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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에 골골이 피어난 옹근 꽃망울
지천에 골골이 피어난 옹근 꽃망울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3.30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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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51. 모란

 

▲ -모란 사진출처= 다음블로그 ‘토함산솔이파리’

김영랑(金永郞, 1903~1950)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려 외고 또 외웠지. 어린 마음에도 왜 그리 봄이 지는 것이 슬프고 애잔했던지…. 여기 다시 그 시구를 읊조려본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은 牧丹이라고도 한다. 화투장의 유월목단 말이다. 지금쯤 해마다 피는 고향집 마당가 화단에, 탱글탱글하게 물이 오르면서 한껏 옹근 모란꽃망울이 흠씬 그 자태를 벌써 드러내기 시작 했으리라. 아린 겨울을 용케도 이겨내고 그렇게 잎보다 먼저 꽃망울을 맺는다. 머잖아 넓적한 새잎을 틔우면서 우람하면서 곱디고운 꽃을 대뜸 피우리라. 봄은 하루에 37m 속도로 성큼성큼 북상 중!


모란(Paeonia suffruticosa)은 작약과의 잎 지는 떨기나무(落葉灌木)로 키가 1~2m 남짓이고, 동네방네 집집마다 키우다 시피 한다. 속명 ‘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서 ‘의술과 치유의 신’인 Paeon에서 따왔고, 종소명인 ‘suffruticosa’는 관목이란 뜻이란다. 작약과의 식물에는 40여종이 있고, 그 중 30여종이 식물성이며, 놀랍게도 중국에 현재 600품종이 더 있다한다. 그리고 모란 같이 가을이면 잎이 죄 떨어지고 덩그러니 줄기는 남아 매해마다 자라는 목본(tree peony)이 있는가하면 작약(芍藥, P. lactiflora)처럼 겨울이면 줄기까지 다 시들어 말라죽고 뿌리만 남는 식물성(herbaceous peony)인 것이 있다. 또한 모란과 작약을 교배시켜 잡종(hybrid)을 얻는다한다.


잎자루에 5장의 잔잎(小葉, leaflet)이 붙은 겹잎(複葉)이고, 잔잎은 달걀모양으로 2∼5개로 갈라진다. 잎 표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잔털이 있어 흔히 흰빛이 돈다. 아주 성장이 매우 느리고, 나무껍질(木皮)은 통통한 것이 검은 회색이며, 가지는 굵고 성기게 갈라진다.
모란(Chinese tree peony)은 중국원산으로 가장 야생종에 가까운 종인데 중국에서는 하도 마구 캐어서 씨가 마를 지경이란다. 새가지 끝에 흰색 또는 자줏빛이 도는 화사하고 우람찬 꽃 한 송이를 피운다. 꽃은 아침에 시작해 정오에 절정에 달하고, 만질만질한 꽃은 며칠 가지 못해 얼른 이울고 만다. 佳人薄命이요 花無十日紅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흐드러지게 핀 모란꽃은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곱고 소담스럽다. 암술수술이 한 꽃에 피는 양성화로 지름이 15cm 이상이고, 꽃받침조각은 5개이며, 넓적한 꽃잎은 8개 이상이다. 샛노란 수술은 빼곡히 나고 암술은 2∼6개다. 열매에는 황갈색의 짧은 털이 빽빽이 나고, 무르익으면 세로로 갈라지면서 탐스럽고  알찬 종자가 튀어나오며, 씨앗은 큰 것이 반들반들하고 둥글며 새까맣다. 번식은 종자번식과 분주번식이고, 비교적 추위에 잘 견디는 가꾸기에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뿌리껍질인 牧丹皮라 해 한방에서는 소염·진통·두통·요통·건위·지혈 등에 쓰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262종의 화학성분이 밝혀졌다 하며, 주된 화학성분은 페오놀(paeonol)·페오놀라이드(paeonolide)·벤조익산(benzoic acid) 등으로 더욱이 알츠하이머·항암(돌연변이)·심근경색 등에 관한 연구결과가 한창 보고되는 중이라 한다.


꽃은 개량종이 많아 빨강·노랑·보라 등 다종다양한 색깔을 가진다. 흔히 함경북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국에서 약초로 많이 심는다. 언제가 천여 평의 밭에 지천으로 골골이 피어있는 모란꽃은 정말 장관이었다. 양지바른 곳이나 옅은 그늘, 중성이면서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을 좋아하고, 수분간수와 잡초생김을 막기 위해 비밀 덮게(mulch)를 하면 좋다.
모란은 꽃이 華麗하고 豊艶하고 위엄과 품위를 갖춘 맵시로운 꽃이다. 그래서 富貴花라고 하기도 하고, 또 花中王이라고 하기도 한다. 명예·부·권력과 함께 사랑과 애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 삼국에서 모두 아끼는 꽃나무이다. 중국에서는 매화와 함께 중국을 상징하는 國章(national emblem)꽃이고, 일본에서 잉어(koi fish)와 함께 文身(tattoo)에 흔히 쓰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왕비나 공주 옷에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 병풍에도 귀티 나는 모란이 빠질 수 없었다. 또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꽃에 비유했다.


당태종이 신라와 협약을 맺기 위해 선덕여왕에게 모란꽃그림 한 점과 모란씨 석 되를 보냈는데 그림을 보고 여왕은 “꽃은 화려하다. 허나 꽃에 벌이 없으니 향기가 없겠구나”라고 말했고, 나중에 핀 모란꽃은 실제로 향기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앞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고 필자도 한때 그런가보다 여긴 적이 있다. 사람도 그렇듯 흔히 ‘예쁜 꽃엔 향기가 없다’하지 않는가.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코를 모란꽃에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보면 그리 물씬 풍기지는 않지만 은은한 향이 돈다. 벌들도 모여들지만 꽃물로 개미들이 득실거린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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