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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보다 ‘내용’을 생각해야
‘성과’보다 ‘내용’을 생각해야
  •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16.03.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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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민경찬 논설위원

대학의 연구 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국내 이공계를 대표하는 5개 대학이 “정부 지원 연구 과제를 평가할 때 계량적 평가에 치중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정부에 연구과제 선정 및 평가시스템의 개혁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미래부는 내년부터 연구 과제 선정·평가 때 SCI(과학인용색인) 논문 수를 점수화하는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정부도 연구의 가치 등 질적, 정성적 평가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바람직한 변화다. 이제는 정부도 단기 성과보다는 모험적인 연구, ‘한 우물’을 파는 연구를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 정부가 BK21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대학에 대한 연구비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의 연구 성과는 양적으로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다. 그런데 질적인 발전은 기대만큼 잘 되지 못했다.

얼마 전 해외 석학 12명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 보고한 내용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젊은 교수들이 모험적 연구에 도전하기보다 정년 보장을 받기 위해 유명 학술지 기고에 목을 매고 있다. 이대로는 추종자에 그칠 것이다’, ‘신선한 연구 주제를 찾기 어렵다’, ‘당장 개혁 안하면 지금 위상도 유지 어렵다’는 쓴 소리와 경고가 나왔다.

사실 이런 문제는 오래 전부터 언론에서도 지적했다. 연구 목적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새로운 과학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교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각종 평가 지표에 맞춰 성과물 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이런 관점에서는 많은 업적을 이뤄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감도 가졌고, '노벨상' 얘기도 나왔으며, 이제 질적 성장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결국 ‘평가’의 관점과 내용을 바꾸는 일이다. 이제 정부나 대학본부는 누가 ‘우수한 연구자’인지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피인용수’를 포함한 지표 중심의 평가를 넘어, 연구 내용의 가치와 질 그리고 그 영향력(impact)을 읽는 단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여기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깊은 토론과정을 가지며 긴 안목으로 그 영향력을 따져보고, 더 좋은 성과가 나오도록 ‘컨설팅’ 해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미래부의 새로운 변화로 대학에 제대로 된 연구 환경을 만들려면, 각종 규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감사원, 기획재정부, 국회, 언론 등의 도움도 필요하다. 사실 관련 부처 담당자들도 복잡한 규정과 절차를 따를 수밖에 없어, 유연성을 가지고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어렵다. 그런데 기존의 시스템과 관행 때문에 정부, 국회 등 주변 환경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최근 5개 대학들이 공동으로 제시한 바람직한 방향의 취지에 교수들도 함께 뜻을 모아야 한다. 단순히 연구비 ‘수혜자’, ‘피 평가자’로 수동적으로 인정받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 ‘학문이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연구’를 제안하며 바람직한 연구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어려움이 예상되는 우리 미래에 대해서도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인 과학기술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하려면, 정부, 대학본부, 교수, 국회, 언론 등이 각자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동반자로 서로 협력해야 한다. ‘관리’보다는 ‘연구’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성과’보다는 ‘성과 내용’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교수·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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