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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을 사양산업 취급하는 정부
고등교육을 사양산업 취급하는 정부
  • 강남훈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 교수
  • 승인 2016.04.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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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분석] 대학구조조정, 정부가 주도하면 안돼

현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대학교수의 62.9%가 부적절하다고 대답했다. 왜 부적절하다고 생각할까? 그것은 정부의 정책이 대학의 연구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정년 트랙, 강의 전담, 산학협력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비정규직 교수의 비율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봉급이 대기업 대졸 초임보다도 낮은 교수가 허다하다. 직장도 생활도 보장이 안 되니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없다. 정교수 2명을 내보내고 비정규직 교수 1명을 채용하는 사립대학이 수두룩하다. 지식 생산과 인재 교육을 담당하는 지식인들을 이처럼 천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경쟁력을 상실하고 도태될 것이다. 

▲ 강남훈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 교수

구조조정 정책이 진정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었다면, 지금쯤 교수들의 의무시간이 줄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교수들의 의무강의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제대로 된 강의 준비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교수들의 잡무는 강의 시간만큼이나 늘어났다. 구조조정 평가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보기 좋은 서류를 만드느라 수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고등교육예산을 사업 공모 방식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사업 신청서 작성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    

서열화된 대학체제 하에서는 힘들게 평가해 봤자 결과가 달라질 것도 없다. 복잡한 평가지표 대신에 서울에서의 거리, 대학의 규모, 입학생 수능성적 세 가지만 가지고 등급을 매겨도 95% 이상 똑같은 평가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결국 쓸데없는 일에 국민의 세금과 교수의 연구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학비리 여부 하나만 가지고 평가를 하더라도 대학의 질을 엄청나게 높일 수 있다. 

평가를 안 한다면 정원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정부가 아무 일을 안 해도 정원은 저절로 줄어든다. 학생이 줄어드는데 정원이 줄지 않을 방법이 없다. 가만 내버려두어도 될 일을 일부러 나서서 교육의 질만 떨어뜨리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방법은 모든 대학의 정원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정원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구조조정은 대학이 알아서 할 것이다. 지방대학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도 막을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대학에 투자를 늘리면서 정원을 줄이는 것이다. 미국은 1인당 2만6천불의 교육비를 쓰고, 유럽은 1만5천불의 교육비를 쓰고 있다. 우리는 1만불의 교육비를 쓰고 있다. 선진국 수준으로 교육비를 늘리지 않으면서 선진국 수준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사회맞춤형 취업 중심의 대학구조조정도 잘못된 정책이다. 이런 정책에 대해서 81.4%의 교수들이 미래 발전에 장애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취업 중심 구조조정은 전문대학에 적합한 정책일 수 있다. 일반대학의 설치 목적에는 위배되는 정책이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등교육법 제28조) 

취업률을 높이는 것은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들의 주된 업무다. 청년 취업률이 떨어지면 대학교수가 아니라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먼저 벌을 받아야 한다. 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은 대학의 설립 목적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취업에도 아무런 효과도 없다. 취업률을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는 정책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다달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미래의 경제는 인공지능 경제가 될 것이다. 수년 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할 때 존재하던 직업은 졸업할 때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경제에서는 대학에서 한 가지 직업에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것보다, 인격을 도야하고, 새로운 분야를 학습하는 방법을 익히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미국의 고등교육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샌더스는 모든 공립대학(전체 대학의 80%)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힐러리는 전문대학을 무상으로 하면서 대학 전체에 대해 4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래 경제에서 미국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미래의 평생학습사회에서 직업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근로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정부는 고등교육을 구조조정해서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하는 사양산업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등교육을 사양산업으로 취급하는 나라는 미래의 지식경제에서 결코 번영할 수 없다.

강남훈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 교수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저서 『경제학자, 교육혁신을 말하다』, 논문 「불안정노동자와 기본소득」 등을 썼다. 민교협 사무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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