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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따뜻한 展示
신화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따뜻한 展示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4.21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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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문로에서 마난 이중섭과 김환기

 세 살 터울의 이중섭(1916~1956)과 김환기(1913~1974). 이들은 서로 다른 삶과 예술의 경로를 걸어갔지만, 서울 부암동 자하문로에서 마침내 서로를 마주보게 됐다. 두 미술 거장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기 때문.
4월 11일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 일. 이날을 맞아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다음달 29일까지 「이중섭은 죽었다」展을 선보이고 있다. 전쟁과 같은 극한의 시대에 낀 예술가의 남루한 삶은 신화가 되기 쉽다. 낭만주의적 예술 개념이 투영된 것인데, 이 신화의 외피를 벗어내면 이중섭 자신이 즐겨 그렸던 벌거벗은 아이들의 몸과 같은 이중섭의 맨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가족을 아꼈고, 한 여인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인간 이중섭의 모습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인생을 죽음부터 탄생까지 담아내고자 했다. 화가가 살았던 공간 열 곳을 재현해 보여주고, 각각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을 함께 불러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이중섭이 신산한 생활 속에서도 가족이란 안식처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것이 한 예술가의 영혼을 어떻게 밝고 환하게 비춰줬는지를 절박하게 느낄 수 있게 기획됐다. 이중섭이 부인과 두 아들을 먼 일본 땅에 두고 생활하다가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외롭게 병원에서 숨져간 건 사실이지만, 화가가 그 궁핍한 조건을 은박지나 그림엽서와 같은 작은 단편들을 통해 정화하고 내면화한 예술적 승화의 의미까지는 어쩌진 못한다. 황소그림을 비롯해 담배은박지에 그린 은지화,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그림엽서 등이 전시돼 있다. 서울미술관측은 “2012년 개관전 이후 자체 소장한 이중섭 작품 17점을 4년 만에 한자리에서 전시한다”라고 밝혔다.

▲ 김환기의 뉴욕시기(1969년) 드로잉. 전면점화의 기법이 뚜렷해지고 있다. 환기미술관 제공

이중섭 전시를 뒤로 하고 자하문로 횡단보도를 건넌 뒤 언덕길을 200여 미터쯤 오르면 환기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수화의 드로잉 등 초기작부터 절정기에 그린 전면점화까지 주요작품을 소개하는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展이 이곳에서 관객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라는 이 기막힌 문장은 김환기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이며, 환기미술관을 설립한 김향안(본명 변동림, 1916~2004) 여사가 생전에 환기미술관의 의미와 역할을 설명하며 남긴 말이다. 환기미술관측은 김환기와 그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투명하게 고양해낸 부인 김향안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데 취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변동림’은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위치를 갖는 인물이다. 시인 이상과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난 ‘김향안’은 김환기 생전에는 그의 예술세계를 깊이 이해한 반려자로, 수화 사후에는 그의 유작을 정리해 소개하면서 화가, 문필가로도 활동했다. 김향안 여사는 1979년 환기재단을 설립했고, 이후 1992년에는 환기미술관(우규승 설계)을 세웠다. 오늘날의 수화를 수화로 만든 것은 바로 김향안 여사였다.
이번 전시는 6·25전쟁 당시 피란 시기와 서울 성북동 시절, 파리와 뉴욕 시대 대표작 등 4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전시’로 꾸려졌다. 수화가 뉴욕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치열한 예술혼으로 완성한 전면점화들과 함께 파리에서 뉴욕을 거쳐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가는 시기의 드로잉 작품들도 전시됐다. 수화 말년의 ‘전면점화’의 탄생과 발전 과정도 엿볼 수 있다는 건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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