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8:35 (목)
시계추 운동
시계추 운동
  • 최병선 가천대 명예교수·도시및지역개발전공
  • 승인 2016.03.14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칼럼] 최병선 가천대 명예교수·도시및지역개발전공
▲ 최병선 가천대 명예교수

정년을 하고도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일상의 흐름이 상당히 단조롭다. 사회활동이 크게 줄어들고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니 젊은 시절에 못했던 자기성찰의 시간도 갖고 또 홀로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도 찾는다. 필자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림과 관련된 정보는 늘 솔깃해 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일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약 200여 년 전에 성행했던 신고전주의 예술을 방영했다. 과학기술의 급진전과 신앙심의 쇠퇴, 로코코양식의 사치·향락적 요소에 대한 반발, 정치체제의 격변과 사회적 혼란, 그리스 예술품의 찬란함에 대한 재인식 등이 어우러져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확산됐고 바로 이것이 신고전주의 탄생의 동력이 됐다고 한다.

방송을 보며 문득 괘종시계의 시계추 운동이 떠올랐다. 무릇 유행은 시계추처럼 양끝 사이를 계속해서 왕복한다는 얘기가 있다. 여성의 치마는 미니와 미디를 왕복한다. 남성의 신사복은 좁은 옷깃과 넓은 컬러를 오간다. 하지만 유행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런 왕복운동을 하고 있다. 천체운동이 그렇고 모든 생명체의 變轉모습이 또한 그렇다. 보수와 진보는 시차를 두고 자리를 바꾼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주역과 음양사상 역시 그 점에서 다르지 않다. 동서양을 가로질러 상용되는 "죽어야 산다"는 말 역시 어떤 점에서 왕복의 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시계획의 역사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있었다. 현대 도시계획이 잉태되던 19세기 말엽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도시환경의 황폐를 치유하기 위해 중세도시의 광장과 가로모습에서 종종 해답을 찾곤 했다.

그러나 도시계획이 본 궤도에 오른 후 20세기 중반까지는 과학기술에 대한 무한신뢰가 사회의 지배적 의식이었다. 과학기술은 인류가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터였다. 따라서 과거는 혁신·교체의 대상일 뿐이었고 그 결과 초래된 양극화, 과밀혼잡, 환경파괴, 인간소외 등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치부됐다. 그러나 오늘날 진정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도시는 반성과 새로운 출발의 시기였다. 한 동안 외면돼 왔던 전통과 문화는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변했고, 소비보다는 절약이 미덕이 됐다. 성장보다는 균형, 양보다는 질이 우선적 추구대상이 됐고, 개성과 다양성은 지켜야 할 가치로 떠올랐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개인·기업·정부 간의 상생·협력이 새 도시가 가야 할 길이 됐다. 과학기술의 급진전에 매몰돼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이른바 인본주의로의 회귀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을 역사의 시계추 운동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사의 시계추 운동은 과학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과학의 시계추는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제자리반복이다. 그러나 인간사의 시계추는 나선형을 그리며 왕복운동을 한다. 강물은 굽이굽이 왕복운동을 하며 흐르지만 결국 바다를 향해 흐른다. 그처럼 인간사의 시계추는 제자리반복에서 벗어나 궁극의 지평, 이상향을 향해 나선운동을 한다.

요즈음 누구나 할 것 없이 삶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절대적 살림살이는 지난날에 비해 한껏 나아졌지만 상대적 삶의 여유는 크게 줄어든 탓이다. 급변하는 사회환경과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 여기에다 무한경쟁이 판치는 시대라 그런가 보다.

하지만 시계추는 계속 움직여서 결국 어둠은 가고 밝음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는 아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최대한 신속하게 이끌어 낼 지혜와 동력이 필요하다. 전환의 시대에는 언제나 고통 속에서도 열정 하나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선각자들이 있었다. 지금은 바로 그런 인재가 필요한 시대이다.

최병선 가천대 명예교수·도시및지역개발전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