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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재 집필방법의 진화
대학교재 집필방법의 진화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2.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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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대학교재는 여전히 ‘두껍고 어렵고 비싼 것’일까? 대형서점 전문서적 코너를 둘러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이다. 한두 학기 동안의 강의 분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책명에 걸맞은 구색 맞추기가 필요하고 심화자료까지 포함하다 보니 두꺼워진다. 여기에다 수요마저 적으니 출판사에서는 손익분기점(BEP)을 맞추기 위해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 등록금도 비싼데 교재마저 고가이니 학생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두껍고 비싸다고 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교수방법에 따라 교재 집필 형식도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강의 보조수단으로 교재를 사용하느냐, 교재를 기반으로 강의를 하느냐다. 전자의 경우 교재는 핵심내용만을 수록해도 되므로 분량을 적게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강의에서, 간단한 문장에다 이미지나 멀티미디어 자료를 링크하는 방식인 파워포인트를 많이 사용하므로, 이를 약간만 보완해서 전자책 형태로 출판하면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강의를 들어야만 내용을 완전히 학습할 수 있는 강의 의존형 혹은 강의 보조형 교재가 되겠다. 이때 유의할 사항은 강의실 안에서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의 ‘공정이용(fair use)’ 조항을 적용받아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내용도 가격을 붙여 판매하는 책으로 출판할 때에는 사용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 즉 교수자가 교재를 기본으로 하고 그 내용에 따라 강의를 할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교재 중에서 章별로 추출, 편집해 새로운 교재를 만드는 방법이다. 커뮤니케이션북스社에서 ‘리딩패킷 서비스’라는 것을 하는데, 자사 소유 단행본 아티클 8천500편, 논문 3천여 편을 전자책으로 보면서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POD(Publish On Demand)로 종이교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다.

또 하나는 강의와는 독립적으로 자체적 완결성을 가진 교재로 집필하는 방법이다. 교재 집필 경험이 없는 교수들은 논문이나 전문학술서와 비슷하게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술방식에서 문장이나 문체, 표나 그림의 사용에서 어렵고 딱딱하게 된다. 대학교재는 학습매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강의 경력 4~5년차 정도 돼 자료도 쌓이고 마음에 쏙 드는 교재 찾기도 어렵게 되면 직접 교재를 써볼까 하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한 학기 15강 체제가 많으니 실제 강의 시에 편리하도록 章(또는 部)의 수를 12~15개 정도로 나누고 각 장의 분량도 균형을 맞춘다(앞서 소개한 리딩패킷에서처럼 장별로 쪼개서 팔 수 있도록 완결성 있게). 유사분야에서 정평이 나 있는 교재들을 섭렵해 보는 것 또한 필수. 여기서 한 가지 단계를 추가해 보자. 학습이론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추는 것이다. 행동주의→인지주의→구성주의로 발전해온 과정과 커뮤니케이션 이론, 시스템 이론 등을 살펴보고 자신의 과목에 적합한 모델을 찾아보는 것이다. 근자에 유행하는 학습자 중심의 방법론은 구성주의에 기반한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을 들어봤을 것이다. 센게이지러닝社에서 기획출판해 경제학원론 교재로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초판 국내 번역은 1999년). 이 책은 구성주의적 인식론을 잘 적용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학생들이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배운 내용들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사례연구, 뉴스 속의 경제학, 이해를 돕기 위해 중요개념의 정의, 간단한 퀴즈, 요약, 중요개념의 목록, 복습문제, 응용문제와 같은 ‘학습도구’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거의 완전한 형태의 학습자 중심(자학자습용) 교재로 만들어졌다. 초판을 집필하는 데 5년이 걸렸다 하니 핵심 내용은 맨큐 자신이 썼겠지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전공자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편집자, 교육공학자, 북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등 많은 전문가들의 아이디어와 손품이 동원됐을 것이다. 이 교재와 더불어 학습자 중심 내용 설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 오픈유니버시티 교재 모델을 원용한 대학교재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준구 서울대 교수의 『경제학원론』도 매우 설계가 잘된 교재인데, 올 3월 2일부터 K-MOOC에서 이 교수의 『경제학 들어가기』라는 강의가 개설되는데, 이 교재가 꽤 팔려 인세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
  
대학 강사나 교수 임용과정에서 강의나 교재 집필 능력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또한 훈련과정도 없는 현 시스템 하에서, 강단에 서게 되면 누구나 막막하고 불안해질 것이다. 열심히 곁눈질(벤치마킹)하면서 독학할 수밖에 없다. 이때 혼자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학습이론 전문가(교육공학자)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편집자나 PD)의 도움을 받게 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빠른 시간 내에 알찬 저서 한 권을 갖게 되고, 베스트티처賞을 수상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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