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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 지원, 확대해야 한다
학문후속세대 지원, 확대해야 한다
  • 조선우 이화여대 박사후연구원·생명의료법연구소
  • 승인 2016.05.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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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조선우 이화여대 박사후연구원·생명의료법연구소

박사학위를 받은 지도 벌써 4년이 됐다. 미학과에서 학부시절을 보냈으니 미학공부, 철학공부를 한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지는 올해가 16년째다. 그 동안 세상은 변했다. 예전에도 물론 인문학의 미래가 밝게 그려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좀 더 어려워 보인다. 물론 학문과 인성의 토대로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건재하고 오히려 그 중요성이 오늘날 더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강조가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문후속세대 다수의 현실과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교수직을 얻지 못한 많은 선배님들과 동료연구자들은 어느 시점부터, 특히 강사법 시행여부에 대한 이야기로 교내외가 시끄러울 무렵부터는 훨씬 더 빈번하게 자신들의 어두운 앞날에 대해 토로하고 대안적 생계유지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포함해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문후속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연구자로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일 것이다.

나의 학문적 관심사를 어떻게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 어떤 학제적 연구나 공동연구를 통해 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창의적이고 풍성하게 진행시킬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고 싶지만,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걱정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학문적 고민들은 안타깝게도 자주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3년간 중점연구소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과 연구교수의 신분으로 가치론이라는 나의 학문적 관심사의 연장선상에서 생명윤리 관련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연구소에서 함께 했던 타 분야 연구자들과의 소통 및 협업은 나의 학문적 관심사와 연구내용이 풍부해질 수 있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한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최대한 많은 강의 자리를 구하고 그 강의준비 및 진행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연구자가 연구결과물인 논문으로 이어지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힘들거니와, 필요한 경우 어떻게든 논문실적을 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작성할 수 있는 논문주제를 찾게 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오는 논문들은 자기 파생적이거나 반복적이기 쉽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연구자 본인과 해당 학문영역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실제로 오늘날 주변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학문후속세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연구재단의 지원방식을 제언한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5년간 지원신청을 할 수 있는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의 현 체계는 연구자들이 학위취득 후 5년 내에 안정적인 자리를 찾고 그 이후 필요한 경우 신진학자지원사업에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수직을 포함해 연구자를 위한 안정적 자리는 줄어들고 박사 연구자들의 수는 크게 늘어, 학위를 취득하고 5년 안에 자리를 잡는 연구자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할 박사 연구자들이 강의하는 기계로 전락하거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의 지원자격을 확장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내 학업 발전과 건강한 연구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조선우 이화여대 박사후연구원·생명의료법연구소
미국 템플대에서 철학으로 박사를 했다. 예술의 가치, 생명윤리에 관한 논문을 다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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