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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그 전율에 대하여
노년의 삶, 그 전율에 대하여
  • 황태주 전남대 명예교수·소아과학
  • 승인 2016.03.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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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황태주 전남대 명예교수·소아과학
▲ 황태주 명예교수

“내 생명의 하루여! 저녁의 장막이 내리네. 이미 네 눈동자는 반쯤 빛을 잃었고 이미 네 눈물 같은 이슬이 넘친다. 머뭇거리는 너의 마지막 축복…. 그대 사랑의 진홍빛 노을이 조용히 흰 바다 위로 번지고 있다.” (니체, 『디오니서스 찬가』)

2016년 2월 우리나라 65세 인구는 45만 명 정도다. 80세까지 인구는 570만 정도이고 81세부터 99세까지 인구는 120만 정도 된다고 하니 전체인구 대비 13.5% 정도를 차지한다. 현재 65세라고 하면 80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30~40% 정도이고 85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다시 그 절반 정도인 15~20%다. 9만명 정도는 85세까지 살아남는다는 애기다. 직업이나 사회활동, 경제력에 따라 수명은 천차만별이지만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사람들은 그래도 상위권의 영역을 점하고 있었으니 퇴임 후 85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절반이 넘을 것이다. 적어도 20년간은 현재 수의 절반이 넘은 퇴직교수들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그럼 그들은 그동안 어떻게 무엇을 하고 지내야할까. 와병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어떤 일들을 해야 살아있다는 게 자신과 사회에 의미가 있을까.

데드라인이라는 말이 있다. 신문사 기사마감시간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데드라인이 가까워오면 초조하다.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막막할 때 더욱 초조해진다.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데드엔드가 나타나는 것과 아름다운 초원이 나타나는 것은 운전자의 태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서 어디서 멈출 것인지가 중요하다. 옛날 같으면 언제든 산으로 가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나이가 됐으니 언제 어디서 아무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멈출 것인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든 발전하려면 과거와 현재를 잘 다듬어야 알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조직이 함께 발전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고 앞장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노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인이 너무 의욕적으로 일하면 노욕이라고들 욕한다. 노욕이란 노년의 특징이라 일반론적으로 말하는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인 이유로 활동할 수 없게 되고 몸이 허약해지며, 많은 쾌락을 누릴 수 없으며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데 기인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노년이란 여러 가지 감성적 쾌락과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러워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항상 견지할 수 있다. 쾌락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이성과 사유를 요구하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강하고 오래 지속되는 쾌락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까지도 잃어 건강한 노후를 맞이할 수 없다. 근육질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못하겠지만 노년은 원숙한 노련미에 의해 지적 노동과 지혜를 요구하는 일은 분담 할 수 있다.

학문은 고집과 타협을 마다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저돌적인 탐구로 학문의 발전에 천착해왔던 퇴임 교수들은 이제 그 고집을 버리고 노년의 특성인 완숙한 열정과 분별력으로 타협과 조정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것이 노년의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고 공동체를 위한 재능기부가 될 것이다.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면 그 꽃은 더욱 아름답고 사랑을 받는다. 땡감보다 홍시가 진홍빛 노을처럼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노년의 삶은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한 것만을 취하는 시절이다. 나는 그 순수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욕망과 적대감을 버리고 자신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흥미로운 일인가 생각하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그 전율의 에너지로 순수함만이 남아 있는 디오니소스처럼 살 것이다.

황태주 전남대 명예교수·소아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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