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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과학학과와 연계 … ‘한국문명의 힘’ 짚어낸다
국내 유일 과학학과와 연계 … ‘한국문명의 힘’ 짚어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2.16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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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간행한 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소장 신동원, 이하 연구소)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연구소가 국내 유일의 ‘과학학과’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적 복합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연구책임을 맡은 신동원 소장이 사실은 KAIST에서 씨앗을 뿌려 키우다가 이 자양분과 성과를 들고 전북대에서 새로운 한국 과학문명 지도를 그리는 일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조건 속에서 최근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가 일부 모습을 드러내 화제가 되고 있다. 문명에 관한 학계 안팎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가 윤곽을 드러낸 것은 여러 모소 시사적이다. 식민지, 전쟁, 분단 등 상처로 얼룩진 ‘한국’이 실상은 우수한 과학 문명의 DNA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웅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내적으로는 우리 내부의 과학 문명의 얼개와 그 촘촘한 짜임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도 제공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에서 이 총서의 영문판을 내겠다고 결정했다. 과연 어떤 내용인지 신동원 소장을 이메일로 만났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신동원 소장은?서울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과학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니담 동아시아과학사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으며,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부교수를 거쳐 현재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과학사학회 회장이기도 하다.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공저), 『조선사람의 생로병사』, 『조선사람 허준』,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몸과 의학의 한국사』, 『호환 마마 천연두-병의 일상개념사』, 『조선의약생활사』 등 십여 권의 책을 썼다. 사진제공=신동원 소장

△ 2010년 말부터 3년 동안의 연구와 2년의 에디팅 작업 끝에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한국 전통 지리학사』, 『한국 전근대 교통사』(이상 들녘) 등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1차분 세 권을 최근 선보였다.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성격과 규모)가 무엇인지, 또 이를 기획한 배경, 향후 계획을 간단히 듣고 싶다. 또 총서 기획편집위원회의 설명으로는 “국수적인 민족주의나 근대 지상주의를 동시에 경계하며,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내부와 외부가 부단히 교류하는 가운데 형성되고 발전돼온 열린 과학문명사를 기술하고자 한다”고 했다. ‘열린 과학문명사’를 지향하고 있지만, 역시 우리 내부의 전통 문명과 그 의식에서 길어올리는 것인데, 어떻게 조율할지 궁금하다.
“이번 총서는 한국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과학 문명의 전반적인 내용을 밝혀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시기적으로는 20세기 이전의 전통 과학 문명과 20세기 이후의 현대 과학문명 전체를 아우른다. 총 국문판 30권, 영문판 10권으로 구성된다. 전통 과학 문명에서는 하늘의 과학인 천문학, 땅의 과학인 지리학, 인간의 과학인 의학, 수학, 농학, 박물학, 교통 등을 아우르며, 의식주, 금속·기계·도자·선박·인쇄술·화약과 화포 등과 관련된 제반 기술을 포괄하며, 세종시대의 과학, 조선 후기 서양과학과의 만남 등 중요한 시대에 대한 연구도 포함한다. 현대 과학 문명 영역에서는 서양과학과의 만남과 수용, 한국의 산업혁명을 이끈 과학기술, 국가적 차원의 연구 체제의 확립, 과학정책사, 첨단산업의 등장과 전개 등의 시대적 고찰과 함께 한국 현대 과학기술혁명의 메커니즘을 구조적으로 밝히는 연구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거시적인 차원에서 과학과 종교, 과학과 여성 등 여러 분야가 관련된 영역을 다루며, 사상·사회적 배경도 탐구한다.


이 기획은 영국 캠브리지 니덤 동아시아과학사연구소장인 고 조셉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짝하는 한국의 과학문명사 총서다. 그와 공동연구자들이 풍부하면서도 깊은 중국의 과학 문명을 드러내 세상에 알렸다면, 이 기획은 역시 예사롭지 않은 한국의 과학 문명을 밝혀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한국인조차도 한국의 과학 문명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며 그것은 ‘알맹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충실한 연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은 현재 계획된 국문판 30권과 영문판 10권을 차질 없이 출간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런 작업을 완수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더 나은 연구 결과물을 계속 생산해내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이런 취지에서 현재 한국 과학문명 전반을 아우르는 아카이브의 구축과 그를 기반으로 하는 연구, 활용을 결합한 ‘한국 과학기술유산원’을 전북대 내에 설치하는 일을 진행 중이다.


질문했던 것처럼 민족주의적 신화의 극복이 중요하다. 한국 과학문명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일부분만 부각시키는 데서 ‘민족주의적 신화’가 생겨난다. 예컨대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서 위대하다’는 설명 방식을 넘는 방법은 자초지종을 정확히 밝히고 말하는 것이다. 금속활자의 탄생과 활용에 대해 ‘여차저차’한 국내외 지성사적 배경과 기술적 내용, 활용 등에 대해 넓고 깊게 밝혀 말하면 된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절박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학계의 연구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신화화’ 한 내용이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오늘날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세계 학술사적인 잣대로 금속활자를 연구하여 세계 최초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는 방식을 택해야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한국과학문명 가운데 어떤 유물이나 유산은 기존의 신화적 해석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꾸로 어떤 경우에는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동의보감??의 세계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서 ‘근대주의적 잣대의 극복’이 새삼 중요하다.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놀라운 성취임에도 지나치게 근대주의적 과학관을 잣대로 한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관과 과학 학문 분야를 기준으로 거기에 부합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예 서술조차 하지 않았다. 천문학을 예로 들면 수학적 천문학은 부각되지만, 동아시아 사회에서 매우 중요했던 점성술에 대한 관심은 애써 무시된다. 그러다보니 원래 중국 역사에 존재하고 기능했던 각종 과학, 기술의 역사적 맥락이 무시되는 몰역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함정을 피해야 한다.
한국과학문명 전반을 놓고 말한다면, 분야마다 높낮이의 차이는 있지만 아주 오랜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과학문명은 천문학·풍수·지리학·의학·농학·수학 등의 전문 학문 분야와 의·식·주 관련 기술, 도자·선박·인쇄·화약과 화포 기술, 각종 수공업 기술 등이 높고도 넓은 수준으로 이어져 왔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팩트’로서 한국 문명의 힘이다.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바로 이점을 총체적으로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 사실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2010년 KAIST에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로 설립된 것인데, 2015년 전북대로 ‘전임연구인력 전원’이 전북대로 옮겨 지난해 12월 14일 새롭게 출범했다. 소장님도 소속이 KAIST에서 전북대로 바뀌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소속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연구인력 전원이 전북대로 옮긴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실 KAIST에서 대학 차원의 훌륭한 지원이 없었다면 한국과학문명사 총서 작업이 제대로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연구 사업을 통째로 전북대로 옮기게 되면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KAIST에서 전북대로 옮기는 결단을 내린 것은 연구사업의 ‘제도화’ 비젼이 학교 사정 때문에 두 학교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후면 은퇴하는 데, 연구소 전임교원 인력들이 충분히 있어야 천재일우의 이런 연구사업이 지속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연구 사업이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의 사업비 지원은 차치하더라도 전임 교수급의 인력, 자료실 등 더 넓은 연구 공간의 확보 등이 필요한데, 이공 교육 위주의 KAIST에서는 이 둘 모두 여의치 않았다. 나는 최근 연구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는 전북대에서 이런 비전을 보았다.


게다가 전북대에는 20년 전통의 국내 유일의 과학학 교육기관인 과학학과가 있어서 연구와 결합이라는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전북대에서 연구소를 잘 발전시켜 월드클라스 급의 특색 있는 연구소로 도약한다면, 모든 학문 분야에 대해 서열화를 특징으로 하는 고질적인 한국 대학의 현실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방대에서도 케임브리지대 출판사 같은 데서 시리즈물을 내는 연구소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면 한국 대학 교육의 장래가 밝아질 것이다.”

△ ‘전문연구인력’은 ‘총서’와 관련한 작업만 하는 것인가. 강의나 이런 부담은 없는가. 사실 과학문명을 탐사할 수 있는 국내 연구 인력 풀이 풍부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 전북대 차원이 아니라 좀 더 큰 차원에서 관련 연구자(연구 환경 포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나? 
“내가 홀로 인터뷰를 맡아 하고 있지만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사업은 여러 교육, 연구기관에 속한 수많은 훌륭한 공동연구자와 전용훈 전근대 연구 팀장(한국학중앙연구원), 김근배 근현대 연구 팀장(전북대), 연구소 내 전임연구원 등의 헌신적인 팀플레이 덕분에 굴러가는 것이다. 나도 그들 중 한명일 뿐이다. 국내 연구 풀이 풍부하지 않지만 그래도 총서를 엮을 정도 최소한의 연구인력 풀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이 사업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어렵게 공부해 자신의 공부 역량을 축적해온 40~50대를 주축으로 하는 우리 세대가 함께 이 일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일은 그들의 작업을 엮어 집약하도록 50억이라는 돈을 과감하게 지원해준 교과부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의 결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다른 대학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일부 강의를 면제 받은 소장을 제외한 전임 연구 인력은 강의나 논문 발표 등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 시간을 내서 총서 집필을 하고 있다. 전북대를 비롯한 국내의 거의 모든 대학이 SCI 논문, 학술등재지 논문만을 중요한 연구 성과로 인정하고, 아무리 굵직한 단행본이라도 연구 성과로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서 오로지 자신의 학문적 명예만을 생각하고 공들여 집필하는 상황이다. 이점은 정말 개선이 필요하다. 영문판의 경우에는 외국에 가서 연구하는 일이 꼭 필요한데 이에 대한 별도의 제도적, 재정적 지원도 관련기관에 꼭 요청하고자 한다.”

△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와 영문판 출간 계약도 체결했다. 당초 7권을 계획했으나 모두 10권을 출판하기로 케임브리지대 측에서 제안한 것으로 들었다. 영문판 총서를 유서 깊은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출간한다는 건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일로 보인다.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어려움도 있었을 걸로 보인다. 또 이 총서를 영문판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언어판으로 출간할 계획도 있는지 알고 싶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진흥사업단에서 애초 연구 시작 때에는 영문판 7권의 집필을 요구했다. 꼭 시리즈로 낼 필요도 없었으며, 총서 취지에 어긋나지 않고 외국 A 급 학술출판사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영국 캠브리지 니덤 연구소장인 크리스토퍼 컬른 소장(현재 니덤에 이어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잔여권의 편집자)과 접촉하고 그 분을 통해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 관계자와 접촉하면서 10권으로 권수가 확장됐다. 다만 먼저 5권을 내고, 책에 대한 반응을 본 후 나머지 5권을 내기로 계약했다. 그중 첫 권을 세계의 모든 대학에서 교재로 쓸 수 있는 한국과학문명사 통사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론 계약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라 정식으로 제안서를 제출한 후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에서 위촉한 외부 심사위원회의 심사와 최종 이사회의 통과를 거쳐 확정됐다. 지난 해 여름 캠브리지 니덤 연구소에서 중간 과정을 점검하는 국제 워크숍을 가졌는데, 외국인 학자들이 모두 체제와 내용, 번역의 질 양 측면에서 출판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합격점을 줬다.


뉴튼의 프린키피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를 낸 케임브리지대 출판사에서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가 나온다면, 그것의 학술적·문화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본다. 크리스토퍼 컬른 소장의 표현에 따른다면,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에 대해 세계인들은 놀라운 과학문명국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트일을 낳게 한 문화 저력, 삼성이나 현대의 제품이 우연히 재수 좋게 나온 결과물이 아님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다. 국문판 총서는 케임임브리지 영문판과 별도의 작업으로 영어, 중국어, 일어 등으로 번역해 세계에 알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중국판의 경우, 전 중국자연과학사연구소의 랴오위친 소장이 자신이 나서서 출판을 알아봐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아울러 ‘한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는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해 해외에 보급하는 한편, 국내외 초·중고 교육용으로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어려운 부분도 있다. 실제로 우수한 집필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며, 현재 다른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연구 시작 단계에서 설정한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는 ‘관료제적’인 일정 준수 요구가 가장 큰 난점이다. 국내 출판 관행과 외국 출판 관행이 다르며, 특히 케임브리지대 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더욱더 학술적인 ‘질’을 요구한다. 국내에서 공부한 연구자들은 대한민국 학술사상 처음으로 맞이한 상황에 맞춰 온 힘을 다 짜내어 노력하고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연구단은 계속해서 연구 추진 일정의 수정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게 진짜 잘 ‘안 된다.’ 연구 지원기관인 한국학 진흥사업단에서는 늘 우리 총서 사업을 잘 지원해줘서 크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데, 이 부분만은 아직 벽에 부딪혀 해결되고 있지 않다. 다른 연구 사업과 형평성이라는 점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겠지만, 이 사업의 특수성을 절감해 좋은 해결책이 나오면 좋겠다. 한국학진흥사업단 차원을 넘어 교과부의 통 큰 결정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 총서의 개별적 구성과 관련해서, 현재 출간된 책은 1인 집필 체제다. 서술과 체계의 일관성이란 점에서 1인 집필의 장점을 찾을 수 있지만, 또 그만큼 한계도 있지 않나. 혹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집필 장치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사업은 1인 집필 체계인 경우에도 공동 연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분기별 워크숍을 통해 연구소장과 두 팀장과 함께 참여 공동연구자들이 계속해서 피드백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또 산출된 1차 초고의 경우에도 공동연구자와 그 밖의 관련 연구자들이 초고를 읽고 에디팅하는 작업이 뒤따르며 팀장과 소장의 적극적인 에디팅이 수반된다. 현재 연구자 풀의 부족과 단행본 연구 경험의 미비함을 이런 공동 워크숍, 공동 에디팅 방법으로 극복하고 있다. 연구 주제 성격상, 또 똑 부러진 단독 집필자가 없는 경우에는 공동 연구가 불가피하다. 현 2단계 진행은 모두 공동 연구다. ‘한글과 과학문명’은 2인이, ‘여성과 한국 과학문명’, ‘한국 고대 금속문명’, ‘한국 고대 토목문명’, ‘종교와 과학문명’ 등은 모두 4~11명의 공동 연구다. 이와 같은 공동 연구의 경우에는 상이한 연구자 사이의 조율이 큰 난점이기는 하지만, 니덤의 총서나 중국에서 나온 중국과학문명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주제를 발굴해 세계 학계를 주도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후에도 이점을 적극 고려하려고 한다.”

△ 소장님께서도 이번 총서 가운데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를 집필하셨다. 전통 의학사를 ‘과학사’라는 큰 틀에서 조명한 작업인데, 『동의보감』을 총서 제1권으로 내세운 것은, 그만큼 이 전통 의학서에 깃든 과학 문명적 의미가 깊기 때문인가? 특히 소장님께서는 “『동의보감』이 고대 중국 의학의 정신을 일관되게 구현했으며, 여기에 조선이 발전시켜온 여러 의학 전통을 녹여냈다”라고 평가했는데, 이에 대한 보완 설명을 부탁드린다.
“『동의보감과 동아시아의학사』가 첫 권으로 나온 데는 다소의 우연과 계산이 섞여 있다. 아마 ??한국천문학사??가 같이 나왔다면 하늘·땅·인간이라는 전통 과학 개념에 입각해 그것을 첫 권으로 삼았을 것이다. 1차 출판 대상인 세 책 가운데 『동의보감』이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라는 점을 고려했다. 한국과학문명사 전체를 볼 때에도 『동의보감』은 독자가 국내에 그치지 않고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읽힌 엄청난 책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전통 과학문명 업적 중 외국에 발신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금속활자는 한국 최초이기는 하지만 외국 발신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졌는지는 가설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며, 오늘날 삼성 휴대폰이나 현대 자동차의 해외 판매 등이 같은 선상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동의보감』의 세계성은 그것이 신토불이를 잘 드러낸 데 있지 않고 당시 의학 전반을 정리할 대상으로 삼았다. 오늘날 과학 분야에서 동일한 내용과 방법으로 세계의 과학자들이 경쟁하듯 과거의 과학 문명에서도 그러했다. 『동의보감』은 중국의 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황제내경』이 밝힌 사상적 기반을 똑같이 바탕으로 하면서 이후 학자들이 생산해낸 동일한 재료를 다뤘는데, 그 기반이 더 깊고 내용의 종합이 더 뛰어난 데가 있었다. 보편성을 획득할 지반을 갖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조선에서 발전시켜온 의학을 결합함으로써 더욱 좋고 풍부한 내용을 제공한 것이다.”

△ 근래 문명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도 ‘문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업가도 사재를 출연해 ‘문명’ 연구를 진행하려는 것으로 안다. 학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문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한 문화의 성숙을 다지는 물질적 기반을 성찰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문명에 대한 관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구’로 확장할 때, 분명 어떤 유의점이 있을 것 같다.
“동의한다. 문명은 학자가 밝히고 인류가 공유해야 할 자산이다. 좋은 연구가 없다면 문명의 성격과 내용, 그것을 바탕으로 한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사유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 문명은 기본적으로 한 단위를 넘어 각 단위 사이의 역동적인 교류를 전제한다. 한국 과학문명도 시간적으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것이지만, 각 시대의 단면은 전 세계적인 공간 사이의 밀고 당김의 장의 모습을 띤다. 문명론적 통찰은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데 중요한 방편을 제공하며, 그것은 수준 높은 연구를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총서 작업도 한국 사회의 문명에 관한 높은 관심의 여파로 기회가 생긴 것이라 본다. 다만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 작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이므로 아직 한국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대신 받은 만큼 반드시 좋은 연구로 갚겠다고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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