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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회 창립 70주년 맞아 새로운 방향 모색
한국심리학회 창립 70주년 맞아 새로운 방향 모색
  • 교수신문
  • 승인 2016.05.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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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중심성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 ‘동양심리학’ 정립해야 보편심리학 가능하다
▲ 2006년 한국심리학회 6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대회의 주제는 ‘변화하는 심리학의 지평과 교육’이었다. 한국심리학이 새로운 과제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주목된다.사진=한국심리학회

한국심리학회는 1946년 2월 4일 임석재·이재완·이진숙·이본녕·고순덕·방현모·성백선 등 7인에 의해 ‘조선심리학회’라는 이름으로 창설돼, 1948년 11월 ‘대한심리학회’로 개명했다가, 1953년 3월 ‘한국심리학회’로 재개명해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국내 유일의 심리학 관련 학술 연구 단체다. 한국 근대 학문과 궤를 같이해 발전해온 한국심리학의 학문적 여정과 앞으로의 새로운 방향 모색은 20일 학술대회에 기조논문으로 제출되는 조긍호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한국심리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서구중심성과 그 탈피를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에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돼 있다. 이 눈문에서 조 명예교수는 한국심리학의 양적 확대와 심리학 아카데미즘의 내적 분화와 변화(독일식 근본주의적 아카데미즘에서 미국식 기능주의 도입에 따른 응용 학문화)를 지적하면서, 1960년대 이후 진행된 ‘서구중심주의 탈피 노력’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은 조긍호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에서 ‘회고와 전망’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앞에서 행동주의의 퇴조로 인한 미국심리학의 위상 하락, 탈근대사조의 대두로 인한 문화에의 관심 부상과 기존 심리학의 보편성에 대한 회의의 확산, 아시아적 가치 담론의 대두와 유학사상에 대한 관심의 증폭, 그리고 유학 및 불교에 내재한 심리학체계에의 개안 등이 탈서구중심적 연구 경향이 대두된 배경이라는 사실을 기초로, 1960년대 이후 한국심리학계에서 전개된 탈서구중심적 연구의 내용들을 개관했다. 이러한 탈서구중심적 심리학연구들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전자의 두 가지 배경에서 연유한 것으로, 개인주의―집단주의의 대비를 통한 문화비교 연구 및 한국인의 고유한 행동과 심성을 탐색하려는 토착심리학적 연구를 포괄하는 문화관련 심리학의 연구들이고, 또 하나는 후자의 두 가지 배경에서 연유한 것인데, 유학의 경전에 내포된 심리학적 함의를 찾아내거나 유교문화가 한국인에게 끼친 영향을 분석하려는 유학사상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들과 상담 및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불교사상의 이론적 및 修行的 함의를 탐색하고자 하는 연구들이다.

회고와 반성
이 중 문화관련 연구들은 서구심리학계에서 인간 행동의 문화구속성에 관한 관심이 폭증한 데 영향을 받아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 분야의 연구들은 우리나라 학자들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되, 대체로 서구 학자들의 연구 관심과 방법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과연 탈서구중심적 연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들 중 일부는 분명히 주목할 만한 탈서구중심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예로, 한국인의 고유한 심성과 행동 특성을 토착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최상진의 연구들과 개인주의―집단주의의 문화차를 개관하기 위한 개념틀을 서구 자유주의와 동아시아 유학사상에서 인간을 파악하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도출한 필자의 연구들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도 그 자체 문제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후자는 서구와 동아시아 사회의 지배적인 인간관의 대비에 몰두하면서 양자 사이의 상호포괄성과 유사성을 지나치게 도외시했다는 점, 그리고 전자는 지나치게 사회표상적 측면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들에서 한국인에게 고유한 특징이라고 제시되는 행동들이 과연 한국인만의 토착적인 것인지에 대한 논거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의 문제점을 갖는 것으로 지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심리학계의 일천한 역사와 그동안 이를 지배해 왔던 외세의존적 상황을 놓고 볼 때, 비록 소수의 연구자들에 의해서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나마 새로운 이론화와 문제발굴을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심리학계에서 이루어진 탈서구중심적 연구경향을 주도하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진행돼 온 전통사상의 심리학화 작업, 특히 유학사상의 심리학적 독서와 그 심리학설화와 관련된 연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 중 상당 부분이 서구심리학의 개념을 유학 경전의 일부 내용을 동원해 해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연구들을 과연 탈서구중심적 연구라고 간주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단순히 서구심리학의 개념을 유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분야에는 확실히 서구심리학계에서는 찾기 힘든 문제의식을 보이는 탈서구중심적 연구 업적들이 많이 쌓이고 있다. 그 예로 정양은, 김성태, 한덕웅, 이수원 그리고 필자의 연구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연구는 단순히 서구심리학의 개념을 유학적으로 해석하거나 서구심리학의 개념과 유학사상의 그것을 피상적으로 대조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동·서의 철학적 및 심리학적 문제의식의 차이를 분석해 서구심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심리학의 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들의 연구도 심리학적 분석의 이론적 기반이 취약하거나 지나친 단순화와 과일반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서구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현대 서구심리학만이 보편심리학이 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서구철학과 다른 문제의식과 인간관 위에 구축되고 있는 유학사상으로부터 새로운 심리학을 도출해 내거나, 이를 바탕으로 하여 도출되는 새로운 문제 내용을 새로운 방안을 통해 접근해 보려는 이들의 문제인식은 탈서구중심적 연구의 전형으로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불교사상의 상담심리학적 함의를 분석한 연구들 중에서도 불교의 연기론을 기반으로 하여 심리적 부적응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치료하는 새로운 모형을 ‘온마음 상담’으로 제시한 윤호균의 연구는 우리의 눈길을 끄는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형이 불교의 이론에 정통하지 않은 학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점과 이 모형의 치료 효과가 실제의 치료 장면에서 다각도로 검증돼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연구는 상담 및 심리치료 분야의 연구자들이 탈서구중심적 치료모형으로 주목해 보아야 할 시도로 보인다.
 
전망과 과제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심리학이 도입된 지 90여년이 지났고, 그 중심 연구단체인 한국심리학회가 설립된 지는 70년이 됐다. 이렇게 일천한 한국심리학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전통사상의 심리학화 작업들이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탈서구중심주의를 표방하는 연구의 역사가 어언 50여년이나 됐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탈서구중심적 경향의 연구들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서 한국의 심리학계가 전반적으로 탈서구중심화 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및 상담수련생들에게 아시아적 가치(집단주의적 가치) 검사와 서구적 가치(개인주의적 가치) 검사를 실시해 본 결과에서 보면, 한국심리학계에서 서구중심적 연구와 훈련의 경향이 얼마나 강고하게 지속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이 연구에서는 한국(평균 3.91)과 미국(3.89)의 대학생들은 아시아적 가치 수준에서 아무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으나, 상담수련자들의 아시아적 가치 수준은 한국(3.59)의 경우가 오히려 미국(3.81)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아시아적 가치 수준에서 미국의 대학생과 상담수련자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나, 한국에서는 상담수련자의 아시아적 가치 수준이 대학생들의 그것보다 유의미하게 낮음을 의미하는 결과다. 이에 비해, 서구적 가치 수준에서 한국의 대학생들(4.69)은 미국의 대학생들(5.21)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경향을 보이는데, 상담수련생들의 서구적 가치 수준은 한국(4.89)이나 미국(4.80)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미국인들의 서구적 가치 수준은 대학생들이 상담수련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지만, 한국에서는 상담수련자들의 서구적 가치 수준이 일반대학생보다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아시아적 문화 가치(집단주의적 가치) 수준에서는 대학생일반과 상담수련자 사이에 차이가 없으나, 서구적 문화 가치(개인주의적 가치) 수준에서는 대학생일반이 상담수련자들보다 훨씬 높다는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상담교육이나 상담활동은 개인주의적 가치가 미치는 부작용의 해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아시아적 문화 가치(집단주의적 가치) 수준에서는 대학생일반이 상담수련자들보다 높으나, 서구적 문화 가치(개인주의적 가치) 수준에서는 상담수련자들이 대학생일반보다 높아, 한국의 상담교육 또는 상담활동은 미국보다도 더욱 개인주의적 모형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아직까지도 한국의 심리학계에서는 서구식 교육과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의 심리학계에서는 아직 서구의존적이거나 서구중심적인 연구와 훈련의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게다가 전통사상의 심리학화 작업을 필두로 한 한국심리학계에서의 탈서구중심적 연구의 경향을 이끌고 있는 연구자들은 극소수에 머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도 대체로 이미 故人이 됐거나(김성태·정양은·이수원·최상진 등), 정년퇴임한 학자들 (한덕웅·윤호균·조긍호 등)이어서, 연구의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심리학계가 서구중심성에서 탈피하는 일은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계에서의 탈서구중심적 작업이 가지는 학문적 가치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돼 이제는 분명해진,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구속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도출된다. 인간의 문화구속성이 흔들릴 수 없는 진리라는 이러한 사실은 1980년대 이래 전개되어 온 문화비교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이 웅변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현대 서구심리학은 고대 그리스시대 이래 전개돼 온 서구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되고 있는 학문 분야다. 이러한 서구심리학의 바탕에는 세상사와 인간 존재 및 인간의 삶에 관한 서구인의 이해체계가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철학이 세상사와 인간 존재 및 인간의 삶에 대한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론체계라고는 볼 수 없다. 동아시아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유학과 불교사상은 서구철학과는 다른 인간관을 바탕으로 세상사와 인간 삶의 과정을 이해하려는 이론체계다. 이렇게 세상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 인간 삶의 양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문화비교심리학의 연구결과들에서 밝혀졌듯이 서구인과 동아시아인들이 사회인지와 정서 및 동기 등 제반 심성과 행동 특징에서 결코 동화되기 힘든 차이를 드러내는 까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 서구심리학은 서구인의 시각에서 서구인의 삶의 과정과 경험을 중심으로 탐색해 온 서구의 문화특수적인 심리학일 뿐이라는 한계를 지닌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종래까지 보편주의의 관점에서 서구심리학을 보편심리학으로 간주해 왔던 시각은 다만 서구인들이 빠져 있었던 그들의 자기중심주의(ethnocentrism)의 반영일 뿐이었던 것이다. 현재는 이러한 서구중심주의에서 탈피해 글자 그대로의 보편심리학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세기의 말엽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나아가 문화적으로 더 이상 세계사의 주변부가 아니라 당당한 주역의 일원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동아시아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불교 및 유학사상의 체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구축될 동양심리학의 정립은 보편심리학을 구성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틀을 모색하려는 시도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문명 충돌’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는 21세기 초반 탈서구중심적 심리학의 정립 작업이 갖는 학문적 가치이자, 하필 이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학문적인 召命일 것이다.

조긍호 서강대 명예교수·심리학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서강대 교학 부총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불평등사상의 연구』, 『유학심리학: 맹자, 순자 편』, 『동아시아 집단주의의 유학사상적 배경: 심리학적 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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