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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과 기초
본질과 기초
  •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수학
  • 승인 2016.05.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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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수학
▲ 민경찬 논설위원

지난 12일 제1회 과학기술전략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열렸다.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등 광범위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과학기술 혁신 경쟁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국가 R&D(연구개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특히 범 부처 차원의 국가 전략을 제대로 세우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는 국무총리, 주요 부처 장관들을 비롯해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참석하여, ‘전략’, ‘본질’, ‘기초’를 논했다.

이 자리에서 대학은 기초연구에 더 충실해야 된다는 점이 공유됐고, 그동안 교수들이 늘 아쉬워했던, 호기심 기반 자율적 연구, 한 우물 파기, 안정적 연구 환경,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 및 평가, 양적 성과가 아닌 질적 영향력(impact) 평가 등이 진지하게 다뤄졌다. “공무원들이 연구자들을 간섭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정부가 지원할 것은 성실하게 지원하되, 불필요한 간섭은 획기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등의 대통령의 당부에 이어, 관계 장관들은 이러한 혁신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예를 들면, 신진연구자에게 최대 5년 간 연간 3천만원 내외 ‘생애 첫 연구비’ 지원,  한 우물을 팔수 있는 10년 이상 장기 지원, 풀뿌리 기초연구 4천억원 증액, 지출 금지 사항만 제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연구비 집행기준, 논문수·특허수 등의 양적 지표를 전면 삭제하는 연구 내용 중심의 정성평가, 100쪽이 넘는 연구계획서 대신 5쪽짜리 개념계획서로 시작하는 연구행정 등이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들의 현장은 어떠한가. 대학은 아직도 기존의 정부나 언론사로부터 주어지는 지표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으며, 연구비 지원규모 및 발표논문 관련 숫자에 관심이 몰려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정부 등으로부터 재정지원 확보의 규모, 언론사 평가의 순위 정도에서 대학 발전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 사회도 ‘본질’과 ‘기초’를 추구하는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바람직한 내용들은 단지 과학기술 분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과제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러한 방안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실행되게 할 것이냐다. 그런데 이는 정부에만 맡기고 기다릴 사안이 아니다. 관련 책임자들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기를 기회로 삼아 실질적이고도 지속적인 변화를 주도할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는 대학과 연구자들의 몫이어야 하며, 국민들로부터의 신뢰와 기대의 크기에 달려 있다.

대학과 연구자들은 먼저 무엇을 위해 연구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직하게 우리가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연구 내용, 연구 방식, 연구비 활용 등에 대해 신뢰의 단계를 넘어 존경받는 위치에 서야 한다.

우리 사회와 지구촌이 직면하게 되는 여러 과제들 중 몇 개는 우리의 대학들이 선도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는 바로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는 국민들에게 꿈과 기대를 주는 일이다.

오늘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우리 내부와 주변 환경은 그리 만만치 않은 위기적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긴 안목으로 국가의 내공을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대학의 기초연구를 더욱 강조해야 하고, 대학 환경이 ‘본질’과 ‘가치’에 바로 서야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이제 대학들은 개별적 평판이나 재원 확보 단계를 넘어, 국가 차원의 공동체적 리더십을 세우며 국가의 정책, 정치적 환경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방향과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대학의 책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와 다음 세대의 미래가 대학에 달려있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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