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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표명 넘어선 ‘논쟁’비평의 정체성을 묻다
찬반표명 넘어선 ‘논쟁’비평의 정체성을 묻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30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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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을 선택한 『문학동네』와 『문화/과학』 봄호

 

계간지 『문학동네』와 『문화/과학』은 사뭇 성격이 다른 매체다. 이번 봄호는 둘 다 늦게 출간됐다. 지각 출간이지만, 이들은 흥미로운 논쟁과 ‘비평의 정신’ 혹은 비평적 자세를 보여주는 특집을 들고 나왔다.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문학동네』 66호는 2015년 겨울호를 끝으로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들이 계간지 기획·편집의 책임을 후배 세대에게 일임하고 물러난지라, 봄호의 기획·편집은 여러모로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후배 세대’ 편집위원들이 이를 명확하게 인식했으리라는 건 틀림없다. 인적 구성의 교체는 특집 구성에 힘을 쏟는 것으로 이어졌다.

특집 ‘비평, 무엇을 할 것인가’에 새로운 편집위원들의 글을 각개전투 형태로 실었다. 여기에다 작금의 뜨거운 사안 두 가지를 ‘논쟁’의 지평으로 호명했다. 논쟁1은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박경신vs정희진)로, 논쟁2는 ‘「응답하라 1988」’(김영찬vs남소연)을 내세웠다. 특집이야 그렇다하더라도, 2인 발의 형태의 논쟁은 단순하게 찬-반의 입장표명과 그 연장선에서 문제의식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읽기 좋다. 특히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좀 더 새로운 논의를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논쟁’은 일단 합격점을 줘도 좋을 것 같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 「누가 더 국가주의적인가?」를 통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형사기소가 없었다면 나는 절대로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책에 대한 형사기소는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봐야 한다. 이 글 어디에도 명예훼손의 증거는 없다. 박유하의 국가주의적 견해만이 있을 뿐이다.”

여성학 강사인 정희진의 글 「포스트 식민주의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성을 從軍의 常數로 놓는 전제부터 문제시하려는 논의를 시작하자”라는 문장으로 마쳤는데, 이 마지막 문장에 정희진이 보는 ‘박유하 사태’의 관점이 명확하게 비쳐진다. 그가 보기에 ‘강제성 담론’은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맥거핀’일 뿐이다. 그의 글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대목은 다음이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자신의 주장을 (생각 없이) ‘선포’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태에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나 비판을 곧바로 ‘학문의 자유’로 연결시키는 관성이 대표적이다. 나 역시 사법 처리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증언을 반박하는 책을 학문의 자유로 매치시키는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무엇이 학문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의 영역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학문의 자유가 보장한다는 지적인 상상력은, 자유의 의지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포지션을 이동시킬 때 가능하다. 군 ‘위안부’의 ‘부분적 진실’, 지금도 여전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이해나 사전 공부가 있었다면, 다른 식의 항의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문화/과학』 85호가 내세운 특집은 제목도 도발적이게 ‘비평전쟁’이다. 이를 내세운 데는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촉발된 비평의 비판적 기능과 비평가의 실천적 임무를 문학에만 제한하지 말고 문화와 비평의 장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이 작용한다. 『문화/과학』 편집인인 이동연 한예종 교수는 “텍스트의 물신화와 비평 위기는 비단 문학의 장에서만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장 전체에 걸친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최근 신경숙 표절 사건을 통해 촉발된 문학 장의 위기와 문학권력의 비판에 대해 지금 비평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현재 비평이 처한 일반적 위기는 무엇이고, 비평은 왜 더 이상 읽히지 않고, 본격 비평은 왜 대중에게 외면당하며, 사회적 재난과 정치적 파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를 따진다.

이들이 말하는 ‘비평전쟁’이란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비평전쟁의 전면전은 지금 우리 시대 비평의 존재, 기능과 역할, 새로운 실천에 대한 자기로부터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즉 비평전쟁은 비평에 대한 비평의 전쟁, 즉 메타비평적 투쟁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망에서 「비평전쟁시대의 메타비평 메뉴페스토」(이동연), 「권력과 문화자본으로서의 비평의 문제들」(정원옥),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오혜진), 「비평논쟁을 통해 본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역사적 성찰」(오창은), 「하위문화 비평의 궤적과 방향: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비평을 중심으로」(강신규) 등 5편의 글을 실었다.

특히 이동연 교수의 글은 이번 특집의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비평이 해야 할 일은 표절의 객관적 근거를 밝히고, 그 배후의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비평은 문학과 문학비평의 장에 대한 자기 내파와 새로운 대안적 장을 형성하기 위해, 상실된 비판의 복원과 상상해야 할 새로운 비평의 위상과 역할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때 그의 물음은 구체적으로 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문학 장에 대한 자기부정의 미적인 근거 찾기, 비평의 급진적 상상력을 위한 사회적·정치적 논쟁에 뛰어들기가 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비평은 달라진 비평 장의 환경과 문화생태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인지적 지도그리기와 혐오, 증오, 분노, 배제, 공포의 감정에 휩싸인 우리 사회의 정동적 전환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대해 간파해야 하며, 재난과 파국의 지형의 토폴로지를 분석해 내야 한다.” 그러니까 그는 비평의 위상과 실천을 재구성하는 메타비평적 선언을 환기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메타비평의 메뉴페스토는 “전쟁과 폭력으로부터의 위협, 재난을 더 재난스럽게 만드는 통치술, 사회적 안전망이 거세된 일상의 위협들,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들, 세월호를 비롯해 사회적 재난의 국면에서 잊혀져가는 피해자들,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에 희생되고, 국가의 검열로 창작의 권리가 박탈당한 예술가들의 현실”에 맞서는 싸움을 위한 행진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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