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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자들은 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할까?
영국 노동자들은 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할까?
  •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국제학과
  • 승인 2016.04.12 17: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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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교양의 효용』 리처드 호가트 지음|이규탁 옮김|오월의봄|552쪽|25,000원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훌륭한 ‘스펙’을 쌓고도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현재 10대~20대들의 처지는 『교양의 효용』에
묘사돼 있는 대중매체 환경 및 당시의 일반적인 영국 노동자계급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의 록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스포츠, 문학 등과 같은 영국의 대중문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문화(British Working Class Culture)’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는 것이 좋다. 가령 영국의 록음악에서 때로는 거친 느낌마저 주는 힘찬 남자들의 합창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 존 레논의 노래 중 하나인 「Working Class Hero」가 발표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노동자계급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 혹은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나 「브라스드 오프(Brassed Off)」, 「풀 몬티(Full Monty)」 같은 영국 영화에서 묘사되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 작품들을 좀 더 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중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학술적 연구들, 특히 문화연구의 주요 저작들이 바로 영국 노동자계급 문화에 관한 연구들이라는 점에서 영국 노동자계급 문화에 대한 이해는 곧 현재의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와 접근을 시작하게 되는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교양의 효용』은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문화연구 학자인 리처드 호가트(Richard Hoggart)가 지은 저작 『The Uses of Literacy』(1957)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영국 문학 전공으로 학문을 시작한 호가트는 곧 영국 대중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에 버밍엄대에 재직하던 그는 1964년 해당 대학교의 현대문화연구소(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CCCS) 의 창립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CCCS가 창립되자 호가트는 초대 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1964~1969), 그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을 선임 연구원으로 임명하는 등 후배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홀은 호가트에 이어 2대 소장이 되고 이후 문화연구의 대표적인 학자로 명성을 떨친다). 즉 호가트는 문화연구라는 학문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으며, CCCS의 창립자이자 초대 연구소장이라는 점에서 향후 문화연구 전개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다양한 저작들 중에서도 『교양의 효용』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저작인데, 왜냐하면 이 책은 다른 저작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20세 초중반의 영국 노동자계급 문화를 매우 생생하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호가트는 왜 문화연구자들이 노동자계급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줬으며,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해당 시기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발전하며 변화하는지를 상세하게 밝혔다. 즉 이 책은 이후 잇달아 등장하게 될 영국 노동자계급 문화에 대한 연구의 효시라고 불러도 좋을, 문화연구 분야 고전 중의 고전이다. 더불어 당시 노동자계급이 실제로 사용하던 단어·어구·비유적 표현 등을 직접적으로 인용함으로써 현대 英語史 분야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연구가 본격적인 틀을 갖추기 전인 1950년대 말에 쓰인 책인지라 아직까지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고 있었는데, 출간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이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된 것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호가트는 이 책에서 당시 일어나고 있던 새로운 흐름들―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싸구려 통속 소설과 황색 언론·잡지의 유행, 미국 대중문화의 대거 유입, 문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및 중앙집중화 경향 심화―이 과거부터 존재하던 노동자계급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하며, 이 영향으로 인한 변화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각종 여론 조사 자료 및 자세한 통계 수치를 인용하는가 하면, 실제 노동자계급 출신으로서 자신이 청년기까지 직접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 및 자신이 접한 바 있는 과거·현재의 노동자문화와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예시와 분석 등을 모두 근거로 삼는다.

호가트의 이러한 연구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이상적인 연구 방법으로 생각하는 ‘실증적 연구와 이론적 연구의 결합’을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학, 문학, 언어학, 역사학, 인류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를 넘나드는 그의 접근 방식 역시 ‘학제 연구’혹은 ‘융합’이라는 최근의 학문 연구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괜히 이 책이 인문사회 분야의‘고전’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영역의 고전이라면 당연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읽었을 때도 재미와 지적인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부분도 충실히 만족시킨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겪던 영국의 역사와 정치사회적 흐름을 읽을 수 있고, 당시의 미디어 환경과 발전상을 엿볼 수 있으며(그 결과 이 책은 미디어 연구의 고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계층별로 가지고 있던 의식 및 생활태도와 더불어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영국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 및 문화연구 쪽의 선구자격인 영국의 사례와 분석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사례에도 충분히 응용하여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1957년에 발간된 이 책이 나온 지도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덕분에 대중문화 및 미디어에 대한 시각 중 일부에서 독자들은 일종의 ‘시대적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이 고전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비록 책 속의 몇몇 소재나 내용이 과거의 사실이 돼버렸다고 해도 그것의 주제 의식이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교양의 효용』 역시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생각의 바탕을 제공한다.

날이 갈수록 소수의 대기업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미디어 권력, 글쓴이의 노력과 통찰이 들어간 정교하고 상세한 묘사와 분석이 담긴 글 밑에 ‘내용이 너무 기니까 석 줄로 요약해달라’ 혹은 ‘긴 글은 패스’와 같은 댓글을 서슴없이 달며 짧고 간단하며 자극적인 글만을 선호하는 많은 인터넷 유저들,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훌륭한 ‘스펙’을 쌓고도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다른 것들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현재 10대~20대들의 처지는 『교양의 효용』에 묘사돼 있는 대중매체 환경 및 당시의 일반적인 영국 노동자계급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대가 바뀌고 우리가 즐기는 문화의 구체적인 형태 및 방법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지만, 멀게는 100년에서 가깝게는 60여 년 전 영국 노동자계급에게 일어난 문화 변화의 양상을 보며 현재 우리 사회와 문화의 문제점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대목이다. 더불어 갈수록 산업화·중앙집중화되고 있는 문화산업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계급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 호가트의 희망적인 시선처럼, 고도로 산업화·중앙집중화된 현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속에서도 그러한 희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국제학과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케이팝의 시대』(6월 출간예정), 『미디어와 문화』 등이 있다. 영미대중음악 전문지 <B. Goode (비굿) 뮤직매거진> 기획취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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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진 2018-12-09 17:12:51
글 진짜 너무 잘 쓰시네요. 안 그래도 읽어 봐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쓰신 글 보고 반드시 읽어봐야 겠다고 결정했어요. 새로 출간하신 책도 읽어볼게요. 또 좋은 책 많이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