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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과 反지성의 탄생
메트로폴리스 서울과 反지성의 탄생
  •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승인 2016.03.28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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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지난 몇 달 간 전국의 인문학 연구자들을 쥐락펴락했던 이른바 ‘코어 사업’의 선정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대학가가 온통 폭탄을 맞은 듯하다. 가공할 돈폭탄의 굉음에 모두들 혼비백산하고 있다. 대학의 인문역량을 강화한다는 공식 취지와는 달리 이 사업이 대학가를 일종의 기술직 취업양성소로 만들려는 ‘프라임 사업’의 눈가림용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향후 주변의 노동시장에 발맞춰 대학도 ‘유연화’의 대세를 거스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인문學科의 개편과 정원 조정은 시간문제다. 하긴 따지고 보면,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언제는 지성과 학문의 요람인 적이 있었던가. 어차피 돈이 칼춤을 치는 사회에서 대학이란 그저 스펙 쌓는 필수과정이 아니던가.

우리사회에서 지성의 가치가 금전에 종속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정부정책이나 특별한 사건의 결과가 아니다. 지난 몇 십년간 고착된 우리 삶의 방식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反지성적 환경을 이해하기위해 더없이 유용한 도서가 있다. 인기 팟캐스트 ‘사사로운 토크’의 방송 녹취록을 기반으로 편집된 임동근·김종배의 대담집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반비, 2015)은, 책 뒷면에 실린 사회학자 노명우의 추천사가 말해주듯,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왜 이런 꼴로 살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 지난 50년 간 2배의 면적, 10배의 인구를 지닌 대도시로 성장한 서울의 명암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그야말로 욕망의 활화산이다. 그 어떤 가치도 이 욕망에 버금갈 수 없다. 그깟 지성 따위야 세상물정 모르는 꼰대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청 앞에서 추곡수매를 할 정도로 시골스러웠던 서울이 1962년 총리 산하의 특별시가 되고 1963년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2배나 확장된 것은 권력 내부의 갈등이나 해외 도시이론의 유입 등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수도권 유입 인구의 급증에 직면해 선거구 확대로 민심을 다잡으려는 정치적 포석이었다. 황량한 농지가 서울에 대거 편입되자 부동산 투기가 만연하고 집과 땅에 대한 욕망이 들끓게 됐다. 국가는 투기열을 억제하기는커녕 스스로 투기에 앞장섰다.

개발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일제 강점기 이래의 전통에 의거해 박정희 정부는 개발대상 지역 인근의 지주들에게 땅을 환수해 그 일부를 체비지로 매각함으로써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이러한 와중에 탄생한 그린벨트는 세간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환경보호의 산물이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적 투기사업의 일환이었다. 개발된 땅이 잘 안 팔릴 때, 투자가 몰리는 다른 지역을 그린벨트로 묶어 소기의 체비지 매각을 완수했던 것이다. 그나마 유신정권 때는 나름 일관성 있는 국토계획을 추진했다지만 이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난개발의 파고가 전 국토를 뒤덮게 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규모 아파트군의 등장이다. 마포아파트를 위시한 1960년대의 시민아파트 건설 정책이 와우아파트 붕괴로 인해 중단된 이후 아파트는 중산층 주거지의 대명사로 자리잡아가게 된다. 정부는 세금혜택과 국고보조금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민간 건설업체들의 아파트 건설을 장려했다. 일반국민들도 열광했다. 진정한 ‘창조경제’의 사례로 꼽을 수 있을 선분양제도와 주택청약제도의 등장으로 막차 폭탄을 끌어안는 사람 빼고는 모두에게 일종의 주택 로또를 안겨주던 시절을 우리는 기억한다. 중동특수가 사라진 1980년대 후반부터는 택지개발촉진법 등이 마련되면서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됐고 IMF 금융위기 이후에는 정부가 마련한 벤처육성정책이 엉뚱하게도 오피스촌 과잉 개발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건설사와 금융권은 먹고 튀는 실력의 정수를 보여줬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대도시의 주택문제를 제대로 해결했을 리 만무하다. 미분양 사태와 건축 붐 사이를 널뛰는 경기변동 속에서 셋방살이의 설움은 더욱 심화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주택 로또’를 향한 우리의 끝없는 욕망이 어떻게 자리잡게 됐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특정 정권이나 몇몇 정책입안자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권력, 자본, 제도의 악무한적인 대연쇄가 우리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과연 그 누가 이 거대한 유혹 앞에서 초연할 수 있단 말인가. 지성의 역할이라? 지성이란 그저 로또에 당첨되지 못한 낙오자들의 푸념이라는 비난에 대해 과연 무슨 논리로 응수할 것인가. 세상에 만연된 반지성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지성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차라리 지성도 욕망일 뿐이라고, 화끈한 ‘투기’ 대신 책상 위의 소심한 ‘사변’ 활동임을 인정하자. 제대로 알아들기도 힘든 지성의 웅얼거림으로 이 사회의 기조를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을지 별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암울한 시절이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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