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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에 응답하라
시대정신에 응답하라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04.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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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4·13 국회의원 선거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 호남을 홀대한 무능한 제1야당에 대한 심판, 극한적 대립만 일삼는 양당체제에 대한 심판, 하지만 이런 심판론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다.

더구나 경제정책 실패라는 말도 현 정부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정부가 등장할 때도 핵심 쟁점은 경제정책 실패였다. 따라서 이전까지만 해도 호황이었던 한국경제가 박근혜정부 때부터 갑자기 나빠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과거와 확실히 다른 것은 16년 만에 국회권력이 교체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만큼 2017년 대선에서도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점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등장했던 정치권에 대한 심판 요구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 배후엔 콘크리트처럼 강고했던 영남표와 호남표의 분열이 있다. 그리고 이 분열은 지역적 수구세력에 맞서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고 있고, 이들이 바로 정치적 변화를 추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변화에 대한 요구는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항상 그 근거가 됐던 경제정책 실패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1987년 6월 항쟁이 민주정부로 가는 역사적 변곡점이었다면, 1997년 IMF 사태는 신자유주의로 가는 시대적 전환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1997년 이후 한편으로 민주적 선거절차에 기초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실현됐지만, 다른 한편 각종 규제 철폐로 시장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됐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권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시작된 지점은 민주적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사회적 양극화를 제어하지 못한 IMF 이후일 것이다.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이때부터 노동시장 유연화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해체되고, 소득이 급감하고, 빈곤이 대물림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기업들이 사상최대의 실적을 올리는가 하면, 금융시장에서는 천문학적 시세 차익이 발생하고, 각종 갑질을 일삼는 상속 계급이 등장한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뉴욕에서 벌어진 저항운동이 보여주듯, 미국은 ‘1대 99% 사회’라 할 만큼 양극화가 극에 달해 있다. 그래서 그럴까? 양극화에 대한 저항은 샌더스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끌어올릴 만큼 정치적 변화의 요구로 고양됐고, 샌더스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돼온 신자유주의를 청산할 역사적 변화를 주장한다.

과연 우리는 다를까. 철학자 헤겔이 말하고 있듯이 ‘시대정신’을 자신의 의식으로 삼는 자만이 역사를 선도할 수 있다. 1997년부터 분출되기 시작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한 국민들의 요구. 이는 결국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적 변화에 대한 열망은 아닐까.

만약 이것이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라면, 4·13 선거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누구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국민의 요구와 열망에 응답하려는 사람만이 한국 정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세력들은 그것이 언제든 결국 한국 정치에서 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 과연 달리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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