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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혼인색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들
화려한 혼인색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5.18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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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54.피라미
▲ 산란기의 피라미

피라미이야기를 하자니 강의 잘 하시기로도 이름나셨던 어류학자 최기철 은사님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필자의 지도교수님이시기도 했던 우리선생님이! 원래는 貝類를 전공하셨지만 퇴임할 무렵부터 전공을 어류학으로 돌려 30여 년간 천착하시어 큰 업적을 남기셨다. 그러고 보니 만학을 한 셈이다. 오래 전 새해에, 서울대 총장이 모신 명예교수 저녁자리에서 음식을 드시다가 목이 막혀 아흔 셋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師弟는 恩怨關係라 했고, 범(虎)스승 밑에 개(犬)제자 안 난다고 했지.
그런데 흔히 큰 고기는 안 잡히고 기껏해야 잔챙이만 걸려들거나, 큰 도둑은 안 잡히고 고작 좀도둑만 잡힐 때“피라미만 잡힌다”라고들 말한다. 여기서‘피라미’란 한낱 하찮은 존재거나 매우 왜소함을 비꼰 말이다. “네까짓 피라미가 어디라고 불쑥 나서냐?”라고 퉁 주듯 말이지.

피라미(Zacco platypus)는 잉엇과의 담수어로 청정한 2급수에 주로 살지만 오염내성이 괘나 강해 3급수에서도 잘 견디는 편이다. 피라미를 鄕語로‘피리’, ‘피래미’, ‘참피리’, ‘날피리’, ‘불거지’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조어(피라미 물고기魚)’라 한다.
피라미(freshwater minnow)는 중국북부거나 한국을 원산지로 본다. 한국·일본·중국·타이완·베트남 등지에 살며, 유연관계(relationships)가 깊은 近緣種으로는 같은 屬(genus)인 갈겨니(Z. temmincki)가 있다. 피라미는 성마르고 날쌔며, 바닥이 모래나 잔자갈로 된 시내(河川) 중하류의 여울에 주로 산다. 뭍의 동물이 그렇듯이 피라미를 포함한 힘 약한 물고기들도 일사불란하게 무리를 지운다. 떼를 지우기에 보는 눈이 많아 포식자를 쉬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도망갈 수 있고, 암수가 늘 가까이 있어 산란/정자뿌림이 손쉽다.

몸길이 8∼12cm로 가느스름하면서도 날씬하고, 몸이 옆으로 납작하며, 뒷지느러미가 거칠게 큰 것이 특징이다. 주둥이는 뾰족하고, 입은 작으며, 옆줄은 배 아래쪽으로 휘어 쳐져 있다. 비늘(scale)은 육각형으로 크고, 광택을 내는데 더러는 몸을 슬쩍궁 비틀어 햇빛을 반사시켜 번득거린다. 등편은 청갈색을, 옆구리와 배 쪽은 산뜻한 은백색을 띠며, 옆구리에는 은은하고 암청색의 가로띠가 10~13줄이 난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화려한 婚姻色(nuptial coloration)을 낸다. 머리밑바닥이 검붉게 변하고, 가슴·배·뒷지느러미가 주황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좁쌀 같이 자잘하고 새까만 사마귀돌기가 주둥이 아래에 우둘투둘 생기는데 이렇게 수컷피부에 사마귀(wart)모양의 두두룩한 군더더기돌기를 追星(nuptial tubercles/pearl organ)이라한다. 산란시기에만 나타나는 멋진 수컷의 혼인색과 추성은 二次性徵으로 암컷 마음을 사기 위한 수단이다. 이렇듯 수컷이 덩치가 클뿐더러 겉모양이 암놈과 워낙 달라보여서 두 암수를 딴 종으로 보기 일쑤다.

피라미는 가을이 들어 수온이 내려가면 상류에 살던 놈들이 수심이 깊은 하류로 이동한다. 반대로 아직은 이르지만, 5월 중순경 감자 꽃 필 무렵이면 다른 물고기들이 그러하듯이 하류에서 산란하러 상류로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물살이 좀 느리고 모래자갈이 깔린 곳에 와서는 암수가 함께 강바닥을 줄기차게 파헤쳐 지름 30∼50cm의 알자리(産卵場)를 만들고, 거기에다 산란, 정자뿌림(放精)을 한다.
눈곱자기만한 앙증맞던 稚魚(幼魚)는 2년이면 쑥쑥 자라 어미피라미가 된다. 피라미는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 수면위로 펄쩍펄쩍 뛰어 올라 알 낳으러 온 벌레(수서곤충의 성충)를 낚아채고, 물속에서 플랑크톤이나 자갈에 붙은 조류(algae)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서로 다른 동물이 한 곳에서 옥신각신하며 어우렁더우렁 사는 것을 共棲(cohabitation)라 하는데 피라미가 있으면 반드시 같은 속의 갈겨니 녀석이 있게 마련이다. 갈겨니는 옆줄(lateral line)비늘이 48~55개이지만 피라미는 42~45개이고, 갈겨니는 몸길이가 18∼20cm로 피라미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갈겨니는 눈이 피라미보다 크고, 피라미는 눈(홍채)에 붉은 줄이 있어서 눈이 붉지만 갈겨니는 붉지 않다. 또한 갈겨니는 옆구리에 짙은 자주색의 세로띠가 있지만 피라미는 옆면에 열서너 줄의 무늬가 있다.

여름이 왔다하면 우리 또래들은 노상 강에서 사는 천렵꾼이 됐으니 낯짝은 햇볕에 탈대로 타서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깜둥이였다. 그런데 고기잡이방법도 多種多樣 했었으니 낚시로 낚기도 하지만 주로 투망질로 잡는다. 어떤 때는 큼지막한 돌을 치켜들고 강바닥의 돌 머리를 내리치면 피라미가 충격을 받아 금세 발라당 배를 뒤집고 둥둥 떠오른다.
또 돌 밑에다 맨손을 살며시 집어넣어 슬금슬금 더듬이질해 사로잡기도 하고, 때론 샛강에서는 물막이해 아예 물길을 돌려놓고, 여뀌(water pepper) 잎줄기를 콩콩 찧어 너럭바위에 밑에다 풀어 넣어 몸부림치는 놈들을 줍다시피 했다. 또 여울에 보쌈을 놓아 쉬리를 잡았고.
그랬던 강들이 파렴치하고 젠체하는 인간나부랭이들의 노략질 탓에 황량하게 썩어빠져 물고기들도 지극히 곤욕스러워 한단다. 水至淸卽無魚라고, 옛날엔 강물이 너무 맑은 것을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無爲自然)을 두고 볼 순 없는 것일까.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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