통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수량도 제일 많다. 나무는 가공하기가 용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므로 필통의 제작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여러 종류의 吉祥文을 조각하기도 편해 다양한 문양의 나무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울러 잘 깨지지 않고 가벼워서 조선시대 여러 계층에서 애용했다(사진②).

도자기필통은 나무필통에 비해 제작하기도 까다롭고 잘 깨지는 성질 때문에 많이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후기에 王室官窯에서 특별히 주문 생산해 제작된 여러 종류의 우수한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고(사진③) 조선말기에는 民窯에서도 官窯製品을 모방해 제작하기도 했다.
그동안 조선초기에 제작된 도자기필통의 제작 여부를 알 수 없어서 조선후기에 제작된 分院官窯의 白磁筆筒은 중국의 백자필통을 모방해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선초기에 제작된 필통(사진①)의 존재로 조선후기 백자필통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게 됐다. 우리나라 朝鮮白磁筆筒의 원형을 발견한 것으로 500여년 전에 제작된 한 점의 백자필통에 내재된 의미는 매우 크다.

조선초기에 제작된 白磁透刻牧丹文筆筒(사진①)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안정된 항아리 모양으로 배가 조금 볼록해 복스러우며 입 주변은 살짝 벌어져 있고 필통의 안쪽 면에는 물레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主文樣은 조선초기에 유행하던 문양으로 커다란 모란꽃과 꽃봉오리, 잎줄기를 대칭으로 배치해 능숙하게 투각했고 위아래의 從屬文樣은 구름위의 如意珠文樣과 사다리꼴문양을 투각했다. 몸통에는 맑고 투명한 유약을 시유해 燔造했으며 빙렬이 있고 광택이 좋다. 안굽처럼 들어간 바닥 굽은 비교적 높은 편이며 가느다란 모래받침을 사용한 후 갈아낸 흔적이 남아있다(사진⑤).

▲ 사진⑤ 필통의 바닥부분

이 필통의 입지름은 10cm이고 굽지름이 10.2cm, 높이가 17cm로 안정적인 기형이며 보물 제1391호인 백자상감투각모란문병(이건희 소유)과 일본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조선초기백자투각의자와 文樣과 기형이 거의 같다(사진⑥ ⑦). 당시 유행하던 같은 종류의 밑본을 사용해 문양을 새긴 것으로 보이며, 燒成溫度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시기와 지역의 제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사진⑧ ⑨).
조선초기의 백자는 高價의 코발트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의 생산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黑象嵌技法이나 陽陰刻技法을 사용해 주로 문양을 나타냈으며, 때로는 투각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투각기법의 사용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특별한 경우에만 생산했다.
조선초기에 제작된 이 필통은 유물자체의 희소성뿐만 아니라 투각기법의 뛰어난 조형성과 문양의 예술성을 고루 갖췄고 조선초기의 문방구와 조선후기의 문방구를 연결해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先祖들이 남긴 유물에는 기록으로 전하지 못한 많은 사연과 그 시대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예술혼이 담겨있다. 이것은 한걸음 더 나가면 민족의 정체성과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표되지 못해 잊혀 질 수도 있는 국내외에 산재한 우리 文化財를 찾아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작은 부분이라도 밝혀내는 일은 어느덧 필자의 평생과업이 되고 말았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