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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
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03.0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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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4월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공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치권의 복잡한 셈법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사회의 모든 이슈가 총선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유달리 많은 지인들이 선량이 되고자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전공이 정치관련 분야다보니 이들로부터 난처한 요청과 질문을 종종 받으면서 자연스레 좋은 정치, 좋은 정치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혐오와 불신, 반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권이 바뀌어도, 분당, 탈당, 복당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당명이 수시로 바뀌어도 정치는 변함이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질릴 법도 하건만 무능과 헌 정치의 판은 어김없이 재현된다. ‘좋은 정치’ ‘새 정치’ ‘다른 정치’를 그렇게 외쳐대도 수십 년 동안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정도로 정치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희망은 저만치 달아나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정치는 국민들에게 곧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최상의 정치란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그간 국민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시민들은 당선을 위한 단순한 표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며, 선거 때 투표나 해 주면 되는 존재일 뿐이다. 시민들이 정치시장의 단순한 소비자로 그리고 정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하면서 그들의 입장은 정치의 영역에서 소외되고 정치의 객체가 돼버렸다.

사람을 바꾸면 정치가 바뀔까? 선거에서 많은 후보자들의 등장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 보면 꼭 반길 일만은 아니다. 정책이나 능력, 도덕성 등의 검증이 쉽지 않고,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정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이들 간의 비교 선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은 정치인을 길러내는 제도와 절차, 과정이 부재한 한국 정치는 그릇된 지도자를 선출할 리스크가 매우 크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에게 정치의 일을 맡겨야 하나. 좋고 나쁜 정치인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나. 고래로 모든 정치의 무난한 판별 기준이 돼 온 것은 公과 私의 구분이다. 나쁜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공익보다 자신들의 사익을 먼저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정치가 행해지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존경받고 공인으로 등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정치란 공공의 善에 봉사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새 정치인이 나오면 정치가 좋아질까? 그런데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생각은 지나친 낙관일지 모른다. 여야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이들을 과대 포장해 새로운 인재라며 수혈했지만, 이들은 당선과 동시에 새 인물에 목마른 국민을 등지고 ‘헌 정치인’이 돼버렸다. 그러니 온통 이기주의로 무장한 이들이 생존기술과 잔꾀로 승자가 되는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 좋은 정치는 기대 난망이다. 오랜 세월 투쟁을 통해 힘겹게 일구어낸 민주주의, 그 절차에 따른 선거에서 ‘그놈이 그놈’이라며 푸념하게 될 정치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뽑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다. 단순히 인물과 정권의 표피적인 교체만으로는 기성 정치권의 구태와 폐단을 뿌리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과제를 바꾸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힘을 실질적으로 제도화하는 새로운 정치의 룰(rule)과 방식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개혁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선거를 치르고 또 다시 나쁜 정치와 나쁜 정치인을 욕하며 마침내는 우리 자신조차도 불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적 현실은 참으로 진단하기 어렵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이 모든 현실은 결국 국민의 몫이며 동시에 국민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정치의 의제로 만드는 것이며, 국민의 소리가 정치로 실현되는 것이다. 정치는 결코 국민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하지 않는가. 좋은 정치와 좋은 정치인은 국민이 만든다는 신념으로 우리의 의식과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정치를 한 치도 바꿀 수 없다. 정치는 결국 국민이며, 국민이 답이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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