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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진단 : 해외학자 초청 강연, 이대로 좋은가
학계 진단 : 해외학자 초청 강연, 이대로 좋은가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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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0:19:58


귄터 그라스, 다니엘 데넷, 돈 페이지, 찰스 테일러. 최근 한국을 방문한 학자들이다. 손꼽히는 석학들의 방한은 무수한 화제를 뿌렸고 또 명성에 걸맞게 석학이 참석한 행사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학자들의 방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소란스러움과 달리 실속은 없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유수한 세계적인 석학을 초청하는 일이 과연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는가.

2천불에서 5만불까지, 춤추는 ‘유명세’
우선 해외학자들을 초청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해외학자를 초청하는 방식은 여러가지다. 하나의 행사를 위해 독자적으로 초청해 강연을 준비하는 곳도 있지만, 이미 다른 기관에서 초청한 학자들의 일정을 섭외해 다른 행사에 초청하는 방식도 있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지급되는 강연료도 천차만별이다. 적게는 2천불(2백6십만원)에서 많게는 2만불(2천6백만원), 심지어는 5만불(6천5백만원) 가량의 강연료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초청 루트에 따라 또 학자들의 유명세에 따라 다양한 금액이 책정되고 있다.
1995년에 에드워드 사이드를, 1996년에 하버마스를 초청한 서울대 서남초청강좌의 경우 항공료와 체류비 등의 제반 경비를 포함해 각각 2천5백만원(약2만불)을 지급했다. 서울대 연구지원과 조성곤 씨는 “체류기간에 따라 약간의 금액이 차이 날 수 있지만 예산이 정해진 탓에 초청한 학자 대부분에게 비슷한 강연료를 지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학술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세계석학강좌에 참여하는 학자들에게도 강연료만 2만불 정도가 지급된다. 최근에는 여기서 다니엘 데넷이 강연을 했다. 석학강좌 담당자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급하고 있지만, 미발표 논문 6편을 발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금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매일경제신문사 주최 매경 지식 포럼에 참여했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1만5천불,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5만불, 경영학 분야의 노학자 피터 드러커는 3만불(3천9백만원)의 강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경제신문의 김민우 기자는 “한국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일본, 중국 등에도 강연을 하고 돌아가기 때문에 한국만 방문할 경우 강연료를 엄청나게 요구할 것이며, 또 강연료 문제 때문에 초청이 결렬되는 경우도 많다”라고 귀뜸했다.
이렇게 내한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친분을 통한 경우가 많다. 순수하게 행사의 의도를 받아들여 참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국내 교수들의 친분을 바탕으로 초청하는 경우가 대부분. 따라서 초청되는 학자들도 미국과 유럽 지역출신 학자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해외학자들을 초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사관계자들은 “학자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참여도 눈에 띠게 늘어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김경희 과학문화재단 홍보부 과장은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에는 초등학생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청중이 참여했다”라면서 “유명학자가 참석하면 언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동시에 일반인들까지 많은 관심을 보인다”라고 전했다. 학자들의 네임밸류가 톡톡히 한몫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학자들의 초청에 반드시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귄터 그라스 방한을 성사시켰던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어독문학)는 개인적으로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귄터 그라스를 직접 만나 행사의 의도를 설명했고, 귄터 그라스가 기꺼이 이에 응했다고 전했다. 귄터 그라스의 방한에 드는 돈은 체류비 외에는 없었다. 독일 학술진흥처에서 귄터 그라스의 항공료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귄터 그라스 역시 강연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귄터 그라스를 초청했을 때 몇억이나 강의료로 지급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라고 전한다. 독일의 젠더 학자들을 초청해 학술대회를 진행한 탁선미 한양대 교수(독어독문학) 역시 “독일 학술진흥처에서 독일학자들의 항공료를, 학술진흥재단에서 체류비를, 강연을 개최한 학교에서 강연료 20만원 정도를 지급했다”라고 밝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김현묵 과학팀장은 “유네스코의 경우 유엔의 규정상 학술회의에 참석하는 학자들에게 항공료와 체제비만을 지급한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항공료와 체류비만을 준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강연료를 이유로 거절하는 학자는 없다는 것.
김누리 교수는 “학자들의 학문교류에 강연료를 지급하는 것은 관행적으로 지식과 명성 등을 시장의 규칙대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한다. 순수한 학술교류를 목적으로 한다면 강연료를 요구하는 학자들이나 또 지급하는 주최 측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탁 교수 역시 “해외학자 초청 강연 이후에 학술대회 내용이 책으로 출간된다거나 의미 있는 담론으로 형성되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라면서 “해외학자 초청이 행사를 위한 과시용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외석학 그늘에 가린 국내 학계 목소리
이런 사실을 학계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김영태 아주대 교수(물리학과)는 “사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청이 실속은 없다”라고 말한다. 학계에 영향력은 있지만 은퇴가 가까운 노교수들이 대부분이기에 최신의 학술 교류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관심,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무시할 수 없는 장치”라며 고충을 표하기도 했다.
결론은 간단하다. 해외학자를 초청해서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고 또 그만큼 학계의 성장이 있다면 비싼 수업료가 아깝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다시 되묻고 싶은 것이다. 거액의 강연료 지급이 반성 없이 진행되는 관행은 아닌지, 정말로 학문의 대중화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말이다. 혹은 정작 중요한 학술회의의 내용이 해외학자의 그늘에 가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거액의 강연료가 낭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야 할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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