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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책임 방기도 모자라 ‘채점’ 나선 교육부
[기자수첩] 책임 방기도 모자라 ‘채점’ 나선 교육부
  • 이재 기자
  • 승인 2016.03.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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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 기자

또다시 대학가가 격랑에 휩싸였다. 이번에도 교육부가 시발점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기본계획을 발표한 ‘프라임사업(사회수요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으로 인해 대학생과 대학본부의 갈등이 대학가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경희대, 국민대, 인하대, 중앙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대규모 대학재정지원사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대학가의 갈등도 최대규모인 것일까?

22일 건국대·국민대·단국대·동국대·성신여대·이화여대·중앙대 등 수도권 7개 대학 학생회와 학생단체는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앞에서 세 번 절하고 한 발자국 걷는 ‘삼보일배’를 했다. 국민대에서는 약 800명의 학생들이 캠퍼스를 행진하며 학과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했다. 매년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으로 인해 벌어지는 대학생과 대학본부의 갈등은 이제 과거 등록금 인상반대투쟁을 하던 ‘3월 춘투’만큼이나 익숙하다. 그러나 올해 대학생과 대학본부의 갈등은 유독 안타깝게 다가온다.

몇 년째 이어져온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대학의 입장도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학과구조조정을 중단하라는 외침을 몇 년째 지속하고 있는 학생들이 측은해서일까? 모두 아니다.

정답은 교육부의 비겁함에 있다. 교육부는 이번 프라임사업 평가지표로 ‘학내 합의과정’을 포함시켰다. 3점짜리 평가항목이다. 교육부의 정책으로 인해 대학가가 매년 시끄러워지자 정책을 개선하거나 준비기간을 충분히 마련한다는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조용히 시키라’며 평가항목을 바꿔버린 것이다.

프라임사업은 대규모 정원조정사업이다. 정원을 많이 조정할수록, 바꿔 말하면 학과를 가장 많이 통폐합시킬수록 선정에 유리하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각종 통폐합 소문이 대학가를 유령처럼 떠돌면서 갈등을 부르고 있다. 정원조정은 학문단위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는 인문·예술계열을 통째로 뜯어다 이공계열 정원에 포함시키는 과감한 정책도 서슴치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이 모든 과정을 지난 12월 기본계획 발표 뒤 오는 3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끝내도록 요구했다. 이 가운데 2개월은 대학의 방학기간이라 대학생들은 3월 개강 뒤에서야 학과 폐지나 통폐합 소식을 접해야 했다. 격한 반응은 당연하지 않을까?

심지어 이 모든 것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됐다. 앞서 교육부가 충남대와 연세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프라임사업 공청회에서 대다수의 교수들이 지적했던 바다. 이쯤되면 대학의 갈등을 교육부가 부추기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혹도 제기해볼 만하다.

정부 정책으로 발생한 대학가의 혼란을 알아서 해결하라고 방관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조용히 시키라며 채점까지 나서다니? 주무부처로서 책임감은커녕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는 교육부가 실망스럽다. 아니, 실망하기도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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