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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주의 앞에 대학 중심 잃지 말아야”
“물신주의 앞에 대학 중심 잃지 말아야”
  • 교수신문
  • 승인 2016.02.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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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원 경희대 총장이 말하는 ‘포획된 대학’이란?

 

이 글은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설립한 조인원 경희대 총장(사진)이 교수들과 머리를 맞대 대학위기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본 『내 안의 미래』(한길사, 2016.2)의 대화록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문재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포획된 대학’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이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포획된 상태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경제적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학생들이 경제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겠지만, 자신감이 너무 없다. 글쓰기를 가르치는데, 강의목표 중 하나가 학생들의 자신감 회복이다.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사회에 나간다면 ‘자기 자신을 발명하는 인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학의 주체들이 포획돼 있다. 교수사회는 어떠하며 대학 운영진은 또 어떠한지 등 ‘포획된 대학’의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더욱 깊이 성찰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 사실 고민이 많다. 대학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어떻게 하나? 대학은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또 지금 사회에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 앞에 대학은 정직하고 면밀해야 한다. 그런데 답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런 부담을 느낀다. 상징적인 예가 후마니타스칼리지다. 많은 분의 고민을 모아 설립했지만, 최근까지도 부정적인 견해가 나온다.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왜 만든 건가? 성적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공부 열심히 시키고, 교수진은 논문 많이 쓰고, 좋은 프로젝트 수행하면 될 텐데. 이런 비판이 심심찮게 제기됐다. 또 이런 말도 들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진은 왜 이리 많지? 교양대학 학생은 사실 소속으로만 따지면 한 명도 없는데, 교수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서 불신을 많이 해소했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우리 대학만의 독자적인 프로젝트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대학들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경쟁심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해석하는 방법은 하나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석을 달리하면 대상에 관한 수많은 긍정과 부정의 판단이 교차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시각과 함께, 우리의 판단 기준은 ‘진정성’이었다. 대학은 기초교양 학문과 전공학문이 잘 결합한 교육 그리고 연구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지식의 폭과 깊이를 균형있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후마니타스칼리지의 출범취지였다. 탁월한 전문지식과 함께 인간의 미래를 고민하고자 했다.
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할지 아니면 시대의 현실적 요구에 편승해야 할지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학인이자 지식인으로서 이 시대에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우리 사회는 근래 들어 이 물음을 진지하게 물은 적이 없다. 사회가 대학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왜 묻지 않는 것일까?

이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대학은 물론 학생들의 취업준비를 위해서도 존재해야 한다. 과거엔 초급대학, 전문대학이 주로 이 기능을 담당했다. 또 정부나 기업이 원하는 시장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일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 역시 예전엔 이른바 산업대학, 직업대학이 주로 담당했다. 또 정부나 기업연수원도 이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모든 기능과 역할이 종합대학에 몰리고 있다. 획일화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바람직할 수 있다. 이 길이 사회의 공유된 가치라면 대학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있다. 시장과 경제 논리가 대학의 ‘모든 것’이 돼 버리면, 대학의 미래는 위협받는다. 대학 본연의 가치인 Veritas(학문적 진리)와 Praxis(공적 실천)가 크게 위축되고 만다. 대학은 물론 ‘고립된 상아탑’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사회와 소통하고 세계와 활발히 교류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부분이 있다. 대학의 심원한 학술가치와 자유로운 학습가치다. 이를 지켜내면서 인간과 사회, 문명의 진보를 이뤄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 스스로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 지원하고 격려하는 문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다운 미래대학’의 길을 열어가는 것은 상당부분 정치의 몫으로 보인다. 대학은 그 어느 기관의 도구가 아니다. 진정한 학문과 학습의 장을 지켜내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와 문명의 탁월성에 이바지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획된 대학’이란 논제엔 현세의 물신주의 경향과 이에 따른 성공의 법칙, 그리고 제약 조건 속에서도 대학의 중심을 잃지 말자는 뜻을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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