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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존중 태도는 어떤 것인가? … 도발적 연구 들고 루마니아로 달려가다
남아존중 태도는 어떤 것인가? … 도발적 연구 들고 루마니아로 달려가다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승인 2016.04.06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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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3. 연구의 落穗

 
가족계획의 심리학적 연구와 남아존중사상 연구를 하면서 사람들은
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자녀가 무슨
가치가 있기에 아이를 가지려고 하느냐라는 약간 엉뚱한 질문이다.

▲ 1976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6회 국제워크샵-자녀의 가치 프로젝트에 참가한 필자.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필자다.

앞에서 쓴 한국행동과학연구소의 가족계획연구는 근 반세기 전의 일이어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그 내용의 초점이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지금의 우리 정서에 잘 맞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가족계획에 대해서 앞에서 장황하게 서술한 것은 그 연구가 연구소 출범 무렵의 시대적 경향이 그러했기 때문이고 연구소 초기의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이란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계획’이란 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녀출산을 계획하고 산모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수태조절에 관한 의료봉사와 교육을 하는 것이 공언한대로 가족계획사업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인이 가족계획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는데, 한 가지 만만치 않은 게 남아존중사상이었다. ‘아들은 성공, 딸은 실패’라는 생각이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여아존중의 정서가 슬슬 분위기를 타는 것처럼 보여 남아존중이란 말이 어색하게까지 들린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 그렇게 견실하게 붙박여 있는 생각 즉,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였고, 출산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한국인의 남아존중사상을 연구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록펠러재단의 연구비 원조를 받았다.
조사연구에 들어가기 전 우선 여러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선일보 이규택 선생에게 민속에 나타나는 남아존중사상을, 서울대의 박병호 교수에게 남아존중의 법적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역시 고인이 되신 연세대 하현강 교수에게는 한국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남아존중 사상에 관한 논문을 위촉해 우리 연구의 배경으로 삼았다. 이어서 남아존중의식의 현상에 대한 사실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해 현장조사와 사례연구를 하는 등 종합적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맡아서 연구팀을 지도한 이가 그 당시 연구소 자문교수였던 서울대 심리학과의 차재호 교수였다. 그가 이 연구의 많은 내용 중 한 가지 핵심적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남아존중태도와 출산 간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녀수가 5명 이상인 경우는 유의한 상관을 보이지 않았다. 남아존중태도는 아무 상황에서나 가족계획행동과 관련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부인이 아이를 더 출산할 것인지 여부로 갈등에 빠져있을 때, 즉 상황적 압력이 상충할 때 위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가족계획행동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남아존중사상에 관한 한 당시로서는 상당히 앞선 연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연구의 보고서 「한국의 남아선호와 가족계획(Boy Preference and Family Planning in Korea)」을 접한 낸시 윌리엄스(N. Williams)라는 이 방면의 저명한 연구자는 자신의 한 저서에서 우리 연구를 많이 언급했고, 남아존중 자체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 연구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평했다. 그리고 우리 연구보고서는 미국의 ‘ASA 로즈 모노그래프 시리즈’에 호의적으로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가족계획의 심리학적 연구와 남아존중사상의 연구를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자녀가 무슨 가치가 있기에 아이를 가지려고 하느냐라는 약간 엉뚱한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의 가치(Value of Children: VOC)」라고 이름붙인 연구에 착수했다. 이 연구는 하와이대 동서인구연구소의 자문교수이며 심리학과 교수였던 포셋(J. Fawcett) 박사가 계획하고 필리핀, 태국, 미국(하와이), 대만, 일본, 그리고 한국 등 6개국이 참여한 비교문화 국제연구로서 우리 연구소가 연구센터를 맡았다. 국제연구라는 점에서 앞에서 든 연구와는 그 성격이 달랐고, 연구과정도 복잡한 편이었다. 연구비는 캐나다의 국제개발연구센터(IDRC)와 미국의 포드재단이 지원했고, 연구의 전체적인 조정은 포셋 박사가 맡았다.
이 연구는 부부가 자녀출산을 원하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데 무게를 실었다. 부부가 자녀를 원한다면 어떤 이유에서 원하는지, 또 원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즉, 자녀의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가치(부담)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이 양극의 가치를 득실평가(cost-benefit evaluation)로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녀가치 연구의 출발점은 발달심리학자인 미국의 호프만(L. Hoffman) 교수 부부가 1973년에 제안한 자녀관의 개념틀이었다. 이 개념틀에는 9개의 범주가 포함돼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되 우리의 6개국 연구자료에서 얻은 상관계수, 요인분석 자료와 우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15개 범주를 연구변인으로 포함시켰다. 그 내용은 5개의 긍정적 가치(자녀로 인한 여러 가지 이득), 5개의 부정적 가치(자녀로 인한 부담), 3개의 대가족 가치(형제 관계 등), 그리고 2개의 소가족 가치(사회적 부담의 면제) 등이다. 그밖에 자녀가치와 관련이 있는 사회인구학적 변인, 사회적 업력요인, 심리사회적 변수들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6개국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는 하와이대 동서인문제연구소 컴퓨터센터에서 포셋 박사와 최민자 박사의 지시에 따라 전산처리 됐다. 핵심적 연구결과를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자녀의 긍정적 가치로 현저하게 부각된 것은 자녀로부터 받는 실제적이고 유익한 도움, 자녀와의 상호작용에서 얻는 보상과 기쁨, 그리고 자녀가 있음으로 해서 얻는 심리적 보상과 고마움 등이다. 자녀의 부정적 가치 즉 부담은 자녀에게 직접 들어가는 금전적 부담, 자녀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활동에 제약을 받는 기회 부담, 자녀가 어릴 때의 육아 부담, 그리고 사회생활에 방해가 되는 부담 등이다. 이 연구결과를 자녀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이론적 모형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연구에 참여한 6명이 각각 자국의 연구보고서를 집필해, 국가별 보고서인 「자녀의 가치(the value of children: a cross-national study)」 6권과 6개국 자료를 종합적으로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제시돼 있다. 이 보고서들은 동서인구문제연구소가 출판했다.

비교문화연구는 교차문화연구로도 불리는데, 사회학이나 인류학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연구방법으로 여러 문화에서의 다양한 관행을 비교하는 연구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연구에 참여한 6개국에서 자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알아보고자 했다. 일견 단순해보였지만 연구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이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첫째는 국가 간 비교를 위해서 질문지를 만들어 현장연구를 하고자 했는데, 공통질문지를 만든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가 채택한 방법은 일단 영어로 질문지를 만들고, 그것을 5개국의 언어로 번역한 다음 각국에서 소집단에 실험적으로 실시해본 뒤에 다시 영어로 번역해서 그 의미가 각국에 공통적으로 전달되는지 검토한 다음 다시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비교문화연구에서 질문지를 사용하는 경우, 이런 번거로운 일이 있음을 각오해야 했다.
둘째 문제는 우리 연구에 각국 연구자의 관심 사항을 반영해 질문지에 포함시켰는데, 그것이 면접당시 피면접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검토하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잘 몰랐다. 다만 그런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각국에서 조심하자고만 했다.

셋째 문제는 피면접자를 표집할 때 고려했던 그들의 지역 특징, 경제 수준, 교육수준 등 사회인구학적 변인과 관련 있다. 이런 변인들은 국가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 예컨대 A국 고등학교 졸업자는 다른 B국 중학교 졸업자 수준과 거의 동일한 교육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이런 변수는 자료처리에서 조심스럽게 점검해야 하며, 우리는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6명의 연구책임자들의 국제회의를 진행하곤 했다.
우리의 「자녀의 가치」 연구는 여러 국가가 관여했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연구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준 AID, 미국의 인구협의회(Population Council), 포드재단, 캐나다의 국제개발연구센터(IDRC) 등이 관심을 보였다. 그 때문인지 1974년 8월 유엔이 정한 ‘세계 인구의 해’ 행사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개최됐을 때, 그 행사의 NGO프로그램인 인구트리뷴에 ‘VOC’ 세션이 잡혀 있었다. 우리 연구팀 6명 중 4명이 그 자리에 참가했고, 내가 그 패널토론회의 의장을 맡아 토론을 주제했다.

루마니아 패널토론회에 참가했다고 간단히 말했지만, 실은 입술이 바싹 마를 정도로 다급하고 긴장 속에 초조하게 보냈던 일정이었다. 당시 루마니아는 공산국가라 쉽게 방문할 수 없었다. 유엔 사무총장이던 쿠르트 발트하임이 나서서 우리 정부에 전문을 보내 나를 급히 루마니아로 갈 수 있게 했다. 방콕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가서 거기서 루마니아 비자를 신청했지만 3일 동안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찰나 당시 EC 대한민국 대사로 있던 송인상 씨의 노력으로 겨우 비자를 받아 입국할 수 있었다.
우리 VOC 세션은 부쿠레슈티에 있는 어느 대학의 자그마한 강당에서 열렸다. 지금은 그때 그 세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박사가 우리 패널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모임이 끝난 뒤 입구에서 미드 박사와 짤막한 대화를 나눴지만, 그때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재미있는 연구’라고 말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루마니아에서의 여러 가지 해프닝은 나중에 비교행동연구위원회(COMBEP)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상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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