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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의 꿈
오리엔트 특급의 꿈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6.04.1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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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

프랑스 작가 쥘 베른과 피에르 로티는 19세기 말이라는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기 대서양의 항구도시 낭트와 로슈포르 출신이고 수많은 여행을 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그들은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시아까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다녔고 유럽인들의 ‘이국정서’를 앞장서서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다만 그들이 여행을 떠났고 작품 활동을 하던 19세기 말은 지리적 발견이 이미 완성돼가고 발견해야할 ‘이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시대이기도 했다. 1883년 6월 5일에는 ‘오리엔트 특급’이라는 꿈의 열차가 런던과 파리, 이스탄불을 잇는 노선을 달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유럽인들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지나 거친 바다를 항해하여 닿을 수 있었던 동방의 세계들이 사실은 육로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쥘 베른이 소설 『녹색 광선』에서 대서양에 면해 있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지방을 탐험하고, 피에르 로티가 『아지야데』에서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해 동양의 신비를 체험하고 있는 동안 오리엔트 특급은 유럽의 북서쪽 끝 영국에서 동쪽 끝 콘스탄티노플 아니 이스탄불을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쥘 베른의 소설 『녹색 광선』은 결혼할 나이에 이른 주인공 ‘미스 캠벨’이 수평선에 해가 질 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녹색 섬광’을 찾아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바다로 떠난다는 낭만적인 모티브로 시작된다. 스코틀랜드의 전설에 따르면 이 녹색 광선 혹은 섬광을 보게 되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해가 지는 수평선을 찾아 떠나는 여정과 그들이 만나는 지리적 공간은 구글 지도를 놓고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고 정확하게 묘사된다. 스코틀랜드 북부지역, 즉 하일랜드 지방의 대도시 글래스고와 소도시 헬렌스버그에서 시작된 등장인물들의 여정은 대서양의 스태파 섬에서 끝난다. 우리는 그들과 여정을 함께하며 클라이드 강가의 역사적 도시들을 만나고 킨타이어 반도를 섬으로 만든 크리넌 운하를 지나 휴양도시 오번에 이르게 되고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이 있는 스태파 섬에 도착해 수평선에서 지는 해를 기다리게 된다.

다시 글래스고로 돌아와 런던에 도착하면 오리엔트 특급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최초의 오리엔트 특급이 출발했을 때는 런던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버에서 멈췄고 프랑스의 칼레까지는 배를 통해 이동하거나 처음부터 파리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다. 오늘날에는 ‘유로스타’가 도버해협을 수중으로 관통해 런던과 파리를 이어주고 있다. 최초의 오리엔트 특급의 탑승자들 중 한사람은 언론인 에드몽 아부였다. 그는 『오리엔트 특급』이라는 여행기를 통해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의 3천186킬로미터라는 여정을 상세히 기록한다. 승객들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스트라스부르, 뮌헨, 빈, 부다페스트, 부쿠레슈티 등을 경유했고 불가리아의 항구 바르나에서 하차해 증기선으로 갈아타고 흑해를 지나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해군 장교 출신의 작가 피에르 로티는 이스탄불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아지야데』를 쓴다. 『아지야데』에는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영국 해군 대위 로티와 하렘의 여인 아지야데의 사랑 이야기가 서구 열강의 침략과 투르크 제국의 해체 과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지야데』에서도 이스탄불의 지리적 공간과 역사적 장소들이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소설의 주인공 로티가 항해 끝에 도착한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바다와 가까운 해안에는 돌마바흐체 궁전을 비롯하여 톱하네 지구, 갈라타 탑, 톱카프 궁전, 성소피아 성당 등이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오른쪽으로 끼고 왼편의 좁은 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골든 혼이다. 골든 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배를 내려 언덕을 오르면 에윱 지구다. 로티는 에윱 지구에 살면서 에윱 술탄 모스크와 공동묘지를 지나 아지야데를 만나기 위해 이스탄불의 구시로 향했다. 오늘날 관광객들이 도시의 전경을 보기 위해 자주 찾는 피에르 로티 언덕은 소설의 주인공이 살던 에윱 지구에 있다.

쥘 베른과 피에르 로티가 꿈꾸었던 ‘이국’은 교통의 발달과 지리적 발견의 완성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대서양의 영국으로부터 파리를 거처 이스탄불까지 동서양을 잇는 오리엔트 특급의 출현은 역설적으로 ‘이국’을 향한 꿈의 소멸을 초래했다. 하지만 유럽에서 출발한 열차가 아시아 대륙을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든다. 오리엔트 특급은 아니더라도 유럽의 국가들처럼 국제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해 있는 광경을 꿈꾸어 본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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