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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 먹는 법
멍게 먹는 법
  • 이동순
  • 승인 2016.03.30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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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詩_이동순


나는 갯것이 좋다
갯것들 중에서도 멍게가 좋다
왜냐하면 멍게는
깊은 바닷속 바위틈에서
긴긴날 혼자 생각에 잠겼던
기막힌 고독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통한 알맹이
그 속살을 반으로 갈라
통째 입에 넣고 씹지 말 것
그저 차분히 멍게를 머금은 채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지그시 눈만 감을 것
그때 은은히 감도는 멍게향기는
필시 고독의 내음일지니
이윽고 입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태
소주와 멍게는 서로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춘다
스텝을 맞추며 빙빙 돌아가는
나의 입안은 바로 녀석들의 무도장
그들의 블루스가 끝날 때쯤
언제든지 멍게를 삼켜도 좋다


―『멍게 먹는 법』(도서출판 애지, 2016) 중에서
 
* 수필가 구활의 산문 「멍게와 소주의 블루스」 (<주간매일>, 2013.8.22)의 감흥을 시로 옮긴 것임.

□ 우리시대 대표적인 서정시인 이동순이 열다섯 번째 시집 『멍게 먹는 법』(도서출판 애지)을 냈다. 이번 시집에는 춤의 원형적 리듬과 삶의 통찰, 사물과 존재의 원리적 사유 등이 하나로 어우러진 62편이 수록돼 있다. 1950년 경북 김천 생으로,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했다. 『개밥풀』, 『물의 노래』, 『기차는 달린다』,  『마음의 사막』 등 1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를 완간했으며,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등을 썼다.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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