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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스 유목민’의 가능성, 지역적 특색 내면화 필요하다
‘레지던스 유목민’의 가능성, 지역적 특색 내면화 필요하다
  • 정명주 대구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 승인 2016.04.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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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_ 지역미술이 희망을 제시하려면
▲ 2013대구현대미술제_아카이브 전경

지역 미술을 이끌어 가는 두 개의 축은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미술인 그리고 자치단체의 문화행정 시스템이다. 이 두 축, 창작활동을 하는 미술인의 활동과 행정 시스템의 행정력은 서로 상생하면서 동시에 방향성에 따라 충돌하기도 한다. 지역 미술인의 자생력이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의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지역미술의 체질은 허약해진다. 인프라가 약할수록 지역의 문화시스템은 행정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로 인해 개인이나 단체활동에 대한 행정적 지원의 기준이나 방향에 따라 미술계가 발전하기도 하지만 파열음이 발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미술은 그 특성상 동시대적 흐름의 중심보다 주변이라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미술인들은 여건만 되면 수도권이나 해외로 나가서 활동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 중에는 개인적인 노력으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소통을 이끌어가며 활동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지역의 미술문화가 갖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영역을 확장해서 교류할 수 있는 작가들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화행정력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그 지역만의 특수성을 찾아 문화적 토양을 다지는 일이다. 그러한 토양 속에서만이 뿌리를 내리고 중장기적인 문화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작가와 미술공간이 많을수록 지역미술도 건강한 순환이 가능해진다.

문화정치적인 색이 강한 지역일수록 미술의 특성 역시 강한 색을 띠게 된다. 이런 배경 속에서 형성되는 동시대 미술문화의 흐름은 어떤 것일까, 해서 가끔 광주와 부산에서 이뤄지는 전시나 미술축제를 보러 간다. 국내의 미술축제가 어느 도시나 유사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또 다른 모습을 본다. 어쩌면 직업상 필자가 활동하는 지역과 다른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보게 된다. 광주, 대구, 부산은 타 지역에 비해 미술인들의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현대미술전시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곳이므로 그만큼 말도 많고 기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1995년부터 광주비엔날레를 개최하며 국내 최초의 국제전시로 세계 미술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광주는 대인시장프로젝트와 시립미술관에서 운영했던 창작스튜디오를 통해 일찌감치 지역 작가들의 플랫폼 역할을 했으며, 지역의 전통과 민주화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미술의 색과 동시대 미술이 만나는 지점을 만들고자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구는 1970년대 청년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그들을 주축으로 대구현대미술제를 개최하며 세계 현대미술의 동향에 주목하고 전시와 이벤트를 벌였다. 그들은 평면,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으로 장르의 확장과 실험성을 과감하게 실천했으며, 현대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1970년대는 현대미술의 흐름이, 80년대에는 참여 혹은 비판미술의 흐름이 강하게 부각되고 87년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시대적 변화 속에 놓이게 됐다. 90년대 이후 한국미술은 운동이나 단체보다는 개별적인 활동으로 작가적인 마인드가 보다 부각되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지역미술은 대안공간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타지역의 작가와 동시대 미술을 교류하는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각 지역은 같거나 다른 방식으로 청년미술인 육성을 위한 지원과 새로운 소통의 문화지대를 위해 행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 시스템은 ‘레지던스 유목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기보다는 행정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단속적이기는 하지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일년 정도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떠난다. 국내에서 해외지원으로 확대되는 레지던시도 생겨나면서 지원의 내용에 따라 창작의 흐름도 변화해 간다.

이처럼 과거에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역량으로 미술활동을 했다면, 요즘엔 지역의 기관에서 운영하는 창작공간이나 전시프로젝트가 지역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관의 사업은 대중과 소통을 중요시하며 각종 페스티벌이나 마을미술프로젝트, 공공미술 전시 등 기금과 지역의 성격에 맞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대중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미술인들의 역할은 공적인 영역에 진입하면서 작가의 창작정신이라는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의 대형 프로젝트는 개인의 창작활동이 다수의 미적 향수를 위해 보편적 미감을 양산하는 흐름을 만들기도 한다.

▲ 2015강정대구현대미술제 전시풍경(야간)

그렇다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미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렵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길은 개인의 행복을 존중해야 하듯이 작가의 창의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미술인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에서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해 진다. 지역미술의 위기감은 보편성에 편승하고자 하는 손쉬운 선택에서 비롯된다. 진부한 지역성을 벗고 진보적인 지역의 행보가 가능한 것은 비슷하지만 다른 지역적 특색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실행하는 행정시스템에 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은 많아졌지만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는 프로젝트의 전문성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평준화된 매뉴얼처럼 진행되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창의력도 평준화되고 있다.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미술대학도 많고 미술이론을 전공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술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연구하는 큐레이터가 더 많아져야 한다.
세간에 화제였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경기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그리고 인공로봇 직무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으로 예술계통이 최상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진단이 현실이 될지 아닐지도 역시 인간의 손에 달렸다. 기계가 갖지 못한 인간적인 감정, 감동을 만드는 창조적인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만이 어쩌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개인의 특수성, 지역만의 특색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발굴 지원되고 더 깊이 연구될 때만이 그 존재감을 회복하고 지역미술과 개인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명주 대구 아트스페이스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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