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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보여주는 예언적 메시지는 ‘다원주의적 가치’다
그들이 보여주는 예언적 메시지는 ‘다원주의적 가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3.09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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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곤 제주대 교수, <인간연구>에 프랑스 철학자들의 ‘똘레랑스 정신’ 발표

사상이나 관점이 달라도, 세계관이나 종교가 달라도, 추구하는 진리가 동일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그리고 인류의 행복이라는 공동의 선은 모든 사상,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동일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원주의를 용인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현대철학자들이 똘레랑스의 정신을 통해서 보여주는 예언적인 메시지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문화주의, 다원주의는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요청한다. 아마도 그 밑바탕에는 ‘똘레랑스’가 놓여질 수 있을 것이다. 똘레랑스는 나와는 다른 타자의 ‘다름과 차이’를 관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이명곤 제주대 교수(철학과)가 최근 <인간연구> 제31호(2016/겨울, 가톨릭대 인간학연구소)에 발표한 논문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에 나타나는 똘레랑스 정신」은 경청할 만한 글로 보인다. 이 교수는 가브리엘 마르셀, 레비나스, 그리고 시몬느 베이유의 사상에서 그들 사상의 정신적인 지반처럼 나타나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읽어냈다. 과연 이 교수는 이들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똘레랑스 정신을 어떻게 짚어냈을까. 그의 논문 결론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19세기 이후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들의 철학적 작업에는 똘레랑스의 실천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의 정신 안에는 ‘철학함’의 의미 중 하나가 곧 똘레랑스를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한다.
나는 3명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을 통해서 똘레랑스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가브리엘 마르셀에게서는 ‘상호주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항상 타인들에게서 나와 동일한 무엇을 발견하면서 ‘함께하기’를 요청하는, 그리고 신성한 무엇에 관여하고 있는 인간 실존을 통해서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라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르셀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교차되고 공통되는 상호적­주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중심주의에서 좀 더 벗어날수록 자기존재에 더 잘 진입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은 똘레랑스를 실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레비나스의 사상 안에서는 ‘나 자신의 동일성’의 근원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 그리고 타자의 초월성과 신의 초월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타자 안에서의 신성한 흔적’을 통해서 다름과 차이를 수용하고 관용하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봤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신은 그 자체 절대적인 초월성을 의미하기에 신에 대한 추구는 곧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고, ‘타자’는 ‘나의 동일성’을 형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에, 각자는 서로에 대해서 무제약적인 책임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유는 결국 진리를 산다는 것은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책임을 껴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자체 똘레랑스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시몬느 베이유의 사유 안에서는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한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뿌리내기리’의 그 총체성을 통해 똘레랑스의 정신을 발견하고 이러한 똘레랑스를 스스로의 삶 안에서 최후까지 실천하는 그 삶을 통해서 똘레랑스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인격형성의 원리로서의 ‘뿌리내리기’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것, 도덕적·지성적·영성적인 삶의 거의 총체적인 것을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베이유는 나의 인격형성에 있어서 배척하거나 외면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촉구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현대철학자들의 정신을 통해서 우리는 ‘관용하고’, ‘포용하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말하지 않고서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말할 수 없을 만치, 똘레랑스가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분위기이자 원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시대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주제가 다원주의에 대한 성찰이라고 한다면, 똘레랑스의 정신이야말로 다원주의에 대한 성찰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화적 다원주의’, ‘정치적 다원주의’, ‘종교적 다원주의’ 그리고 ‘다원주의 세계관’ 등 다원주의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금기시할 수 없는 보편적인 언어가 되고 있다. 시몬느 베이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듯이 진리란 추구할 수 있을 뿐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즉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향한 도상에 있을 뿐이며,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면, 다원주의에 대한 사유도 가능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미 증명된 것은 진정한 진리가 아닐 것이다. 진리란 항상 새롭게 추구돼지고 새롭게 표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상이나 관점이 달라도, 세계관이나 종교가 달라도, 그 추구하는 진리는 동일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그리고 인류의 행복이라는 공동의 선은 모든 사상,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동일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원주의를 용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현대철학자들이 똘레랑스의 정신을 통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예언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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