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0:40 (금)
“USAID, ‘가족계획’ 연구 높게 평가
컴퓨터 활용한 연구, 학계 패러다임에 영향 끼쳐”
“USAID, ‘가족계획’ 연구 높게 평가
컴퓨터 활용한 연구, 학계 패러다임에 영향 끼쳐”
  • 교수신문
  • 승인 2016.03.22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2. ‘행과연’ 연구프로젝트를 하면서 남은 것

  
컴퓨터 활용에 일찍 익숙해진 우리 연구원들은 한국의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연구에는 물론 대학에서의
연구방법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미국생활을 마치고 1970년 서울로 돌아왔을 때, 한국사회는 내가 떠났던 1961년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빠른 속도로 건설되고 있었고, 서울은 온통 건설 붐으로 분주했다. 교육계에서는 1968년에 중학교 경쟁입시제가 폐지되고 추첨식 전형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1969년에 단행된 3선 개헌안으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1961년에서 1970년까지 근 10년을 미국에서 보낸 내가 한국행동과학연구소에 참여했을 때 연구소에는 이미 큼직한 연구프로젝트가 움트고 있거나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큰 프로젝트가 가족계획연구, 완전학습프로젝트, 아동관계연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계획연구는 그 당시 국가적 이슈였던 가족계획 정책수립과 사업추진의 방향 설정 및 그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도 요구됐고, 가족계획행동을 심리학적 관점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당시의 학교교육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특히 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의 시행이 완전학습프로젝트를 재촉하는 자극이 됐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학습능력은 개인차가 커서 학교수업에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수업체제가 긴급히 요구됐다. 그래서 개발연구의 성격이 강한 완전학습 프로젝트가 주목을 끌게 됐던 것이다.

아동관계연구는 연구소가 창립 당시부터 강조한 인간의 능력개발과 미래의 인간복지 향상을 지향하는 연구에 전념하려는 연구소의 원대한 소망과 관심을 반영한 연구였다.
자문교수라는 엉거주춤한 역할을 맡은 나는 연구소에서 어떤 특수한 프로젝트에도 배정되지 않은 채 한동안 일반적인 자문교수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문교수 역할만 했는데 어느새 내가 시나브로 가족계획 프로젝트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행동과학자인 나는 교육학·심리학 계통의 연구를 하겠다는 꿈을 안고 연구소에 왔었는데 졸지에 이들 전공과는 한참 먼 가족계획 연구를 하게 돼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다. 가족계획이란 말도 처음 들어 본 내가 이 분야에 간여한다는 것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라 생각했다. 어색함, 당혹감,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프로젝트에 슬슬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가족계획행동’을 아이를 가질까 말까를 결정하는 일, 아이를 가진다면 몇 명이나 가질 것인가를 부부간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 또 외부의 눈치와 압력을 의식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 등으로 생각을 좁혀 가다보니 거기에 행동과학이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합리화하면서 나는 내 자신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이 프로젝트에 익숙해져갔다. 그래서 가족계획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이 계통의 일을 하게 됐다.
내가 처음 맞닥뜨린 연구는 ‘가족계획의 심리학적 탐구’라는 프로젝트였다. 이 연구는 1970년 USAID(U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재정 지원을 받아 수행했는데, 우리 연구소가 최초로 진행한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이 계통의 연구는 주로 사회학이나 인구학이 간여하던 것이었는데 행동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로 생각됐던 모양이다.

내가 이 연구에 막 눈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 연구원들은 이미 가족계획 연구와 관련된 질문지를 들고 표집계획에 따라 결정된 전국 각지로 현장조사에 나서고 있었다. 그때까지 생소하게만 들리던 산아제한이나 가족계획, 콘돔이니 IUD(intrauterine device. 자궁내 기구)니 하는 말을 연구원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나는 잘 모른지만 현장 면접에서는 온갖 일이 다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여자 연구원이 현장에서 면접을 할 때 ‘애기도 낳아보지 않은 아가씨가 뭘 아냐?’ 라는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교통편이 좋지 않을 때라 버스를 놓치고 난감할 때도 더러 있었다. 한 연구원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현지면접을 끝내고 나서 그래도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역시 학습이나 교육이란 배우는 그때보다 나중에야 효과가 나타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교육이란 배운 것 다 잊어버린 뒤에 남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다지 않은가.
엄밀한 표집디자인에 따라 전국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이 자료는 많은 것을 노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학술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개인의 가치관, 현대적 태도, 그리고 가족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 등이 실제 가족계획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느냐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의 이론적 모형은 바로 위에서 말한 대로다. 즉 가족계획행동을 포함해서 인간의 행동이란, 개인이 장기간에 걸쳐 배우고 체험해서 간직해온 마음속 깊이 박힌 가치관이 그 사람의 태도를 결정하고, 그 태도가 행동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도식하면 ‘가치관 → 태도 →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행동 → 태도 → 가치관’으로 거꾸로 표현하는 이론도 있다. 어쨌든 이것은 가치지향(values orientation)을 행동의 근원으로 본 하버드대의 문화인류학자인 클럭혼 교수가 1950년 초반 같은 대학의 성격심리학자인 머레이와 함께 집필한 몇 편의 논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가족계획행동도 이 성격심리학과 맥을 같이 하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 연구는 위의 가치지향 모델이 예측한 바와는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가치관이나 현대적 태도 등은 출산행동과 가족계획행동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가족계획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태도가 가족계획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태도-행동의 관계에 대한 이 연구결과는 긴 세월에 걸쳐 영글게 된 개인의 성격 깊숙이 박힌 가치관이나 태도도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과 직접 관계되지 않으면 그 행동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연구결과는 태도→행동의 관계에 대한 당시 사회심리학의 큰 현안에 결정적인 대답을 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이훈구 전 연세대 교수는 우리 연구가 사회심리학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올렸는데 학계에서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 연구는 1972년에 정범모·팔머·이상주·이성진이 저술한 『한국 가족계획의 심리학적 전망』(1972)으로 학술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에 적잖은 재정적 지원을 한 USAID 본부는 이 연구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미시간대의 프리드먼 교수에게 우리의 연구보고서를 평가하게 했던 모양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그의 평가보고서에서 이 연구가 가족계획연구의 금자탑을 이룬 연구라고 극찬했고, 한국이라는 ‘저개발국’(?)에서 현장조사가 끝난 지 1년 만에 527쪽의 방대한 영문 보고서를 탄생시켰다고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가족계획이란 197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의 중요 이슈였으나 지금은 이미 우리에게서 멀어진 일이 됐다. 그런데 내가 이 연구를 여기에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 연구가 연구소 초기 대규모 연구프로젝트의 하나로서 연구소 출범에 힘이 돼 준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개할 남아존중사상 연구나 자녀의 가치 연구 등도 이 첫 연구에서 연유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하와이대 사회학과의 팔머 교수는 우리 프로젝트에 큰 역할을 했다. 그밖에도 이 대학 공공건강학과의 박재빈 박사, 지리학과의 핏츠 박사, 동서문화센터의 최김민자 박사, 그리고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저명한 인류학자 디보스 교수 등도 큰 도움을 줬다. 이처럼 많은 전문가들과 협조하는 가운데 상호 학습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학술연구 특히 학제간 연구에서의 상호협조의 좋은 사례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학술적 공헌과 더불어 한국의 인구 및 환경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실제적 기여를 한 것 말고도 연구수행과정이 남긴 기대 밖의 부차적 공헌도 지적하고 싶다.

첫째, 대형 연구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또는 논리적으로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생산되고 창출된다는 점이다. 가족계획연구를 하면서 자녀는 왜 가지려고 하는가? 자녀의 가치는 무엇이며 부담은 무엇인가? 한국인은 도대체 왜 그다지도 남아를 선호하는가?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더 심층적 천착을 요구하는 다른 차원의 질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연구가 또 다른 연구로 가지 뻗어 나가는 것이다.

둘째, 우리 연구에서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당시 한국에서는 드문 컴퓨터를 이용한 경험을 들고 싶다. 컴퓨터는 자료처리에 대한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당시 국내 몇 군데 기관이 컴퓨터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간단한 평균값이나 비율정도를 계산하는 데 만족하고 있었다. SPSS나 BMD같은 프로그램도 없던 때였다. 당시 KIST 전산부장이던 성기수 박사와 협조해 고급통계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우리 연구원들은 그 당시 한국 학계에서는 생소했던 다변인 분석방법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었다. 우리 연구소에는 1971년에 희귀하게만 보이던 편처라는 80칼럼 천공기, 검공기, 분류기 등이 설치돼 있었다.

단순히 자료 분석에 컴퓨터를 활용했다는 데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시대적으로도 컴퓨터는 점차 상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컴퓨터 활용에 일찍 익숙해진 우리 연구원들은 한국의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연구에는 물론 대학에서의 연구방법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방법이 있으면 미처 생각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던 문제를 만들어내고 해결할 길을 열 수 있다고 우린 믿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