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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 회장 선거 앞둔 대한지리학회 내부 풍경
화제 : 회장 선거 앞둔 대한지리학회 내부 풍경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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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현직 교수끼리 물밑대결 치열

온 나라가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로 떠들썩한 가운데, 학계의 학회장 선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언론학회에서 여성 언론학자들이 치열한 대결을 펼쳤는가 하면, 한국사회학회도 한상진 서울대 교수와 김두식 대구대 교수의 12월 일전을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한지리학회(회장 이기석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에서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료교수가 나란히 회장후보로 출마해 화제를 낳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의 김인 교수(사진 왼쪽)와 같은 과 박삼옥 교수(사진 오른쪽)는 지난달 15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결과를 받아들여 나란히 입후보 주목받고 있다.
김 교수는 “정년 퇴임을 3년 앞둔 지금 학계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추천을 수락했다”고 소견을 밝혔다. 박 교수는 “학회장의 역할은 명예직이 아니라 심부름꾼”이며 “세부 전공학회와의 윈-윈 협력추진, 지역별 균등한 학회활동 여건조성 등을 이루겠다”며 ‘젊은 피’를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학과 동료 교수의 출마를 보는 학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서울대 현직교수끼리 경쟁을 하면서, 지방대 교수들을 자기 밑으로 줄세우기를 한다”는 지적이나, “특정대학에서 한번 회장을 선점 해버리면 다른 대학에서는 나올 수 없는 시스템이 돼버렸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

사실, 이번에 회장이 선출되면 대한지리학회는 3번 연속 서울대에서 회장직을 맡는 셈이다. 출신학교로 따져본다면 6번 연속 서울대 ‘집권’이 된다. 이런 현상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원로회의가 각 대학 의견을 구해 물망에 올린 회원을 학회에서 승인하는 간선제에서 지금의 직선제로 회장선거방법을 바꾸면서 심화되고 있다. 비서울대 교수들이 학회참여나 활동지원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은 받는다는 ‘피해감’도 함께 커졌다. 사정이 이렇다니 지방대 재직회원들의 선거법 개정 요구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이재하 경북대 교수(지리학)는 “전처럼 간선제로 돌아가 지역 안배를 통해 학회간 화합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적인 학회 운용을 위해 과단의 조처로 채택된 직선제를 간선제로 되돌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지리학)는 “차라리 추천위원회를 없애고, 원하는 회원이 모두 입후보해서 예선, 결선을 치르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하다”고 말한다. 서울대 출신 교수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지리학계다보니 추천위원회가 자연히 서울대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다.

이정록 전남대 교수(지리학)는 “내부적으로 회장 선출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 지방대 교수들은 문제를 제기하기가 참 난감하다. 직선제를 건드려야 하는데, 말을 꺼내면 여러 사람이 민주주의 원칙 운운하며 들고 일어서기 때문에 힘들다”면서, “이번 선거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선거권에 제한을 가해 직선제를 현실과 절충시켜 운영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회장 중심의 학회 운영에 있다는 것이 학회원들의 중론이다. 회장이 되면 측근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결성해 운영단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특정대학을 밀어주는 현재의 인사 및 의사결정 구조가 더욱 큰 장벽이라는 것이다. 최병두 교수는 “학회가 운영단의 자의적 기준이 아니라, 회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회장선거를 둘러싼 과열이 가라앉고,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선거를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 지리학회는 회원들의 표심이 크게 양분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 대학에서 20년 이상 동료로 지내온 사람끼리 서로 양보와 화합을 못이뤄내면, 그런 리더십으로 어떻게 전국 회원들을 통합하는 일을 해내겠느냐”는 한 교수의 탄식은 학계 발전과 관련해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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