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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눈치 보지마” 그 시절 ‘브레인스토밍’이 가능했던 연구소는 얼마나 있었을까?
“선배 눈치 보지마” 그 시절 ‘브레인스토밍’이 가능했던 연구소는 얼마나 있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03.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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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연재를 시작하면서
▲ 이성진 교수는1934년 경남 마산 생. 서울대 교육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피바디대에서 심리학(M.A.)을 공부하고, 캔사스주립대에서 교육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캔사스 주립 뇌병원 임상심리전문가로 근무(1965~1970)하면서 공인임상심리학자(Certified Psychologist) 자격을 회득했다. 1988년에는 상담심리전문가 자격도 획득했다. 1970년 한국으로 돌아와 199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교육심리연구회 회장, 한국카운슬러협회 회장, 한국응용행동분석학회 회장, 대통령특별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아태지역 7개국 자녀관 국제비교연구 총책임자(1973~1975), 세계인구의 해 NGO포럼 ‘아동의 가치’ 세션 의장(루마니아 부쿠레슈티, 1974)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학교에서의 행동수정』, 『행동수정의 원리』, 『교육심리학서설』, 『Value of Children』(Korea), 『한국인의 성장·발달』(2006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수상), 『한국인의 삶』 등이 있다.

한 사람의 번뜩이는 유레카적 착상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각하는 과정에서
더 멋지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만들었고, 이 세션에 모여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웃으면서 온갖
‘엉뚱한’ 아이디어를 탄생시키곤 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길 21. 그곳에 한국 사회와 아카데미에 큰 영향을 미쳐온 한국행동과학연구소(소장 이종승 충남대 명예교수)가 자리하고 있다. 1968년 창립된 연구소는 올해 창립 48주년을 맞게 된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기초적·응용적 연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밝히고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로 개발하며, 인간이 핵심이 되는 집단의 능률향상을 도모해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연구기관’을 표방한 연구소는 심리검사와 사회 및 조직, 학습, 아동발달,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각종 연구물의 출판, 교육, 자문활동 등을 하고 있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는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 연구소에서 오롯이 40년을 연구소와 함께 한 이가 바로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82세)다. 1970년 귀국 후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이 명예교수는 1974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연구소장’ 중책을 짊어졌다. <교수신문>은 「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를 1년간 격주로 연재한다. 한 원로 교육학자의 40년 삶에 비친 ‘한국행동과학연구소’의 어제와 오늘을 復期하는 것은, 한국 사회와 교육, 아카데미의 어제 오늘을 성찰하기 위함이다.

1969년 여름, 미국 캔사스의 토피카에 머물던 나에게 서울에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지금은 작고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젊은 김호권 선생이 보낸 편지였다. 그 편지에는 ‘서울 어서 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무렵 정범모 교수로부터도 서울대에 자리가 날듯하니 귀국하라는 권고가 있어서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중에 김 선생이 던진 연구소에 할 일이 많다는 말에는 약간 긴박감마저 묻어나는 듯했다.
사실 김 선생이 1968년에 시카고대에서 학위를 끝낼 무렵, 나는 그와 한 시간이 넘게 장거리 전화로 “한국 가면 연구소 하자”는 꿈같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은 아마도 대학시절 서울사대 교육심리연구소에서 학과의 여러 학생들이 정범모 교수를 도와 지능검사 등을 만들 때부터 마음 속에 은연중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듬해인 1970년 초에 나는 서울에 돌아왔다.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는 구 중앙교육연구소 1층에 터를 마련한 한국행동과학연구소를 찾아 간 것은 4월 6일이었다. 당시 소장을 맡고 있던 정범모 교수는 연구원 수가 늘어나서 곧 종로에 있는 걸스카우트빌딩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자문교수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이에 동의하고 얼떨결에 행동과학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됐다. 새로운 긴 인연은 이렇게 찾아왔다.

얼떨결에 연구소와 인연을 맺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는 한국사회에 국가발전의 욕구가 높아져서 경제개발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1968년에 설립됐다. 국가발전에 인간요인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고조되고 있을 때 정범모 교수는 인간의 과학적 연구가 절실하다고 믿고 1950년대에 빠르게 전파돼 나가던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s)의 방법론을 동원해 인간능력을 개발하고 사회 여러 기관의 역량을 향상해 국가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소 설립의 전초작업에 해당하는 ‘인력개발계획’을 수행하면서 정 선생은 인간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정착된 상설 연구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연구소 설립에 착수했다. 연구소를 세워야겠다는 그의 생각 밑바탕에는 여러 소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행동과학연구소의 핵심 활동은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전제하고, 행동과학연구소의 관심을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했다. 첫째, 인간 연구는 인간이 관계되는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실용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 인간 행동의 법칙과 원리는 과학적으로 밝혀내야 하며, 셋째 인간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그의 행복을 증진하는 인간중심주의에 근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정범모 교수의 연구소에 대한 관심 저변에는 인간중심주의가 그 핵심 테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먹구구식 억측이나 선입견이 아닌 객관적·과학적 논리와 방법론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연구소가 설립된 지 2년 뒤인 1970년에 연구소에 첫 발을 딛은 뒤 1974년에 소장에 임명돼 근 40년 동안 연구소의 영고성쇠를 보고 체험했다. 어느 조직이나 ‘분위기’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가 많은 창의적인 연구를 생산할 수 있었던 데는 연구소의 독특한 연구 분위기도 한몫 한다.

연구소의 독특한 DNA
오랜 세월 동안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던 나는 우리 연구소가 지닌 특이한 연구 분위기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연구소가 다른 유사 연구소의 분위기와는 어딘가 좀 다르다는 것이다. 특이한 분위기는 연구소 발족 초기부터 연구소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구할 때 집단사고와 팀어프로치를 통해 이인삼각으로 협조하고 상호 학습하는 태스크포스를 형성해 연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소가 평소에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대충 이렇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번뜩이는 ‘유레카’적 착상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각해 내는 과정에서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는 상당히 다른, 흔히들 말하는 더 멋지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만들었고, 이 세션에서 모두 모여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웃으면서 소리 내어 생각하면서(think aloud) 온갖 ‘엉뚱한’ 아이디어들을 탄생시키곤 했다.

아이디어를 量産하라, 아이디어를 미리 비판하지 말라, 그렇게 해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의미 있게 연결하라는 것 등 브레인스토밍의 일반적 규칙을 따랐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이 일반적 규칙에다 ‘브레인스토밍 때 선후배 간에 서로 눈치 안보기’를 권장한다는 규칙을 하나 더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런 창의적 집단사고의 전략은 전공 간의 벽을 허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학제간 연구를 지향하는 우리 연구소는 여러 전공자가 함께 일하는 체제여서 팀 구성원이 토론할 때 전공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이 어렵고 어색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진행하는 브레인스토밍 방책에 익숙해지면 인접 학문 간의 벽을 허물고 상대방의 의견을 쉽게 수용할 수 있어 일을 더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집단사고와 팀어프로치는 자연스럽게 태스크포스라는 작업체제로 귀결된다. 연구과제가 결정되면 그것을 수행할 멤버들이 하나의 태스크포스로 헤쳐 모인다. 여기서의 팀워크는 연구의 진행을 촉진하고 구성원 간의 협조를 원활하게 해준다. 이런 체제 속에서의 연구경험은 학제간 연구 역량을 향상시켜 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행동과학연구소의 이런 분위기가 우리 모두에게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연구소의 특이한 풍토가 만들어졌고, 그런 풍토 속에서 집단으로서의 특수한 성격 즉 신탤리티(syntality)가 형성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개인의 인성구조처럼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신탤리티는 이렇게 연구소라는 조직 내에서 체질화돼 궁극적으로 유능한 인재풀을 만들어냄으로써 연구소의 목표 실현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우리 연구소를 거쳐 나간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소를 떠난 뒤에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특출한 공헌을 하는 것을 자주 봤는데, 그것은 연구소 재직 시에 형성된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신탤리티가 뒷받침해주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집단무의식처럼 우리의 행동을 연면히 컨트롤하는 연구소의 DNA가 된 것이다.

연구원의 헌신적 노력으로 우리 연구소는 차질 없이 연구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소장인 나는 재정 확보라는 현실문제에 한시도 안도할 수 없었다. 초기에는 정부 후원, 외국원조, 기업체를 대상으로 한 교육훈련과 심리검사의 보급 등으로 재정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덩치가 큰 인구관계연구와 완전학습 프로젝트 등이 큰 힘이 됐고, 유아교육관계 프로젝트에 대한 유니세프의 장기간에 걸친 지원 등도 연구소 운영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런 연구비는 연구에 투입되는 직접비로 지출됐기 때문에, 건물임대료나 지원인력 보수 등 경상운영비 확보라는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사실 이러한 재정문제는 연구소 출범 당시부터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이슈였다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국고보조금의 지속적인 약속도 없었고, 외부기관의 원조금이나, 기업체 재정 후원에 관한 어떤 언질도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연구프로젝트에만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초기의 완전학습연구나 인구관련 연구는 연구비 규모는 컸지만 모두 한시적인 것이란 한계가 있었다. 즉 때가 되면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교육관련 개발연구인 완전학습 프로젝트는 1972년에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족하면서 정부의 관련 예산은 그쪽으로 넘어가고 우리 연구소에 대한 교육 당국의 관심도 점차 엷어져 갔다. 인구연구도 시대 풍조와 추세의 영향을 받아 단명했다.

활로 찾은 한국행동과학연구소
기업체 대상 교육훈련은 그 필요성이 고조되면서 기업체 자체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훈련원을 개설해 자체 운영하게 되자, 우리가 파고 들어갈 여지가 좁아졌다. 학교에 보급하던 심리검사도 1980년 이후로 학교검사에 대한 온당치 않은 비판이 만연하기 시작하면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우리를 지원하던 유니세프 등 외원기관들은 ‘이제 한국이 잘 살게 됐지 않으냐 그러니 더 이상 거들어 줄 필요가 없어졌다’면서 자리를 떴다.

이러한 재정압박은 우리로 하여금 자체적으로 활로를 모색하게끔 내몰았다. 튼튼한 기금이 없는 사설 연구기관은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1990년 무렵에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활로를 모색하기로 작정했다.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출발한 연구소였다. 이제 그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길을 뚫자는 각오였다. 우리는 그 길을 뚫는 데 성공해 연구소를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튼튼한 궤도에 올렸다. 더 자세한 경위는 나중에 상세하게 말할 것이다.
연구소가 본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재정확보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재정이 튼튼해야 유능한 연구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유능한 연구원이 있어야 연구를 할 수 있으며, 연구를 해야 재정확보도 가능한 것이다.
나는 한국행동과학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연구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이 지면에 몇 번에 걸쳐 쓰려고 한다. 좋은 일, 궂은 일, 비공식적인 일들에 관해서도 쓰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행동과학연구소의 野史를 쓰려고 한다. 역사의 행간에서 배어나는 것들, 걸러져서 기록되는 정사가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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